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진짜 사나이’의 호흡 담은 조용한 전쟁영화
2014-04-17
글 : 송경원
사진 : 백종헌
사운드 전문가 3인, <론 서바이버>가 전장을 체험하게 하는 비법을 ‘듣고 분석하다’

<론 서바이버>는 2005년 탈레반 부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실행됐던 ‘레드윙 작전’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서사는 단순하고 전투과정도 복잡하지 않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전장 한복판에 내던져진 느낌을 안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박진감 넘치는 전투 화면은 기본이지만 <론 서바이버>가 주는 충격은 성실한 재현 그 이상이다. 관객에게 전장을 ‘체험’시키는 연출의 비결은 치밀한 사운드 구성에 있다. 이미지보다 오래 뇌리에 남는 사운드의 힘. 전장을 지배하는 소리의 정체를 알기 위해 사운드믹싱 전문회사 라이브톤의 최태영 음향감독, 영화진흥위원회의 서영준녹음실장, 영상원의 이규석 음향전공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세명의 사운드 전문가와 함께 <론 서바이버>의 전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최태영_<론 서바이버>는 근래 나온 전쟁영화 중에서도 사운드가 특별히 도드라지는 영화다. 다들 어떻게 보았나.

서영준_재미있었다. 주로 총격전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영화인데 4명의 네이비실 주인공과 탈레반 세력의 교전을 다루다보니 국지전에 가까워 버라이어티한 요소는 적은 편이다. 전체적인 컨셉도 사실적인 부분에 맞춘 것 같다. 그럼에도 다채롭다. 가령 <블랙 호크 다운>은 총소리가 사실보다 과장되어 있는 데 반해 <론 서바이버>는 실제 소리보다 작아서 주위의 다른 소리까지 부각된다.

이규석_프롤로그를 다큐에 가까운 영상으로 처한 것만 봐도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사운드 디자인적인 요소보다는 현실적인 사운드의 활용과 완성도가 도드라진다. 기발한 컨셉이 아니라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사실적인 사운드를 재현하는 것이 목표였던 것처럼 보인다.

<론 서바이버>가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들려준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비록 <그래비티>에 밀렸지만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향효과 및 음향믹싱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감 넘치는’ 사운드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적인 재현이 전장의 참혹함을 고발하기 위함인지 대리전투의 박진감을 주고 싶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주인공의 상황에 감정을 이입시키기 위한 도구인지. 영화가 향하는 목적지를 알면 이 영화의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도 한결 이해하기쉬울 것이다.

최태영_인트로의 해병대 훈련 장면은 상업적으로 접근하면 과장되게 표현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예를 들어 조교가 나오는 장면에서 사운드 노이즈가 같이 올라오는 방식으로 처리해서 현실감을 더했다. 스코어 밑에 깔리는 음악들도 멜로디라인보다는 코드 음정을 부각해 분위기와 상황만 담아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서영준_영화가 끝나고 난 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멜로디가 하나도 없더라. (웃음) 다른 할리우드영화들이 음악을 덕지덕지 발라놓은 것에 반해 <론 서바이버>는 앞뒤의 음악을 절제하는 대신 배우들의 숨소리나 폴리 사운드(후반작업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소리), 엠비언스 사운드(특정한 공간 내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음향) 등으로 음악의 빈자리를 채워넣고 있다. 음악이 하나의 효과음 혹은 엠비언스 사운드처럼 쓰이고 있다.

이규석_실제로 음악이 깔려 있는 시간 자체는 짧지 않다. 영화 내내 깔려 있다. 하지만 음악이 감정을 이끌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장르적인 긴장감보다는 사실적인 현장감을 주기 위해 음악을 활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들 영화를 좋게 본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아리송한 부분이 있는 영화였다. 어떤 포인트는 굉장히 장르적이고 어떨 때는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철학적으로 밀도 있게 밀어붙이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군인정신을 강조하는 것 같지도 않고. 프롤로그에서는 <허트 로커>처럼 사실적인 스타일로 출발하지만 몇몇 장면은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예를 들어 현장 책임자인 마이클 머피 대위(테일리 키치)가 구조 통신을 보내기 위해 혼자 꼭대기로 올라가는 장면이라든지 치누크 헬기가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슬로모션과 함께 장중한 음악을 깔아준다. 굉장히 장르적이다. 상반된 스타일을 왔다갔다 하니 감독의 의도가 뭔지 헷갈렸다.

서영준_나는 이 영화의 전체적인 컨셉이 ‘우정’이라고 봤다. 마커스 중사(마크 월버그)와 동료들이 살아남기 위해 교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전우애를 부각한다. 후반부 마커스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아프칸 부족민과 마커스의 관계도 일종의 우정이다. 그 감정을 1인칭의 사운드로 관객도 함께 느끼게끔 유도한다.

이규석_보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중에는 어떻게 끝나는지 보자는 생각으로 엔딩을 집중해서 봤다. 장면만 보면 내레이션과 함께 건조하게 끝난다. 때문에 “나의 일부는 거기에서 죽었고, 나의 일부는 전우들 덕분에 살아왔고…”라는 마지막 독백이 중요하게 들린다. 그야말로 군인정신의 집대성, 진짜 사나이 이야기다. 사실 ‘레드윙 작전’은 실패한 작전이다. 19명이 죽었고 단 1명만 살아남았다. 감독은 이 작전의 성패 여부를 떠나 살아남은 단 한 사람이 군인정신을 실천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나보다. 자료를 찾아보니 원작이 된 책을 쓴 마커스 러트렐은 실제로 레드윙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다른 작전에 참가했다고 한다. 감독 입장에선 장르적인 영웅상을 굳이 부여하지 않아도 이 자체로 영웅의 모습이라는 확신이 있지 않았을까.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면 충분하다는 자신감. 일관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표현들도 있지만 사실적인 묘사, 특히 사운드는 이러한 자신감에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태영_중요한 지적이다. 사운드 디자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론 서바이버>의 특징은 사실적인 재현이다. 언뜻 당연한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전쟁영화에서 사실적인 사운드를 추구하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전쟁영화야말로 과장된 사운드로 대표되는 장르적인 관습에 빠지기 가장 쉬운 장르다. 그런데 <론 서바이버>는 철저히 기술적인 완성도를 추구했다. 사운드 믹서들도 욕심 부리지 않고 자제를 잘했다. 이렇게 평정심을 유지해나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론 서바이버>는 조용한 전쟁영화다.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이 영화는 폭발이 아닌 침묵으로 관객에게 긴장감을 안긴다. 이것이 <론 서바이버>가 소리를 재현하는 방식이며 이 영화의 사운드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된 객관적인 사운드와 전장 한복판에서 듣는 듯한 주관적인 사운드의 조화. 비울수록 도드라지고 단순화시킬수록 힘이 생기는 사운드는 관객에게 강렬한 대리 체험의 순간을 선사한다. 이를 통해 사운드야말로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체험의 도구임을 새삼 증명한다.

서영준_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전반적인 인상은 시끄럽지 않다는 점이다. 전쟁영화는 그림보다 사운드가 과장되어야 관객을 끌고 가기 편하다. 그럼에도 <론 서바이버>는 대개 중요한 순간 총소리, 폭탄 소리 등 주요 사운드를 줄인다. 덕분에 다른 소리가 살아난다. 총소리보다 호흡 소리가 더 기억에 남는 사운드 디자인이다. 전반적으로는 동시녹음 위주인 것 같은데 동시녹음을 할 때도 리얼함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느껴진다. 초반에는 3인칭을 유지하던 사운드가 전투 장면이 시작되면 철저하게 1인칭 관점으로 넘어오는 것도 좋다.

이규석_‘시끄럽지 않다’는 게 이 영화의 핵심 같다. 전투 장면이 많은데도 귀가 피곤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디자인이 잘되어 있다는 증거다. 사운드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스탭들의 인터뷰를 찾아봤더니 총소리에 대해 설명해주는 영상이 있더라. 흔히 총격전 하면 ‘탕’ 하는 격발음을 중시하기 마련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유명해진 건 격발음만큼 총알이 날아가는 궤적음을 적극적으로 살렸기 때문인데, 이 영화도 그렇다. 실제 사람을 죽이는 건 날아오는 쇳덩어리다. 총알의 그 날카로운 궤적음이 공포감을 준다. 탄착이 되었을 때 나는 파편 소리, 피 튀기는 소리 등도 총소리의 중요 요소다. 근데 격발음에 집중하다보면 그 소리가 길어져 후속 사운드, 그러니까 궤적음이나 탄착음이 밀리기 마련이다. <론 서바이버>에서는 격발음을 줄여 나머지 사운드를 살린다. 특히 네이비실 대원 중 2명은 소음기를 끼고 있는데 이때 격발음까지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를 내며 그 뒤에 따라오는 미세한 소리들이 크게 살아난다. 이러한 테크니컬한 완성도가 현장감, 사실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서영준_나도 총소리의 밸런스가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미군은 조준사격, 탈레반은 난사한다는 식으로 캐릭터들의 성격이 확실히 구별된다. 총소리의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격발음이 아니라 탄착음을 활용하는데 이게 전부 다르다. 바위에 맞을 때, 흙바닥에 맞을 때, 나무에 맞을 때의 소리가 다 구분이 될 만큼 선명하게 들린다.

최태영_ 총소리의 서브보컬들(궤적음, 탄착음)을 잘 활용하면서도 모든 요소가 선명하게 들린다는 게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디테일한 표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대사와 이어 붙는 지점에서 굉장히 자연스럽다. 총소리 자체가 하나의 대사처럼 연결된다고 할까. 여기서 중요한 게 단순화 작업이다. 소리 정보가 너무 많을 때 의도치 않게 정작 중요한 걸 놓치는 경우가 있다. <론 서바이버>는 이 부분에서 빼어난 구성을 보인다. 필요에 따라 총의 격발음만 살려준다든지 퍼져나가는 에코 사운드를 부각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뒤에 따라오는 작은 소리까지 살려주는 전반적인 과정이 있기에 거꾸로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를 부각하고 싶을 때 살릴 수 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과 소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많은 전쟁영화가 소리를 의도적으로 지우고 필요한 소리만 사용했다면 <론 서바이버>는 소리의 다양한 구성요소를 최대한 살려서 들려준다. 관객은 필요한 소리, 인상적인 소리를 찾아내 들으며 인물과 동화할 수 있다. 이때 배경이 되는 다양한 공간의 소리야말로 ‘사실적인 재현’의 비결이다. 우리가 미처 인지하진 못했지만 분명히 들어야만 하는 소리가 이 영화, 이 전장에는 담겨 있다. 수많은 소음이 우리를 전장의 한복판으로 데려간다. 그래서 실감나고, 그래서 무섭다.

서영준_그런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헬기 사운드다. 초반 헬기 사운드 디자인은 <지옥의 묵시록>을 연상시킨다. 가령 주인공이 수술실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헬기 소리와 심장 충격기 소리, 심장박동 소리가 교묘하게 교차되어 있다. 일정한 박자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헬기 소리와 심장박동 소리가 유사한데 이 점을 활용해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사운드를 표현했다. 이런 쓰임은 인물의 감정과 동화하는 효과적인 통로 역할을 하는 1인칭 사운드의 매력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규석_ 기술적으로 총소리를 칭찬한다면 디자인적으로는 헬기 소리가 인상적이다. 일단 소리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어떤 상황에서 녹음하는가에 따라 날카로운 소리부터 무거운 소리까지 전부 표현이 가능하다. 미군 기지의 기본적인 엠비언스 사운드는 바로 이 헬기 소리인데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관객을 안심시킨다. 이곳이 우리 편 기지라는 정보를 소리로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작전 지역인 아프간 산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엠비언스 사운드는 고요해진다. 대개 조용하면 평화롭다고 생각하겠지만 미군들에게는 이 침묵의 사운드가 도리어 공포와 긴장을 표현한다. 조용한 만큼 약간의 소리만 내도 들키기 쉽기 때문이다. 단순하게는 헬기 소리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공간의 성격은 물론 인물들의 심리상태까지 표현해낸 적절한 엠비언스 사운드다.

최태영_ 나도 엠비언스 사운드의 디테일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가령 대원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보면 바위에 부딪칠 때의 둔탁한 사운드를 살리기 위해 공중에 떴을 때는 도리어 소리를 아예 없애버린다. 크고 둔탁한 소리와 정적에 가까운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마치 음악과도 같은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거다. 전체적으로 소리를 키우는 대신 줄이는 쪽의 작업을 통해 원하는 소리를 부각시킨다. 시가전을 바탕으로 한 <블랙 호크 다운>과 정반대, 굳이 비교하자면 <에너미 앳 더 게이트>와 유사하다. 폐허가 된 공간에서 울리는 총소리, 저격수들의 심리전, 복잡한 것보다 단순하게 정리된 사운드가 관객에게 좀더 깊게 각인된다. 귀가 피곤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서영준_작전 수행 중에 한 대원이 무전기를 열어놓고 음식을 먹자 다른 대원이 ‘나 같으면 무전기를 끄고 먹겠다’고 하는 장면이 있다. 나중에 메이킹 필름을 보면서 알게 됐는데 네이비실 대원들은 항상 무전기를 열어놓고 있는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총격전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무전기를 통해 흐르는 서로의 호흡이 낮게 깔려 있다. 크기도 총소리와 거의 비슷한 레벨이다. 무시할 수 있는 요소까지 놓치지 않고 배치해 1인칭의 사운드 시점을 극대화하는 한편 관객을 영화 속으로 철저히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이규석_얘기한 것처럼 영화 속에서 배경음으로 다른 무선 교신 사운드가 계속 깔려 있는데, 이 때 사운드의 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굳이 실제 네이비실 대원들을 데려다가 녹음했다고 한다.

최태영_협조에 대한 부분이 자유로우니까 그 정도까지 구현할 수 있었나보다.

서영준_미군쪽에서도 적극적인 협조를 했다고 들었다.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경악할 만한 양의 ‘스페셜 땡스 투’를 봐라. (웃음) 우리나라의 경우 한정된 시간에 맞춰 뽑아내다보니 대개 기존 사운드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사례가 대다수인 데 반해 이 영화에서는 상황에 맞춘 헬기 소리를 따기 위해 실제 헬기를 여러 차례 띄웠다고 한다. 예를 들면 ‘여기서 한 바퀴 돌아주세요, 저기서 여기까지 날아와주세요’ 하는 식으로 모든 상황에 맞춰서 녹음했다더라.

<론 서바이버>는 사운드 연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도식적인 음악을 통해 익숙한 감정을 끌어내지 않고 현실감 넘치는 배경음으로 관객을 그 공간 속으로 데려간다. 각 공간의 개성에 따라 치밀하게 설계된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리드미컬한 흐름이 단순한 현장감을 넘어서 관객의 감정마저 고양시킨다. 음악이 충실한 바탕이 되는 가운데 음향이 음악의 역할까지 담당하는 새로운 경험. <론 서바이버>의 꼼꼼한 사운드가 관객에게 실감을 안겨주는 방식이다.

최태영_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보자. 전체적으로 음악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 데 반해 캐릭터와 공간, 상황에 맞춰진 엠비언스 사운드들이 음악처럼 들리는, 정말 공이 많이 들어간 영화라고 느꼈다. 몇몇 블록버스터영화들이 소리를 무조건 크게 하면서 관객을 몰아붙이려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규석_ 월터 머치라는 사운드 대가의 표현 중에 ‘피크 앤드 밸리’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피크(꼭대기)와 밸리(계곡)를 거치면서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리듬감, 주관적 사운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인데, 월터 머치는 전쟁영화의 바이블이랄 수 있는 <지옥의 묵시록>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론 서바이버>의 디테일한 폴리 사운드의 강약 조절과 주관적 사운드로 들어가는 몇몇 장면은 이에 못지않은 것 같다.

서영준_음악이 효과음으로 쓰이고 효과음이 음악으로 쓰인, 흥미로운 전쟁영화다. 디자인적으로 특별할 건 없지만 기술적인 완성도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현장 사운드 채집만을 위한 답사가 일주일 이상 걸렸다고 하니 얼마나 공들여 소리를 채집했는지 알 수 있다. 공을 들인 만큼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한편으론 그렇게 공을 들일 수 있는 환경, 사운드 채집과 제작에 그만큼의 시간을 할애하는 환경이 부럽다.

영화 속 그 장면+내가 사랑한 사운드

최태영 음향감독

<론 서바이버>의 절벽 장면+<그래비티>

탈레반에 몰린 4명의 네이비실 대원들이 탈출을 위해 가파른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 음악을 대신할만한 리듬감이 있다. 대개 이런 장면에서는 과장된 사운드를 쓰기 마련인데 거꾸로 과감하게 소리를 지우는 쪽으로 작업한 점이 인상적이다. 몸이 땅에 부딪치는 순간의 사운드는 크게 강조한 반면 몸이 튀어올라 공중에 떠오른 순간 사운드적인 블랙홀을 만들어 대조를 이룬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긴장감을 줄 음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둔탁한 사운드와 정적의 순간이 교차하면서 생겨난 박자감, 길고 짧은 마찰음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편집과 잘 맞아떨어져 리얼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최근 본 영화와 비교하면 <그래비티>가 떠올랐다. 사운드 디자인을 계속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일정한 공식하에서 작업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는데 두 영화를 통해 단순화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캐릭터에 맞춰 집중한 필수적인 사운드만으로도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들이다.

서영준 영화진흥위원회 녹음실장

<론 서바이버>의 대원들 호흡 소리+<지옥의 묵시록>

최근 블록버스터영화들은 그야말로 사운드의 공해다. 전체적으로 사운드가 지나치게 커서 정작 필요한 소리들이 묻혀버린다. 예를 들면 <호빗> 같은 영화는 귀가 피로해져 영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작고 사소한 사운드를 생생하게 들려준다는 측면에서 <론 서바이버>의 결정적 사운드로 무전기를 통해 오가는 대원들의 호흡 소리를 꼽고 싶다. 여기서 숨소리는 일종의 배경 효과음에 가까운데 무전기를 찬 군인만이 들을 수 있는 1인칭 시점의 소리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계속 켜져 있는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동료의 거친 숨소리는 자연스러운 1인칭 사운드의 적절한 사례다. <론 서바이버>의 현장감은 이러한 주관적 사운드의 적절한 활용에서 발생한다. 이는 <지옥의 묵시록>에서 사운드 활용의 교본처럼 쓰인 심리적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전투 전반에 걸쳐 전장의 소음들을 자세하게 들려주다가도 특정 장면에서 몰입시켜야 할 인물의 주관적 사운드로 전환되는 장면들이 다수 있는데 이 연결이 매우 자연스러워 공간감과 실감을 함께 안긴다.

이규석 영상원 음향전공 교수

<론 서바이버>의 헬리콥터 사운드+<콘택트>

개인적으로 헬리콥터의 사운드를 좋아한다. <론 서바이버>에서는 마커스와 매튜(벤 포스터)가 포위되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순간 그들을 구출하려고 치누크 헬기가 뜨는 장면이 있다. 이때 헬기 소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된다. 일차적으로는 실제 헬기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리는 가운데 장면과 상황에 따라 두 인물의 심리적이고 주관적 사운드로 전환된다. 어떨 때는 날카로운 쇳소리를, 어느 장면에서는 일부러 중저음 사운드만 남겨 마커스의 심장박동 소리나 죽기 직전 매튜의 숨소리와 사운드 몽타주를 이룬다. 결국 두 사람을 구출하지 못하고 헬기가 떠나가는 장면에서 헬기는 보이지 않지만 점점 멀어져가는 사운드가 인물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적절한 사운드 디자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콘택트>의 오프닝에서 들려준 전설적인 사운드 디자인을 추천하고 싶다. 영화는 지구를 비추다 점점 뒤로 빠지는 카메라와 함께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전파를 하나씩 따라가며 들려주는데, 종국에는 인류가 쏜 전파가 아직 도달하지 않아 침묵만이 흐르는 우주공간까지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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