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할로윈, TV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가 가상의 웨스 앤더슨표 공포영화 트레일러로 화제를 모은 데 이어 동영상 사이트 ‘비메오’에 “<포레스트 검프>를 웨스 앤더슨이 만들었다면?”이라는 전제로 연출된 가상 예고편이 등장했다. <초콜릿 상자 같은 인생>이라는 제목을 붙인 루이 파케 감독의 2분 길이 영상은 웨스 앤더슨이 애용한 바 있는 푸트라 서체와 대칭 구도, 소품의 ‘각’(角)에 집착하는 앤더슨의 정리벽을 인용하고 있다. 새우 더미에 섞인 홍합을 골라내는 대목이 클라이맥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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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크리스 에반스는 하루 종일 촬영장에서 캡틴 아메리카를 연기하고 나면 “나한테도 농담 대사가 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같은 슈퍼히어로물인 예전 출연작 <판타스틱4>만 해도 에반스는 ‘한 유머’ 하는 인물을 연기했으니 뒷목이 뻣뻣해질 만도 하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흰소리를 함부로 던지는 순간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의 정체성은 흐려진다. 캡틴은 ‘어벤져스’라는 아이돌 그룹에서 명분을 맡고 있다. 때로는 효율을 희생하면서까지. 예컨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스티브 로저스는 결전을 앞두고 눈에 번쩍 띄는 색상과 구식 재질로, 입은 이를 선명한 표적으로 만들어버릴 2차대전 당시 낡은 제복을 도로 꺼내 입는다. 적으로부터 몸을 은폐하고 보호하는 기능보다 “초심으로,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정신을 만천하에 천명하는 일이 이 캐릭터에겐 더 중요하다. <졸업>의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영화의 도입부가 이야기 전체의 메타포가 될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는데, 이런 맥락에서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모범 사례에 해당한다. 우리가 처음 보는 스티브 로저스는 시속 40km로 새벽의 워싱턴 D.C 공원을 달리고 있다. 롱숏으로 찍혀 있는 이 장면에서 손가락만 한 캡틴은 성실하고 우직하게 스크린을 가로지른다. 잠시 뒤 스티브가 꺼내든 수첩에는 ‘소아마비’, ‘<스타워즈>’, ‘인터넷’, ‘타이 푸드’ 등의 신조어가 꼼꼼히 적혀 있다. 70년을 건너뛴 시간 여행자로서 이 남자가 별안간 현실이 된 미래에 적응하는 방법은 아주 수공업적이다. 캡틴은 스포츠맨으로 치면 장거리 육상 선수 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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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유냐 안보냐 저울질하는 질문은 9.11 이후 할리우드영화가 현실 사회와 자주 접맥하는 지점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이듬해 개봉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벌어지지 않은 범죄를 예지해 단속하는 세계를 그렸고 2014년작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는 과거 데이터를 잘 분석하면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인물을 충분히 골라낼 수 있다는 논리로- “오늘날 세계는 디지털 북이야”라는 대사도 있다- 2천만명을 희생시켜 70억 인구를 구해야 옳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는 결코 투명하지 않다. 정보 기술이 자아낸 신기루로 말미암아 투명하다는 착각이 유력해졌을 따름이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음모자들은 선별적 홀로코스트를 기도하는 셈이다. 이에 저항하는 캡틴은 원작 코믹스에서도 히틀러에게 직접 한방 먹인 대표적인 반파시스트 영웅이었다고 하니 국기 유니폼을 입었다고 함부로 넘겨짚을 일이 아니다. 역시 옷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
생각의 사슬이 여기까지 이르면 슈퍼히어로영화의 홍수 속에서 짐짓 미뤄둔 문제와 맞닥뜨리고 만다. 슈퍼히어로 서사는 본성적으로 파시즘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영웅이 파시스트라는 뜻은 아니다. 이야기의 구도가 불가피하게 파시즘에 대해 사고하도록 밀어붙인다는 의미다. 파시즘 하면 쉽게 떠오르는 국가사회주의와 슈퍼히어로들의 철학은 무관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미국 코믹스의 초인 영웅들은 물리적 힘으로 목표를 성취하며 대다수의 경우 그들의 목표는 현존하는 체제를 수호하고 지지하는 데에 있다. 대중영화 일반도 대동소이하지만, 슈퍼히어로의 우주에서 여성 캐릭터는 섹슈얼한 매력과 무관하게 힘을 발휘하는 예가 더 드물다. 남성적인 강함이 곧 선과 통하는 세계라고 할 수도 있다. 개중 노골적인 예는 사유한 엄청난 부와 무력으로 사회악을 척결하는 백인 남성인 배트맨이다. 그는 정보를 얻기 위해 젠틀한 슈퍼맨은 엄두도 못 낼 고문도 서슴지 않는 강성분자이기도 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는 개별 범죄에 대응하는 자경단원을 넘어 부패로 취약해진 공권력의 비리까지 손본다.
공교로운 점은, 가장 ‘무지막지한’ 다크 나이트가 슈퍼히어로 서사를 영화관을 나온 관객이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정치/경제적 현실과 연관된 이슈로 생각하도록 자극하는 영웅이라는 점이다. 놀란의 배트맨이 어둡고 사색적이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오늘날 세련된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영화에서 번뇌는 영웅들의 필수품이다. 그들은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큰 힘과 큰 책임의 관계를 고민한다. 다만 여타 히어로들이 스토리의 한 지점에 도달했을 때 예외적 힘을 보유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규율을 사숙한다면 <다크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슈퍼히어로가 폭력을 위탁 독점한 공권력과 빚는 마찰, 군중심리에 끼치는 영향이 전체 서사의 등뼈다. 브루스 웨인의 그라운드는 내정(內政)이다. 그는 외계에서 온 악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만약 내일 당장 전경련이나 국회의사당에 망토와 가면을 두른 정의의 사도가 등장할 때 우리가 휘말리게 될 갈등과 논란을 <다크 나이트> 연작은 시적으로 과장한 형태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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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사회의 이슈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다크 나이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슈퍼히어로는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이다. 엑스맨과 배트맨은 슈퍼히어로계 정치 성향 스펙트럼의 왼쪽 끝과 오른쪽 끝에 해당되기도 한다. 여러모로 엑스맨은 배트맨의 대척점이다. 그들은 21세기 스크린 영웅 중 예외적으로 힘을 곧 선이 아니라 낙인으로 이해하며 출발한다. 인종주의적 차별에 맞서 소수자의 힘과 도덕적 우위를 보여주는 일을 활약의 내용으로 하는 엑스맨의 궁극적 목표는 기존 사회를 안정화하는 게 아니라 충격하고 뒤흔드는 데 있으며 그 과정에서 지배적 가치관을 뒤집어야 한다. 한편 엑스맨들은, 친밀한 타인이라고는 심리적으로 유사성을 가진 숙적들밖에 없는 배트맨과 대조적으로 같은 마이너리티로서 동료들과 이익집단, 정치적 결사를 결성한다. 두 슈퍼히어로는 반대 경로를 밟아 우리를 동일한 지점, 현실 정치로 데려간다.
나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에는 첫눈에 반했지만 <다크 나이트> 2편과 3편에 대해서는 갈팡질팡했다. 일단 이런 부류의 주제라면 액션 블록버스터 아닌 영화들이 더 통렬하고 냉정하게 들려줄 수 있지 않겠냐는 의구심이 있었다. 특히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위험스러워 보였다. 이 영화가 월 스트리트 점령 운동을 정확히 상기시키는 스펙터클을 통해 반(反)자본주의적 저항을 야만적 폭동으로 축소한 다음, 고결한 엘리트 단독자의 희생에서 해결책을 찾았다는 해석에는 변호할 여지가 없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혁명에서는 코뮌의 형제애도 이데올로기도 대안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슈퍼히어로물이 2020년대 개봉 스케줄까지 예고하며 버젓한 장르로 안착해 점점 세련되어지면서, 재벌이 견제해야 할 대상에서 동경할 만한 영웅으로 여겨지는 현실이 도래하면서, <다크 나이트> 시리즈가 남긴 이미지는 불쑥불쑥 되살아나 나를 찌르기 시작했다. 클라이맥스 한복판에 들어앉아 있던 민란의 스펙터클, 악당과 정의의 사도가 공유한 뿌리를 감추지 않고 시스템을 보존하려면 초법적 행위가 필요하다는 신념을 뻔뻔하게 표명한 강성 히어로의 초상은,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조율된 서사에 최후 20여분의 전투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세련된 슈퍼히어로영화의 단잠에 안온히 빠져 있고 싶은 나를 불쾌하고 두려운 악몽처럼 흔들어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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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복도 소동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최상의 액션은 악당과의 결전이 아니라 우연히 오스코프 건물을 방문한 피터가 거미다운 반사 신경을 이용해 그웬을 추격하는 한 무리의 진로를 방해하는 대목이다. 이 연기를 위해 피터 역의 앤드루 가필드는 유명한 마임 배우를 초빙해 함께 동작과 동선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거미줄로 끌어당긴 커피를 시작으로 연쇄동작으로 이루어지는 이 슬랩스틱 시퀀스에는 여타 슈퍼히어로와 차별되는 스파이더맨의 속성이 눌러 담겨 있다. 다정한 남자친구다운 배려, 적을 약 올리는 장난기, 힘보다 민첩성을 앞세우는 움직임, 마지막으로 성공한 다음 천진하게 신나하는 표정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