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지금 이대로 괜찮나요?
2014-07-03
글 : 김혜준 (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이사장)
사진 : 씨네21 사진팀
신임 위원장 없는 영화진흥위원회와 영화계에 대한 어느 경계인의 생각
영화진흥위원회 역대 위원장

더이상의 공모는 없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신임 위원장 3차 공모가 무산되면서 영진위 임원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가 직접 후보를 추천하게 됐다. 임추위의 추천 작업이 끝나면 문화체육관광부가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최종 후보를 골라낼 예정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영화인은 많지 않다. 이런 방식의 인선이 영진위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칠지 우려하는 영화인은 많지 않다. 영진위 사무국장과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지냈던 김혜준 이사장(모두를 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이 고언을 보내왔다. 영진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영진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고민하자는 간곡한 제언이다. 영화계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위원장과 위원의 임명 방식과 임기가 달라서, 위원들이 위원장을 견제하기 어려운 구조일 뿐만 아니라 상당 기간 신임 위원장 임명이 이뤄지지 않아서죠. 위원장이 유일한 상임 직책인 만큼, 사퇴 의사를 밝힌 국무총리가 어정쩡하게 자리를 지키는 국정상황보다 사실은 더 안 좋죠. 그런데도 영화계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걸로 보입니다. 그래도 될까요? 설마 관심 두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영진위가 잘 돌아간다거나 영진위로 인해 도움받는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이명박 정부 때의 트라우마 때문인가요? 이러다 정말, 큰 낭패를 볼지 모릅니다.

2016년까지 적용되는 정부의 3년 단위 콘텐츠산업진흥 기본계획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 계획에는 온라인 영화서비스업을 신설한다는 것 말고는 영화산업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왜? 영화에 대해서는 정부가 할 만큼 했다고 보는 듯합니다. 그러니 지속 성장과 경쟁력 강화를 말하면서도 그걸 뒷받침하는 정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5대 중점 추진과제 중 첫 번째인 ‘투융자/기술기반 조성’에 영상미디어센터와 작은영화관이라는 향유권 제고 정책이 들어가 있는 부조화가 두드러져 보일 뿐. 계획이 세워지는 과정에서 영진위는 과연 제 역할을 했을까요?

반면, 영진위 사업계획을 보면 지나치게 세밀합니다. 배급 점유율이 10% 이상인 투자배급사에서 제작하는 영화를 제외한 영화현장 응급의료지원, 해외영상물 로케이션 유치를 위한 영화촬영지 정보 네트워크 구축, 가족영화에 해당하는 전체관람가 등급과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에 집중하는 영화전문 투자조합에 100억원 출자, 현장영화 기술 발굴 지원…. 따져보면 하나하나 의미야 있겠지만, 외부 연계자원의 활용을 고려하지 않는 독자성이 너무 강해서 고립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다른 쪽에 손을 내밀면 되는데 혼자서 다 하겠다면 당연히 효율성이 떨어지죠. 현장 밀착형 응급의료 서비스는 지역 영상위원회를 돕는 119 구급대나 의료기관 등의 지원 네트워크를 통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 않나요? 청소년들이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투자 재원만 늘린다고 가족영화와 청소년영화 제작이 활성화될까요? 흥행이 안 되면 투자의 지속성이 있을까요? 2013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우수(B) 등급을 받았으니 잘하고 있다고요? ‘부채 관리와 재무 건전성’이나 ‘노사 복리후생’이 영진위 경영평가의 적합한 지표인가요? 영화계의 평가도 그럴까요?

미국보다 많은 국민 1인당 영화관람 횟수와 한국영화 관객점유율, 적정 수준의 제작투자부문 수익률, 부가시장과 기술서비스 수출 분야에서의 청신호. 반면, 한국영화 동반성장협의회 차원의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불공정 모니터링 신고센터의 보고서에서 정리한 상위 3개 업체 시장 점유율 등의 산업집중도 지수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CGV, 롯데, 메가박스 등 3대 브랜드 극장의 좌석수 점유율이 93.6%에 이르는 산업구조의 고착화는 문제지만, 관객의 평가를 받을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하는 장치인 특정 영화에 대해 연속 7일간 35회차 상영 보장 비율 77.71% 같은 동반성장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설국열차>가 상영되던 지난해 8월에 나타났던 상위 세 영화의 상영횟수 점유율에서 55.2% 같은 수치가 어른대긴 하지만 그것 역시 경쟁작의 출현으로 자연스럽게 조절되는 것 같습니다.

BFI와 같은 영화 거버넌스의 매개자

영화계는, 콘텐츠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이제야 만들겠다는 ‘콘텐츠창의생태계협의회’를 이미 운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업만이 아니라 스탭을 포함한 모든 산업주체들의 고충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하지만 동반성장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 수가 많은 것만큼 영화계의 이해관계는 갈수록 복잡합니다. 특히 원천적 저작권자들의 권한을 보장해달라는 요구가 늘어납니다. 점점 더 많아지는 표준계약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고, 당사자 사이에 합의해야 할 사안이 많아질수록 소통을 촉진하는 영진위의 조정자로서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진위가 무슨?’ 하고 반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메이저 제작사와 직능조합이 직접 협상을 벌이는 할리우드와 우리의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영진위의 구성과 역할이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하면, 소통과 합의를 위해서 영진위만큼의 역할을 할 곳은 없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영진위는 영화를 둘러싼 이해관계자 공동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네트워크의 형성, 권한 배분, 의사결정 방식으로 요약되는 영화 거버넌스(협치)의 매개자여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창조경제 정책의 선진모델을 제시했던 영국 신노동당 정부시절의 영국영화연구소(BFI, British Film Institute) 사례를 참고하는 게 좋겠습니다. “풍성하고 경쟁력 있는 영화산업 육성을 통해 전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다양하며 생동감 있는 영화로 영국이 디지털 시대의 영화산업에서 국제적인 중심에 선다.” 목표가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또 창도(advocacy), 협력, 경제, 다양성과 포용성, 우수함과 혁신성, 개방성, 투명성, 접근성 등을 전략적 원칙으로 삼았지요. BFI는 당장의 영화만이 아니라 재능 있는 신인의 발굴 육성,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한 새로운 관객층 개발, 분야별 파트너십을 통한 교육과 숙련, 평생교육 등 미래지향적인 토대 강화를 강조했습니다.

끊임없이 논란을 벌여온 사안이지만, 위원장 1인과 사무국 중심의 단선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뜻하는 ‘독임제’로 영진위가 운영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위원을 먼저 위촉하고 그 위원들이 위원장을 호선하던 영진위 초기 모델이 복원되도록 영화계가 힘써야 합니다. 당장 어렵더라도 그런 원칙에 가깝게 운영되도록 정책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위원장은 3년 단위로 바뀌더라도, 영화계의 합리적인 거버넌스는 유지, 발전되어야만 합니다. 동반성장협의회와 영진위 과제별 소위원회의 지속성을 유지시키면 됩니다.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했다고 세종시 정부가 되지 않듯이 영진위가 부산에 있다고 부산 영화진흥위원회가 되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영진위 구성원들이 지리적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인가이죠. 거듭 말하거니와 소통을 촉진하고 좋은 거버넌스를 작동시켜야 합니다.

창의 파트너십과 민간과의 협력

미래세대를 위한 창조적 환경을 만드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창의력/상상력이 풍부한 사회문화와 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해, 전국적으로 약 3천개에 이른다는 영국의 스토리텔링 클럽과 미국 MIT 제작실험실 Fab(Fabrication) Lab의 사례를 합쳐 국정과제로 선택한 ‘무한상상실’ 사업. 창의 활동을 강화하는 행복지향의 예술교육 선도형 학교나 2016년부터 보편화되는 자유학기제. 영진위는 과연 어떤 고민을 내놓고 있습니까? 교육당국과 현장 교사들에게 맡겨놓으면 되는 일인가요? 교육자로서의 역할과 영화 창작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영화계의 젊은 세대마저 예술인 복지재단만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까? 창의적인 청소년들이 돌고돌아 뒤늦게 영화를 선택하도록 수수방관할 작정인가요?

이 사안은 결국 산업계, 교육현장, 지역 등이 협력적 관계를 형성하는 창의 파트너십에 관한 사항입니다. 영진위와 영화계가 지역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이고요. 영진위는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 체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각각의 영상위원회가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요? 지역별 이기주의는 비효율을 낳습니다. 1906억원 규모의 부산 국제영상콘텐츠밸리(야외 촬영장) 조성 계획이나 209억원 규모의 제천 스토리창작클러스터(시나리오 창작 레지던스) 같은 무모함에 대해 휘슬을 불고 설득해야 합니다. 영화 관련 재원은 한쪽이 쓰면 한쪽이 못 쓰는 풍선과 같은 원리를 갖고 있으니까요. 하드웨어 부문과 운영 부문 예산이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BTL(민간이 투자해서 시설을 짓고, 지자체는 일정기간 원금/이자/적정수익을 투자자에게 되돌려주는 방식) 같은 투자모델을 찾아서 제안해야 합니다.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 갔더니 빈자리가 있더군요. 계약직이 그만둔 뒤 아직 안 뽑아서입니다. 계약기간 2년 미만의 비정규직을 발생시키는 인력 운용 방식은 하루 빨리 바꿔야 합니다. 위탁사업은 과감하게, 이미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4∼5년 단위 위탁으로 가는 게 맞습니다. 지역에서 영화산업의 맥락과 클러스터가 형성될 수 있도록 사람 중심의 휴먼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도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민간영역과의 협력도 강화해야 합니다. 지난해 8월 문화체육관광부 유진룡 장관이 처음으로 문화분야 사회적 기업가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사회 체제가 좀더 공평해지도록 사회 시스템을 바꾸려고 애씁니다. 아껴 쓰고 나눠 쓰려는 사람들의 선한 의지를 모아 내는 ‘아름다운 가게’, 폐품을 활용해서 재미난 악기를 만들고 그걸 이용해 뛰어난 공연을 펼쳐 보이는 ‘노리단’ 등의 사례. 여성/시니어/청년/장애인/이주민 등의 취업도 돕고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서비스도 펼치면서, 사회적 성과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이타주의 사회적 기업. 올 초부터는 매달 만나서 문화복지 영역의 성과를 내보자고 했다던데, 장관이 바뀌고 마네요. 이런 일을 이제는 영진위 같은 공공기관이 해야 합니다. 민간 재원도 끌어들여야 합니다. 이미 기획개발을 중심으로 신진 인력 육성에 기여하고 있는 CJ문화재단은 글로벌 수준의 혁신 활동을 전개하는 선댄스재단 같은 역할을 할 수 없을까요? 아시아영화아카데미는 꼭 영진위가 맡아야 할까요?

정의론으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은 시장이 배움, 시민의 의무, 정치 같은 물질적이지 않은 영역에서 작동하기 시작할 때 시장원리가 사회적 가치와 규율을 제거해 버린다고 지적합니다. 시장경제를 뛰어넘는 시장사회가 되면서 인간적인 삶을 사는 필수조건까지도 돈이 결정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을 통해서 “민주주의, 관용, 사회정의, 사람과 문화 사이의 상호존중의 틀 안에서 번성하는 문화다양성이 인간의 능력과 가치를 육성해주는 풍요롭고 다양한 세계를 창조한다”고 확인했죠. 샌델과 가치 논쟁을 벌이는 마이클 포터는 사회적 발전과 경제적 효율이 서로 시너지를 줄 수 있는 보완적 관계를 갖는다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CSV, Creating Shared Value)를 경영전략으로 주창했습니다. 비즈니스는 사회문제를 방치할 때가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려 할 때 기업이 바라는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대기업 종사자들은 이 CSV를 입에 달고 삽니다만,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례는 드뭅니다. 영화제작가협회와 사랑의연탄나눔운동이 함께 추진하는 영화나눔 활동을 하면서 겪는 것인데요, 제작사는 공공상영에 동의하는데 배급사가 거절합니다. 심지어 DVD가 출시된 지 한참 지난 작품을 단매방식으로 팔겠다는 회사도 있습니다. 마을회관에서 시니어 20~30명을 대상으로 상영하는 데서, 수백명의 군인이 한꺼번에 영화를 볼 때의 상영료를 챙기겠다는 이런 몰상식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은영화관이 문화향유권 충족뿐만 아니라 틈새시장을 늘리는 작은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일부 배급사의 불합리한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일에 영진위가 나서야 하고요.

영화계의 창문 같은 존재

1999년 5월부터 15년. 영진위는 이제 바른 태도와 체질 개선을 위한 노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희망 만들기를 추구했던 세종의 수성(守成)의 리더십에서 배워야 합니다. 세종의 정치철학이 담겨있다는 <대학연의>에서 강조한 지도자의 덕목을 제 식으로 옮겨보겠습니다. “수신, 현자와 원로에 대한 존경,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화목하기, 다양한 의견 경청, 힘들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전문가 활용, 주변국과의 협력.” 이제 곧 초등학교에서도 배울 거라는 ‘기업가정신’은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창출하기 위하여 포착한 기회를 두려움 없이 행동으로 옮기며 도전적인 삶을 사는 태도와 정신”이라고 정의됩니다. 물론, 기업가정신의 두 가지 핵심 요소 중 실행력도 중요하지만 합리성이 먼저입니다. 권력자의 생각을 비판 없이 실행할 뿐이거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다른 가치 찍어내기 같은 무모함을 실행력이라 하지는 않지요. 문화산업의 국가기간산업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신개발주의 문화산업정책이 지금 필요하다고 보진 않습니다. 다만, 민주성과 책임의식을 갖고, 관심의 폭을 확장하고 창조적으로 연대해야 합니다. 또 영진위는 우리 사회가 영화계를 들여다보면서 어떤 판단을 하게 되는 창문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영화계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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