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오태경] 낭떠러지 끝에 서다
2014-03-04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오태경

<조난자들>은 ‘고립’의 영화다. 눈 쌓인 강원도 산골 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이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오싹함으로 바뀌면서 여행자는 순식간에 곤경에 처한다. <조난자들>에서 상진이 겪어내야 할 공포는 유타주의 협곡에서 팔을 잃었던 <127시간>의 아론이나 우주공간에서 미아가 될 뻔한 <그래비티>의 라이언의 그것들과는 별개다. 공포는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 일으킨다. <조난자들>이 안겨주는 긴장과 스릴의 핵심에 배우 오태경이 있다. 오태경이 연기하는 마을 토박이 학수는 서울서 여행을 온 시나리오작가 상진(전석호)이 마을에서 만난 기피 대상이다. 상진처럼 관객 역시 학수에게서 곧장 이물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막 교도소를 출감했다며 상진에게 대화를 청하는 학수는 원신연 감독의 <구타유발자들> 속 폭력의 화신들과 한패 같아 보인다. 낡은 가죽 점퍼에 해진 청바지, 짧게 깎은 머리와 듬성듬성 자란 수염 보다 상진을 향해 ‘아저씨’라고 연발하는, 학수의 저 느리고 껄렁한 말투가 보는 이들의 신경을 내내 건드린다.

<조난자들>에 출연하면서 오태경이 가장 신경 쓴 부분 역시 학수의 말투였다. “나는 친절하게 한다고 하는 게 다른 사람에겐 수상하게 들리는 효과를 주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내 말투가 연기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해서 늘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번엔 그런 강박 없이 자연스럽게 평소 말투를 활용했다.” 학수와 상진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오태경이 건네는 말투를 유심히 지켜보고, 들어보라. 그가 내뱉는 말투의 뉘앙스는 끔찍한 참극으로 가는 열쇠이자, 극이 앞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동력이다. “저 친구를 볼 때 매번 약간은 안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번 작품에서 그게 뭔지 제대로 한번 찾아주고 싶었다” 노영석 감독의 말이다. 학수에게서 오태경이 그동안 연기한 인물들의 잔상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오태경은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에서 정말 싸가지 없는 나쁜 놈을 연기했다. 맨날 착한 캐릭터만 하다가 그런 역할을 하니까 너무 재밌었고, 그래서 강약 조절을 못하고 너무 강하게만 해서 결국 캐릭터에 피해를 끼쳤다. 이번엔 다시 제대로 시험대에 올라가는 기분으로 임했다.”고 말한다.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1993)에서 어린 나이의 오태경이 연기한 선재 동자의 눈빛을 기억하는가. <조난자들>의 학수는 그보다 더한, 섬뜩한 변신이다.

오태경은 데뷔한 지 벌써 20년이다. 오대수(최민식)의 인상적인 아역 연기를 선보인 <올드보이>도 개봉한 지 10년이 지났다. “어릴 때 시작한 연기가 어느새 무시하지 못할 경력이 되어버렸다.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그때는 게으름 피우면 엄마한테 혼나니까 연기를 했고 촬영장 가면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만 했었다. 지금 보면 옛날 연기가 다 민망하고 창피하다. (웃음)” 그간 서른편 넘는 작품에서 오태경은 쉬지 않고 연기를 했다. 드라마 <육남매>의 믿음직한 첫째 아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이요원의 남자친구 같은 맑고 순한 이미지를 내보인 오태경은 이후 <알포인트>에서 착하지만 반항기 가득한 한국군을 연기했고,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에서는 횟집 아들로도 잠깐 출연했다. <해부학교실>에서는 순진하지만 미스터리한 청년을, 그리고 <마이웨이>에선 전쟁 도중 살아서 집에 가겠다는 집념으로 죽기 살기로 버티는 소년의 절절함을 연기했다. 작품 수는 많지만 어느 한순간 이렇다 할 공백기도, 완전한 의미의 변신도 없었다. 다른 아역 출신 배우들과 달리 ‘성인연기’로의 분기점도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다. “연기자로서 직업의식이 생긴 건 스무살이 넘어서였다. 배우는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 어느 때는 그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돌아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난 그냥 연기를 하고 싶었던 거지 다른 욕심이 있었던 게 아니더라. 아역 딱지를 떼야 하고, 대단한 변신을 해야 하고, 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어떤 작품이든, 캐릭터든 열심히 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오태경이 습관적으로 해오던 연기에서 벗어나 연기자로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황진이>를 함께한 장윤현 감독의 도움이 컸다. “아역으로 시작했고 제대로 연기를 배운 적이 없었다. 현장 가서 느낌에 따라 맞춰보고 하는 게 전부였지 그때까지 성인배우들처럼 시나리오 분석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황진이> 찍으면서 그게 들통이 난 거다. 장윤현 감독님이 공부 안 한 거 너무 티난다고 하시더라. 그때 정말 많이 혼났다.” 현장에서 오태경의 실수담은 기록으로 남았다. 30~40번의 테이크는 기본에, 그가 나오는 장면은 모두 NG였다. 2~3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촬영이 하루를 넘겼고, 현장스탭들의 한숨은 깊어졌다.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는데 다쳐서 발톱이 빠지는 바람에 촬영을 또 하루 쉬게 됐다. 그때는 정말 교통사고라도 나서 현장에서 빠지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 몸도 말이 아니었다. 갑상선 항진증으로 몸이 많이 안 좋았고 살도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폐에 물이 차는 기흉 진단까지 받으면서 그에게 위기가 닥쳤다. “결과적으로는 덕분에 많은 공부가 된 것 같다. 이후엔 시나리오 보면서 필기하는 습관도 들이고 캐릭터를 분석하는 자세도 배웠다. 자꾸 보고 또 보고 분석하다보니 이전과 달리 캐릭터에 접근하는 나만의 방법이 생기더라.”

사춘기도, 성장통도 크게 겪지 않았지만 배우로서 꽤 긴 시간을 지내는 동안 오태경에게도 좌절의 순간이 없지 않았다. “<꿈은 이루어진다>를 촬영할 때였는데, 내 앞으로 독방이 안 나오더라. 그게 불만이어서 친한 형에게 불평을 했더니 촬영 끝나고 형이 말하더라. 그게 지금 오태경의 주소다. 과거의 영광을 먹고 살지 말라고. 독하지만 그 말이 큰 도움이 됐다.” 20대의 막바지에 그는 찬사와 인정으로부터 멀어졌지만, 대신 자신을 되돌아 볼 기회를 얻게 됐다. 오태경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매번 도움을 준 숨은 공로자는 아버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룹사운드 템페스트의 건반연주자로 활동하며 아티스트로 평생 살아오신 분이다. 어릴 때는 그가 피어싱을 하는 것도, 레게 머리를 하는 것도 인정해주는 개방적인 아버지였고, 그가 작품 활동이 주춤해 딴생각을 할 위기에 처했을 때는 “일이 재밌으면 돈 보고 하지 마라, 진정한 실력자가 되면 명예가 생기고 돈도 따라올 것이다”라고 용기를 주는 멘토였다. “아버지의 지지로 도전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면 따지지 않고 매달릴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래서 특정 장르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았고, 저예산영화라거나 적은 개런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조난자들>도 결국 시나리오만 보고 주저하지 않고 선택했던 것이고.” 오태경은 곧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있다. 아직 하고 싶은 역할도 많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재밌다고 말한다. “이 생활의 매력은 굴곡이라고 생각한다. 난 일을 하면서 긴장하는 게 좋다. 항상 낭떠러지 끝에 있는 기분으로, 부담스러운 주문도 다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데서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오태경을 아는 사람들은 그런 그를 ‘똘아이’라고 한다. <조난자들>에서 막 보여주었고, 앞으로 더 발휘될 그런 장기. 오태경의 이름을 새로 기억할 때다.

<알포인트>

magic hour

소리 없이 자라나던 순간

<알포인트>의 장 병장은 오태경의 면모를 가장 극적으로 변화시킨 도전이었다. 어머니에게 소 한 마리 사드리겠다는 소박한 희망으로 실종자 수색작전에 참여하는 장 병장의 모습이 오태경에게서 가장 기대했던 모습이라면, 중년 남자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서슴지 않는 뻔뻔한 어린 소년의 모습은 그에게서 가장 낯선 이미지였다. <알포인트>의 배우들 중 막내였지만 그는 이 작품으로 이전 작품에서 줄곧 보여주었던 ‘어린’ 이미지를 변주한다. 돌이켜보면 성인연기라는 극적 신고식 없이 오태경이, 또 그의 연기가 자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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