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미화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2014-07-07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백종헌
<경주> 조영직 촬영감독

다큐멘터리 2014 <살아남은 아이들>(촬영 중) 2013 <풍경> 2009 <기이한 춤: 기무>

모바일 단편영화 2013 <미생: 프리퀄>(안영이, 오차장, 한석률편)

장편영화 2014 <경주> 2012 <피에타>

<경주>(2014)의 장소 헌팅차 경주에 내려갈 때만 해도 조영직 촬영감독의 마음은 급했다. <풍경>(2013)에 이어 호흡을 맞추는 장률 감독에게 좀더 좋은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감독의 전작들을 다시 보며 감독의 화면 연출을 파악하는가 하면 주로 조감독이나 스크립터가 담당하는 콘티도 직접 그려 보였다. 그런데 정작 장률 감독은 “차부터 한잔 하자”고 했다. 그 여유를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별말 없이 촬영할 곳을 가만히 바라보시더라. 그러곤 그만 가자, 하시고. 카메라를 어디에 둘지 정도만 얘기하셨다. 근데 선생님이 바라보신 곳이 곧 카메라의 위치가 됐다.” 적요 속에서 경주를 응시하면서 조영직 촬영감독은 촬영의 기본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공간 속의 인물들을 관조하듯, 공간에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애당초 품었던 욕심이 모조리 사라진 건 아니다. 카메라 움직임이 거의 없는 <경주>에서 유일하게 카메라가 능동적으로 나아가는 후반 풀숲 장면을 스테디캠으로 찍어보자고 제안했다. 높고 넓은 능을 화면에 제대로 담는 데 최적의 화면비는 뭘까를 끊임없이 궁리했다. 무엇보다 박해일, 신민아의 아름다운 얼굴을 “예쁘게 찍어보자”는 욕심도 났다. “근데 그런 장면들은 다 잘려나갔다. 선생님께서는 인물을 미화해서 보여주는 걸 원치 않으셨다.” 뭔가 덧붙이기를 꺼려하는 장률 감독의 바람대로 그는 결국 자연광을 끌어왔고, 능의 녹색과 주요 배경이 된 찻집의 노란색 벽지도 그대로 느낌을 살리는 방향을 택했다. 사전에 어떤 계산도 필요치 않았다. “<경주>는 시간의 흐름이 중요한 영화 같지만 시간이 중요하지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촬영이 뒤죽박죽으로 진행됐는데 나중에 보니 이 영화가 주인공 최현의 백일몽 같다고 하면 시간대가 섞여 있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는 장률 감독을 감독님 대신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대학원 지도교수셨다. 선생님의 팬이기도 했고. 존경의 마음에 지금도 선생님이라고 한다.” 장 감독에게 좋은 평을 들었다는 졸업작품을 만들기 전까지 그는 꽤 다양한 전공을 거쳤다. “사진에 관심이 많은 공대생이었다. 영화를 하자고 마음먹고 재학 중인 학교에서 영화와 가장 가까워 보이는 철학과로 전과했다. 연극영화과로 편입해 상경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배웠다.” 10년째 영화와 연애 중인 그는 2009년부터 핸드메이드 필름 워크숍에서 실험영화를 중심으로 한 촬영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특정 장르를 편애하지도, 영화의 규모를 따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현재 그는 1980년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전상진 감독의 다큐멘터리 <살아남은 아이들>을 촬영 중이다. “다큐멘터리지만 하이 콘트라스트에 누아르풍의 화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작품에 따라 유연하게 시각을 바꿀 줄 알아야 좋은 촬영자”라는 그만의 지론은 쉼 없이 풍경을 따르는 여행자의 바람과도 닮았다.

사진문고 시리즈

조영직 촬영감독이 꾸준히 모으며 두고두고 다시 본다는 열화당의 사진문고 시리즈다. 그의 영상 작업에 자극이 되는 도록들이다. 이중 <경주>의 레퍼런스가 된 건 조엘 마이어로위츠라고 귀띔한다. 참고로 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인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 포스터도 그의 작품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