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구박을 피해 반찬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잘 풀리지 않는 시나리오를 붙들고 작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규정(최윤영)은 친구의 남자친구를 짝사랑하는 신세다. 일도 사랑도 꼬여만 가는 규정 앞에 어느 날, 마늘도 먹지 못하고 햇빛도 싫어하는 천재과학자 남걸(박정식)이 나타난다. 규정은 자기도 모르게 그의 기이하고 수상한 모습에 점점 더 빠져들고, 꽉 막혀 있던 그녀의 시나리오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댄 나의 뱀파이어>는 ‘한국형 뱀파이어 로맨스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신인감독의 의지가 담겨 있는 영화다. 그런데 어떤 장르도 현실에서 조금만 발을 떼면 쉽게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한국’에서 ‘뱀파이어’를 과연 어떻게 ‘수긍 가능’하게 불러올 것인가는 큰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재치 있게 장르적 상상력이 필요한 순간들은 규정의 시나리오로 우회해서, 그리고 규정과 남걸이 겪는 일상의 이야기들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일정 정도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낸다. 영화의 큰 줄기를 이루는 규정과 남걸의 로맨스와 규정의 부모, 방글라데시 이주민 친구가 엮어가는 이야기의 잔가지들은 ‘뻔함’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여기에 몸고생, 마음고생하며 청춘을 바쳐 시나리오를 써야 했을 감독 자신의 심정도 주인공 규정의 모습 속에서 느껴진다. 그럼에도 뱀파이어와 과학자 사이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제대로 잡지 못해 헤매는 남걸과 지나치게 평면적인 주변 인물들 모두 수습하기에 규정의 고군분투는 역부족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