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상영관에서 처음 영화를 접한 것이 중학교 시절 같다. 중간고사인가 기말고사인가 끝난 뒤 단체로 교복을 입고 영등포 어느 극장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난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옆 친구와 도시락 반찬을 비교해야 했던 나에게는 영화 속의 사랑이나 환상이 시답지 않게 보였는지 모른다. 오로지 이 한몸 던져 출세가도를 달려가야 하는 것이 나의 역사적 사명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인가 침을 튀겨가며 영화이야기 하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 됐다. 영화나 환상에 매몰되는 것은 나에게 죄악이었다. 그만큼 난 범생이었다. 범생이!
고등학교 1학년 때 포르노를 처음 봤다. 중소기업체 사장을 아버지로 둔 친구네 집에서였는데, 그 친구는 나에게 비디오라는 것을 보여준다며 안방으로 끌고 갔다. 아바의 공연실황을 담고 있는 비디오였다. 아바의 노래 <Thanks for the music>이 흘러나오고 있다가 갑자기 화면이 이상해지면서 그것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때 내 육체에서 일어난 변화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다. 그것은 죄악이었다. 죄악! 나도 어디서 들은 얘긴데, 죄악의 장면을 눈뜨고 볼 수 없어서 포르노 볼 때면 항상 선글라스를 끼는 친구도 있단다. 그러면서 보긴 다 본단다. 내 참 우스워서. 하여간 포르노 그건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죄악이었다.
대학을 갔다. 철학과! 거기다 했다. 연극! 이 무슨 인생의 아이러니란 말인가? 내 출세가도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집에서는 날 인간 취급도 안 했다. 난 죄악에 빠져들었다. 술, 담배, 외박, 혼숙, 보들레르, 마르크스, 이 사람, 저 이야기들…. 그리고 노래. 하지만 여자랑은 안 잤다. 단연코.
80년대 야만의 시절이 지나고 90년대 중반까지 나는 암흑 속에 살았다. 역사적 이유라기보다 내 개인적인 이유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주어진 인생을 소비하는 것이 전부였다. 기댈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없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존재를 지우면서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면서 타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인식주체 밖에서 나를 희롱하고 괴롭히고 나를 미치게 하는 그 타자. 나의 존재를 규정하며 나이며 너인 타자. 그 타자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다가 나는 ‘웃음’이라는 엄청난 놈을 만났다. 그 웃음을 나는 우리의 불쌍한 찰리에게서 배웠다. 그것은 나를 광대적 삶으로 이끌었다. 그것은 다시 내가 연극을 하는 이유가 되었고 지금도 변함없다. 웃음은 내가 살아서 숨쉬고 느끼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의 희열을 복원시켜주며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웃음은 통념과 관습의 맥락을 파괴하고 전혀 다른 차원의 맥락을 제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웃음은 타자가 결핍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힘을 제공한다.
어느 순간 난 구라를 까면서 먹고 사는 사람이 되어 있다. 그 구라에도 급수가 있다고 알려준 영화가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다. 사람들은 욕망을 가지고 기억을 조작한다. 그 조작으로 이야기를 꾸민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의 현실인 것이다. 구라로 폭력을 은폐하는 사람도 있고 구라로 희망을 전하는 사람도 있다. 아키라는 인간의 구라충동의 근원과 그 구라 끝에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 사람은 구라를 깔까? 그 거짓이야기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웃음과 구라! 이 두개만이라도 영화에서 건졌다면, 내 인생에서 영화, 엄청난 일 한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