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거펠트는 말한다. “패션계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 세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청바지, 흰 셔츠 그리고 샤넬 재킷이다.” 이 말을 조금만 바꿔볼까. “청담동에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에르메스 버킨백, 루이비통 캐리어 그리고 샤넬 재킷이다.” 미수를 바라볼수록 더욱 벼려진 감각으로 영화를 만드는 멋쟁이 할아버지 우디 앨런의 <블루 재스민>을 보다가 떠오른 생각이다.
뉴욕 최상류층의 삶을 누리던 재스민은 남편의 외도와 사기로 순식간에 모든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의지할 곳을 찾아 동생 진저가 사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도착한 그녀가 입고 있던 것은 바로 샤넬의 트위드 재킷. 평범한 삶에서 스스로를 ‘아우팅’시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재스민에게 트위드 재킷은 무력하고 가난한 일상을 잊게 해주는 일종의 환각제가 아니었을까.
사실 그녀는 뉴욕에서 트위드 재킷을 좀처럼 입지 않았다. 누구나 보면 알만한 브랜드의 옷이 아닌, 온몸을 스르륵 휘감는 고급스러운 소재의 셔츠에 슬림핏 팬츠를 받쳐 입고 가는 발목을 더욱 유연하게 감싸는 스트랩 샌들이 그녀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녀의 드레스 코드는 단 하나, ‘로고’다. 에르메스 버킨백을 들고 무릎을 조금 덮는 A라인 스커트에 스틸레토 힐 위에 올라선 그녀가 걸치는 것은 항상 샤넬의 트위드 재킷이었다.
트위드 재킷은 코코 샤넬이 아름다움이나 사치가 아닌, 오직 여성을 의복에서 해방시키고자 실용적인 의도로 만든 옷이다. 날실과 씨실의 움직임이 그대로 보이는 이 투박한 직물은 재킷으로 변화하며 여성스러운 우아함과 활동적이고 세련된 움직임을 모두 얻었다. 예를 들어 재스민처럼 실크 셔츠와 스커트에 매치하면 이른바 ‘청담동 며느리’룩이 된다. 그러나 여동생 진저가 매일 입는, 목선이 늘어진 티셔츠와 청바지와 만나면 오히려 시크해 보이는 것이 트위드 재킷의 변화무쌍한 매력 중 하나다. “베이직 아이템을 활용하라.” 영화 속 재스민의 조언처럼 트위드 재킷은 어떤 TPO에도 소통 가능한 기본 아우터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