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회가 끝났다. 원래 엔딩 크레딧까지 올라간 뒤에 박수를 치고 잘 봤다, 고맙다 인사를 하는 게 예의지만 언제부터인가 관계자의 질문이 두려워졌다. “얼마 들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자신 있게 얘기했고 적중률도 높은 편이었다. 영화를 본 뒤 관객수를 예측해 적중시키는 맛은 꽤나 짜릿했다. 영화를 분석하는 능력이 있고 관람 흐름을 이해하는 감각이 있다는 걸 증명 받아서가 아니다. ‘아직 이 업계에 더 있을 수 있구나’라는 위안이 컸다. 영화를 보고 나서 얼마나 흥행할지 예측조차 못한다면 은퇴 말고는 답이 안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도통 모르겠다. 달리 먹고살 기술도 없는데 감각이 무디어지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해진다.
개봉을 앞둔 영화를 보고도 흥행 예측이 분분한데 기획 단계에서 관객수를 논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일 수도 있다. 마치 축구에서 공격의 시작은 골키퍼인 것처럼 그 터무니없는 일은 작가에서부터 시작된다. 글을 쓰기 전에 관객수를 예측하고 쓰라니, 웃기고도 슬픈 일이다. 예를 들면, 이런 장르에 이런 스타일의 영화라면 보통 200만 관객 정도가 된다라는 통계에서 순제작비 40억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쓰는 것이 타당하다. 보통은 예산에 얽매여 상상력을 죽이지 말고 마음껏 쓰라는 주문을 받는다. 마음껏 쓰고 난 뒤 대부분 예산에 맞춰 적은 돈으로 빛나는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라는 주문을 다시 받는다. 그런 과정을 겪다보면 글을 쓰기 전에 상상력의 범주를 정해둔다. 로맨틱 코미디는 보통 200만명을 예상하니 그 선을 넘지 않는 정도의 규모를 가진다, 액션영화는 300만명을 계산해 규모를 정한다 등등. 이러니 행성간 고속열차에서 피어나는 아기자기한 사랑 이야기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을 처음 쓸 때만 해도 100억원을 넘지 않는 규모로 제작을 하려 했다. 매 신 아끼고 절제하며 아이디어를 짜냈다. 돈 때문에 쓰고싶은 장면을 못 썼다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더 고민을 해야 했다. 그럴 때면 결국 ‘통일이 됐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내수시장 1억명을 갖는다면 우리 영화도 상상력의 폭이 더 커질 텐데 말이다.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으면 제작 예산을 수립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예산은 시나리오가 아니라 흥행 예측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영화 <소수의견> 때도 그랬다. 시나리오상으로는 분명 30억원 정도의 예산이 있어야 함에도 실제 예산은 그의 60% 정도였다. 예산이 줄면 많은 부분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방 두개, 거실 하나인 집에 살림을 차렸는데 돈이 모자라 가구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차라리 단칸방에 살림을 차렸다면 꽉 차 보이기나 했을 텐데…. 10억원 예산의 영화를 할 때나 100억원 예산의 영화를 할 때나 고생의 강도는 비슷하다. 대작영화라고 해서 현장이 풍성하고 따뜻한 것은 아니다. 속상한 것은, 그 정도 예산에 이 정도 만들었으면 대단하다 하소연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예산이 얼마건 영화 관람비는 똑같기 때문이다. 실제 예산을 운영하지 않는 작가에게도 예산은 비켜갈 수 없는 굴레다. 그래도 하나 희망이 있다면, 주위에서 상상력이 돈이 되는 시대라고 외쳐주는 것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