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한공주>를 설명하는 대표 카피다. 맞다. 17살 고등학생 한공주(천우희)는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살고 나름대로 꿈을 갖고 있으며 인간에 대한 예의도 잊지 않는 여고생이다. 그런데 왜 한공주에게 모든 짐을 지우고 있는지, 영화가 질문한 지점이고 관객이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사실 한공주는 “전 무얼 해야 할까요?” 이걸 말해야 한다. 한공주는 아무 잘못도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집단 성폭행의 희생자가 된다. 성폭력에 대한 상투적인 보복이나 지리멸렬한 법정 싸움 등으로 가지 않은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돈 있고 힘 있는 부모는 어떻게든 자기 자식 빼내려고 합의 보기 위해 달려들고,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아이를 경원시한다.
<한공주>가 좀 다른 면이 있다면 피해자인 한공주가 위탁가정에 맡겨지고 거기서 예기치 못한 가정의 따뜻함을 슬쩍 느끼는 지점이다. 한공주는 말이 없다. 주인공이 수다스러울 필요는 없지만, 관객이 알아서 내 아픔 알아주기를 바라는 식은 좀 부담스럽다. 중간중간 끼어드는 윤간 장면은 전후 설명이 부족하여 상투적으로 보인다. 한공주의 분절된 기억으로 재현되는 성폭력 장면은 관객이 충분히 사고할 정보를 주지 않는다.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진 것 같지도 않고 복지정책이 진행되는 과정도 주먹구구식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도가니>처럼 될 필요는 없지만, 피해학생의 내면으로만 파고들다 보니 답답한 느낌을 준다. 괴롭고, 외롭고, 창피해서, 한공주는 말하기 싫다. 누가 말을 걸어야 할까? 좋은 친구 은희(정인선) 같은 아이? 개인의 선의가 답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