[커버스타]
[오다기리 조] 이런 남자 또 없습니다
2014-03-03
글 : 윤혜지
사진 : 백종헌
<행복한 사전> 오다기리 조

‘오다기리즘’(オダギリズム)이라는 말이 있었다. 오다기리 조가 <가면 라이더 쿠우가>(2000)를 할 때 홈페이지에 썼던 글들을 모은 문집의 제목이다. 오다기리 조의 분위기를 닮은 문화 현상을 뜻하는 단어로 봐도 무방하다. 이 단어가 2001년부터 사용됐으니 오다기리 조는 이미 하나의 브랜드가 된 지 오래다. 만약 ‘오다기리 조’라는 단어가 사전에 실려 있다면 풀이는 이러하지 않을까.

오다기리 조(オダギリジョ- | 小田切譲 | Odagiri Joe) [형용사] 1. 대체할 수 없는 2.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은 3. 긴장하는 일 없이 편안한

오다기리 조의 본격적인 데뷔는 2000년이다. ‘오다기리 조’라는 형용사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 형용사가 생겨난 지도 벌써 14년이 지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언어도 변한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뜻이 더해진다.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배우 오다기리 조도 조금씩 변해간다. 아니다. 전과는 또 다른 모습이, 다른 의미가 그에게 조금씩 더해진다는 편이 맞을 것 같다.

<행복한 사전>에서 오다기리 조가 맡은 역할은 활달하고 사교적인 사전편집부 사원 니시오카 마사시다. <행복한 사전>의 등장인물들은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답게 모두가 차분하기 그지없다. 마사시만이 시시때때로 사전편집부의 적막을 깬다. 근면성실로 무장한 마지메 미쓰야(마쓰다 류헤이)의 근무 첫날 마사시는 잔뜩 귀찮은 투로 말한다. “어이, 어떻게 일할 마음이 생기냐? 20년이 걸려도 다 못한다고.” 사전편찬 작업을 “시시한 작업”으로 치부해버리기도 일쑤다. 하지만 말만 철부지 소년처럼 툭툭 뱉을 뿐 실은 다른 이들 못지않게 사전편집부에 애정을 쏟고 있다. 유들유들한 성격을 십분 살려 몸소 판촉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사전편찬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희생하기도 한다.

마쓰다 류헤이가 미쓰야를 만들기 위해 심사숙고한 것과는 반대로 오다기리 조는 마사시를 연기하며 어느 것도 계획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계획은 “미쓰야를 연기하는 마쓰다 류헤이에 맞춰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많은 부분 마사시의 대사는 애드리브로 이루어졌다. 요즘 오다기리 조는 그가 갖고 있는 고유한 이미지를 활용해 연기하는 것을 즐긴다.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오다기리 조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관객이든 스탭이든 마사시를 보며 ‘오다기리 조가 아니었다면 이런 캐릭터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고 싶었다.”

데뷔 뒤 그는 거의 쉼 없이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왔다. 오다기리 조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역할이 많았지만 예상외의 행보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물론 그 ‘예상외의 행보’마저 오다기리 조를 오다기리 조답게 만들 뿐이었다. 하물며 그가 결혼을 할 줄은, 아버지가 될 줄은 또 누가 알았겠는가. 모두가 깜짝 놀랐던 2007년의 결혼 발표에 이어 <마이웨이>(2011) 촬영 중에 그는 첫아이를 얻어 진짜 아버지가 됐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에선 최초로 아버지 연기에도 도전했다. 지난해엔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던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2013) 등 몇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현재는 <TBS> 1분기 드라마 <S-최후의 경관>에서 강력한 악역인 테러리스트 M을 연기하고 있다. 이어 4월엔 <TV도쿄>의 신작 <리버스 엣지: 오카와바타 탐정사무소>에서 주연 무라키(村木)를 맡는다. 거대예산의 블록버스터 출연도, 아버지를 연기하는 모습도 오다기리 조에게선 기대하기 어려웠던 행보다. 비주류의 아이콘 같았던 그는 지금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곧 생겨날 새 가족이 그를 변하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내인 배우 가시이 유우가 올봄 둘째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 ‘오다기리 조’의 용례가 점점 변화하고 있었다.

오다기리 조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도 잠시뿐이었다. “<행복한 사전>에서 쓰고 나온 가발은 <도쿄타워>(2007)에서도 쓰고 나온 가발”이라는 둥 “<씨네21>의 로고가 ‘MILK’처럼 생겨서 잘 기억하고 있다”라는 둥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불쑥불쑥 잘도 내뱉는다. 돌이켜보니 그는 <미스터 고>(2013)에서 우스꽝스러운 바가지머리를 한 주니치 구단주로 깜짝 출연한 적도 있다. 김용화 감독과 “술김에 약속한” 출연이란다.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그는 언제 어디서나 ‘긴장하는 일이 없이 편안한’ 본래의 오다기리 조이기도 했다.

-<행복한 사전>의 니시오카 마사시 캐릭터에 매혹된 이유가 궁금하다.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는 프로듀서의 작품이라 그에게 제안이 들어오면 거절하지 않고 대개 그냥 한다.

-이시이 유야와 함께한 작업이 당신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쳤나.
=젊은 감독임에도 느리고 긴 호흡으로 좋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찍을 당시에 이십대였을 텐데도 말이다. 나는 악의 없는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라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즐기는 편이었다. 그는 언제나 차분했다. 내가 애드리브를 할 때마다 “오다기리상, 정말 재밌네요. 하지만 이 장면에선…” 하는 식으로 말리곤 했다. 한 걸음씩 천천히 밟아나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기대보다 훨씬 품위 있는 영화라서 굉장히 놀랐다.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하며 마쓰다 류헤이와 주고받은 것들이 있었을 것 같다.
=마쓰다 류헤이는 미쓰야 역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고 현장에 왔다. 감독님이 “이 장면에선 미쓰야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가끔 마쓰다 류헤이는 “이 감정은 안 맞는 것 같다.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느냐”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마쓰다 류헤이는 고집이 있으면서도 일관성 있게 자신의 연기를 펼쳤다. 거꾸로 난 마사시가 뭘 해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다. 미쓰야가 만들어지면 난 거기 맞춰서 마사시를 연기하면 됐다. 그와는 정반대의 방식이었다.

-<S-최후의 경관>을 시작하기 전엔 “악역을 맡은 김에 굉장히 미움받고 싶다”고 했는데.
=시청자는 대개 무카이 오사무, 아야노 고의 팬들일 것이다. 난 그 둘의 적이 되는 인물을 맡았기 때문에 그들의 팬들이 실제로도 날 싫어할 정도로 캐릭터를 완성하고 싶었다. 다만 드라마가 일요일 아침 9시에 방영된다.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시간이라 내가 어디까지 연기해야 할지 항상 고민한다. 얼굴을 찔러도 되는지, 눈알을 파내도 되는지 판단이 잘 안 선다. 하지만 방영을 못한다는 이유로 내 표현을 좁히고 싶진 않다. 철저하게 악역을 연기하고 싶으면서도 TV라는 매체의 특성상 조절해야 하는 것이 있다. 아슬아슬한 경계에 선 것 같다.

-사람 자체의 기운이 너무 강력한 나머지 캐릭터를 압도하는 배우들이 있다. 이미 고유한 캐릭터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당신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이를 극복하려고 하나.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역이 있다. 전자라면 당연하게도 그 사람이 가진 개성을 최대한 이용할 수밖에 없다. 배우가 원래 가진 개성을 다 죽이고 캐릭터를 새로 만들었을 때와 배우의 개성을 최대한 활용해 캐릭터를 만들었을 때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경우 요즘은 전자다. 역사 속에 실존했던 사람의 역할이라면 배우의 개성을 지우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쪽이 맞겠지만 <행복한 사전>처럼 픽션인 경우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연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처음의 꿈이 감독이었던 사람으로서 연출에 관해 세워둔 계획은 없나.
=전혀 없다. 지금 일본 영화계는 굉장히 힘들다. 영화 찍고 싶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말도 못 꺼낸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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