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진실과 거짓말 사이에서
2014-03-14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만신> 백경인 미술감독

Filmography

미술 <무서운 이야기2>(2013) <만신>(2013) <Mr. 아이돌>(2011) <돌이킬 수 없는>(2010) <그녀에게>(2009) <계몽영화>(2009) <여행자>(2009) <나는 행복합니다>(2008) <판타스틱 자살 소동>(2007) <좋지 아니한가>(2007) <삼거리 극장>(2006)

“그런데 전 감독이 아니라 미술감독인데요.” 백경인 미술감독은 첫 전화 통화에서 자신을 ‘미술감독’이라고 정확히 고쳐 불렀다. 그 이유가 ‘미술’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다는 건 그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던 백경인 미술감독은 처음에는 “광고나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고 싶어” 영화과에 들어갔다. 거기서 만난 박동훈 감독의 제안으로 처음 미술 작업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배경이나 그려주고, 밥이나 얻어먹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한테 이것저것 시키는 게 너무 많은 거다. 그길로 서점에 달려가 관련 서적을 뒤져보니 내가 그동안 감독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꿈꿨던 일이 모두 미술감독의 일이란 걸 알게 됐다. ‘아, 이거구나!’ 그동안 속은 기분이었다.”

<만신>의 미술감독을 제안받았을 때, 그는 마침 <노름마치>라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기녀, 무당, 광대라고 천대받았던 예인들에 관한 책으로, 거기에는 만신 김금화의 이야기도 실려 있었다. “한창 무속신앙 등에 빠져 있던 시기였는데 우연히 연락이 온 거다. 덜컥 하겠다고 했다.” 박찬경 감독 역시 미술을 전공했기에 서로 고집을 세웠을 법도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고. “그냥 서로 얘기하고, ‘이 아이디어 좋네요’라고 반응하면서, 주거니받거니한 것 같다.”

위기의 순간이 영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것은 박찬경 감독이 “자동차 앞에 괴목을 엠블럼처럼 달자”고 한 데서 시작된다. “이상하게 모양이 안 나오는 거다. 당장 다음날 촬영이었는데 혼자 무작정 고속터미널 근처 화훼시장에 갔다. 팀장은 ‘촬영 하루 전인데 어디 간 거냐’고 난리난 상태였다. 이곳저곳 뒤졌지만, 결국은 마땅한 걸 못 찾고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이러고 보는데, 저쪽에 이상한 나무가 눈에 띄는 거다. 알고 보니 철 지나 버려진 포도나무였다. 가지의 각도를 바꾸면 꽤 이상하겠더라.” 다 포기했을 때 하늘이 도운 순간이었다. “우리가 작업을 하면서 중점을 뒀던 부분은 ‘거짓말처럼 보이게는 하지 말자, 그렇다고 너무 진실만을 말하지는 말자’였다.” 그는 ‘어차피 버린 것이니 몰래 가져갈까’도 생각하다가, “부정탈까봐” 결국은 주인을 찾아내 값을 치르고 가져왔다.

그의 입봉작 <삼거리 극장>도 다 포기하려던 순간 그에게 찾아왔다. “일이 잘 안풀리니까 미술 그만두고 취직할까 하던 때였다. 추석 이틀 전, 너무 답답해 시골에 다녀오려고 버스표 예매 버튼을 클릭한 순간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와 시나리오를 받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쭉 읽어보는데 ‘재밌다’ 싶어 버스표를 취소하고 앉은자리에서 끄적끄적 그린 다음, 스캔해서 쭉 보냈더니 얼마 뒤 ‘미팅하자’는 연락이 왔다. 지금 아니면 못해볼 것 같았다.”

그는 <만신> 촬영 중 모친상을 당했다. 그래서 <만신>은 그에게는 “어머니를 위해 굿하는 심정으로 찍은 영화”라는 하나의 의미가 더 있다. “어머니가 영화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보다 “영화가 유명해져서 ‘나 이 영화 했소’라고 하는 게 더 좋다”는 그의 필모그래피엔 저예산영화들이 수두룩하다. “워낙 거절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내가 작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나를 고르는 느낌이다.” 그의 목표는 “죽을 때까지 ‘미감질’을 하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도 이 작업을 하고 싶다. 손 바들바들 떨면서도 해야지.”

구상 노트

노트 속엔 그의 머릿속에서 재조합돼 나온 구상들로 빼곡하다. 그중 이정현의 <V> 뮤직비디오 구상그림이 눈에 띈다. <만신> 이후 박찬경 감독의 “같이 해보세”라는 제안에, 늘 그랬듯 “덜컥” 참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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