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Her)에서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섹시 배우의 목소리만을 캐스팅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몰인정함과 경우 없음에 항의하는 심정으로 스칼렛 요한슨의 섹시함이 온전히 발휘된 영화 <돈 존>을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었으나 지난주 여자의 알몸과 모피 부츠 영상의 실험 얘기를 하다 보니 발에 대한 페티시 얘기를 좀더 하고 싶어졌다. <돈 존> 이야기는 조만간 ‘남자는 어떤 방식으로 포르노그래피와 함께 성장하는가?’라는 주제로 상세하게 다룰 예정이니 기대하기 바란다(<님포매니악>을 기대하고 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도발적인 여자 복장과 모피 부츠를 번갈아 보여주기만 해도 모피 부츠에 대한 성적 반응이 나타난다는 (지난 회에 언급한) 실험은, 남성의 발 페티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모피 부츠가 아니라 모피 장갑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발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곧바로 반응했다. 영화 배우 잭 블랙은 공식석상에서 자신에게 발 페티시가 있음을 고백했다. “저도 모르게 여자들 발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어요. 하이힐도 좋아하고, 플립플롭(일명 ‘쪼리’ )도 좋아하고, 샌들도 좋아해요. 하지만 맨발이 최고예요.” 잭 블랙이 음흉한 눈빛으로 여성들의 맨발을 바라보는 모습은, 이상하게 섬뜩하거나 하지는 않고 웃음이 난다. 여자들의 맨발을 보면서 잭 블랙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겠지. 아니면 ‘당신의 뒤꿈치의 각질까지 사랑해요’ 이런 노래를 즉석에서 만들어 부르겠지.
줄리 베나스라의 다큐멘터리 <하이힐을 신은 여자는 위험하다>(God Save My Shoes)에는 하이힐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온다. 여성의 하이힐을 디자인할 때 발가락이 살짝 보이게 하는 것은 ‘발가락 골을 보고 가슴골을 연상하게 하기 위해서’라거나, 하이힐의 디자인이 여성의 성적 개방성을 상징한다는 의견이나 (이를테면 뒤가 트인 슬링백이라든지) 하이힐을 신은 여성은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먹잇감을 찾는 남자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가설 등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지만, 신체의 여러 부위 중 발이 에로틱한 신체의 일부라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남자들은 여자의 몸을 볼 때 가슴이나 엉덩이나 발을 본다(고 알려져 있다). 발 페티시가 있는 남자들은 여성의 신발과 성적 경험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고, 심각한 단계에 이르면 여자 없이 구두만 있어도 자위행위가 가능하다고 한다. 발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 상태에 이르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발을 자신의 성적 욕망에 맞추고 싶어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신데렐라 이야기다. 왕자는 유리구두에 쏙 들어가는 여성의 발을 찾아다닌다(굉장히 성적인 상징이다). 발은 인간의 몸에서 가장 고통받는 부분이고,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두 발을 관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발을 관리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사슴의 지방이나 골수, 또는 다양한 재료로 만든 연고와 고약을 개발했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발은 여전히 가장 상하기 쉬운 신체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교훈은 어쩌면, ‘발을 작고 아담하게 만들어야만 남자들의 성적 환상을 충족시킬 수 있다’이거나(<신데렐라>의 원작에서 계모의 두딸은 유리구두에 발을 넣기 위해 발의 일부분을 잘라낸다) ‘당신이 지금 계모에게 온갖 학대를 받고 있을지라도 발을 잘 관리해야만 왕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발 관리 숍의 홍보 문구에나 등장할 법한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신데렐라의 발이 각질투성이에 무좀 증상도 있는 데다 냄새까지 났다면 왕자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과연 유리구두를 제대로 신겨줄 수 있었을까. 하긴 남자의 발 페티시를 유발하는 데 ‘발 냄새’가 큰 작용을 한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프로이트는 발에 대한 강박이 복종적인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포르노 사이트에서도 그런 흔적을 자주 볼 수 있다. 발에 집착하는 남성은 여성에게 굴복당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채찍을 들고 롱 부츠를 신고 벌거벗은 남자 위에 군림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며 남자들은 흥분한다(그런 포르노그래피를 봐도 별다른 느낌이 없는 걸 보면, 어휴, 하이힐에 가슴이 찔리면 무척 아프겠다 하는 유의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내게는 발 페티시는 없는 모양이다). 발은 ‘강함’의 상징이다. 실제로 인체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발과 다리’다. 누군가를 짓밟을 때 우리는 당연히 발을 쓴다. 때리는 것보다 걷어차는 게 좀더 잔인해 보인다. 인체에서 가장 딱딱한 부분은 어디일까? 아마도 (사람마다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발뒤꿈치가 아닐까.
독일어에서 ‘hacke’는 곡괭이를 뜻하지만 발뒤꿈치를 뜻하기도 한다. 인간은 발뒤꿈치를 곡괭이처럼 이용하며 땅에 구덩이를 파고, 곤충을 밟아 죽이면서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었지만 어떤 인간은 그 발뒤꿈치를 좀더 아름다운 용도로 사용하고 싶어 한다. 유럽의 민속학자인 루돌프 셴다는 <욕망하는 몸>이라는 저서에서 곤충학자 파브르의 ‘발뒤꿈치에 대한 추억’을 인용한다. “선생님이 다년초 식물 잎 가장자리에 있는 달팽이를 밟아 죽이라고 우리를 데리고 나가면 나는 달팽이를 밟아 죽여야 하는 내 임무를 양심적으로 행하지 않았다. 나의 발꿈치는 내가 모아놓은 달팽이 앞에서 가끔 주저한다. 그것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나는 쉬는 시간에 가지고 놀기 위해 가방을 그것들 중 가장 화려한 것으로 채운다.” 주저하는 발뒤꿈치야말로 파브르를 곤충학자로 만든 동력이었을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 발뒤꿈치를 자주 이용했다. 가끔은 화풀이로 지나가는 곤충에게 발뒤꿈치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선을 긋기 위해 사용했다. 아이들과 게임을 하기 위해서, 공놀이를 하기 위해서, 발뒤꿈치로 길고 긴 선을 그었다. 물주전자가 있을 때는 그걸 이용했지만 대체로 발뒤꿈치를 이용했다. 내 몸의 가장 강력한 부위를 이용해 게임을 하기 위한 선을 그었다는 게, 놀이를 위해 힘을 빌려온 게 나는 마음에 든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발과 다리는 인체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지만 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그 무기를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 어떤 선수는 다른 선수의 정강이를 밟는 데 자신의 뒤꿈치를 사용하지만 (삑, 레드카드!) 어떤 선수는 보이지 않는 동료에게 힐 패스를 하기 위해 섬세하게 뒤꿈치를 사용한다. 축구장에서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지녀야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 축구 관련 영화에서 위대한 걸작인(나는 그렇게 믿는다) <소림축구>에서는 주성치가 자신의 무쇠다리를 섬세하게 만들기 위해 달걀을 이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두 발로 달걀을 완벽하게 트래핑하다가 손으로 거머쥐는 순간 달걀이 깨지는 장면은 (컴퓨터그래픽 티가 너무 나는 게 흠이지만) 영화의 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발은 손보다 섬세할 수 있다. 발 페티시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축구로 끝나고 말았다. 이게 다 월드컵 때문이다. 널리 이해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