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출항 준비는 끝났다 이제 코믹 액션 어드벤처의 바다로!
2014-07-31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최성열
판타지 해양 블록버스터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현장을 가다

“고래 그거… 낚시로 잡나, 그물로 잡나.” 고래의 ‘고’자도 모르는 산적들이 조선의 국새를 삼킨 고래를 찾으러 바다로 떠난다. 여기에 집단의 운명을 건 비장한 해적들이 합류한다면? 올여름 개봉 대기 중인 세편의 해양 블록버스터(<명량>과 <해무>) 가운데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은 ‘웃음’을 담당하는 영화다. 호방한 인물들과 스펙터클한 모험으로 관객의 마음을 공략할 준비를 마친 <해적>은 8월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겨울, 혹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막바지 촬영에 한창이던 <해적>의 남양주 야외 세트장을 방문했다. 양수리 산자락에서 금방 내려온 것만 같은 산적들과 화려한 갑옷으로 무장한 해적들이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대치 중이었던 그 겨울의 현장을 소개한다.

“형님!” 궁지에 몰리자 갑자기 ‘친한 척’하는 산적들의 능청스러움 앞에서도 목석같은 해적 소마(이경영).

목에 칼이 닿자 심각한 표정을 짓던 장사정(김남길)은 ‘컷’ 사인이 떨어지면 이내 장난스럽게 웃었다. <해적> 제작진은 김남길의 호탕한 실제 성격이 장사정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해적>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4인 난전’은 군무를 연상케 하는 액션이 인상적이었다.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되는 <해적>의 복합적인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는 시퀀스다.

남양주종합촬영소 야외 세트장에 놓인 소마의 배. 김지아 미술감독은 “10m가 넘는 큰 배를 세척 만들고, 그 배를 10여 가지의 다른 배로 변주했다”고 말했다.

‘도적’을 주인공으로 하다보니 산적과 해적이 어떤 무기를 사용할지가 중요했다. “무기를 통해 각 인물의 개성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이석훈 감독의 요청에 따라 미술팀은 소마의 철퇴 달린 봉, 여월의 날렵하고 가벼운 느낌의 연검 등을 제작했다. 전쟁 블록버스터 <마이웨이>의 미술을 담당했던 김지아 감독의 경험을 살려 해무탄, 수류병 등 현대적 무기의 특징을 반영한 소품들도 <해적>의 볼거리다.

설리, 이런 모습 처음이다. 여월을 언니처럼 따르는 해적 흑묘(설리)가 위기의 순간 여월에게 무기를 건네고 있다. 이날은 설리의 마지막 촬영날. 막간을 틈타 설리와 ‘인증숏’을 남기려는 스탭의 모습에서 그녀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해적 서열 30위에서 2위로 급격한 신분상승을 한 철봉은 사실 산도, 바다도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어수룩한 인물이다. 그런 그를 연기하는 유해진은 가는 곳마다 웃음을 몰고 다녔다. 그는 “매처럼 날아오르겠다”며 와이어 액션을 시도했으나, 그 결과는….

1월4일 토요일. 경기도 날씨 맑음, 예상 기온 영하 5도.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의 현장 방문을 앞두고 ‘내일 날씨’를 이토록 열심히 검색하게 될 줄은 몰랐다. 폭설과 한파가 몰아쳤던 지난겨울은 촬영 현장에 머물렀던 전국의 모든 영화 스탭들에게 혹독한 한철이었을 거다. 하지만 체감할 수 있는 추위에도 단계가 있는 법. 양수리 산자락에 위치한 남양주종합촬영소, 음기가 흘러넘치는 그곳에서도 가장 높은 지점에 자리잡은 <해적>의 야외 세트장은 겨울현장에 이골난 영화인들에게조차 상상 이상의 추위를 안겨줬다. “<협녀: 칼의 기억> 현장에 맛있는 간식 들고 방문하신 분들에게 그랬다. 이거 <해적>팀 갖다줘야 한다고. (웃음)” 지난겨울 담양과 양수리를 오가며 두 영화의 촬영 현장에 몸담았던 배우 김태우의 농담이 <해적> 현장의 추위와 고단함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분명 경기도엔 눈이 안 온다는데, 양수리엔 펑펑 오는 거다. 우리 스탭들이 도리어 여기 눈 많이 온다고 기상청에 제보해주기도 했다.” 박아형 PD의 말처럼 일기예보로도 알 수 없는 양수리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추위와 더불어 야외 세트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해적> 스탭들의 ‘공공의 적’이었다. 거대한 배에 수북이 쌓인 눈을 치우느라 촬영을 멈추기도 여러 번. 촬영 스케줄이 수시로 조정되는 바람에 연말로 예정됐던 현장 방문도 연초로 미뤄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구름 한점 없는 양수리의 하늘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이 좋은 날씨를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듯, 이른 아침부터 촬영 준비에 돌입한 스탭들을 따라 ‘해적선’에 올랐다.

‘테러리스트’와‘ 무정부주의자’의 만남

“산과 바다가 만난 것도 깊은 인연인데, 우리 앞으로 형님 동생 하면서 형제처럼 지내는 게 어떻겠소. 형님!” 산적 무리의 수장 장사정(김남길)이 은근슬쩍 해적 소마(이경영)를 떠본다. 방금 전까지 ‘적’이었던 자에게 ‘호형호제’를 제안하다니, 보통 너스레가 아니다. 하지만 능글맞은 산적 무리와 달리 군기가 꽉 잡힌 해적 일행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도적 중에 제일 모자란 것이 해적이라더니, 호형호제가 되겠나.” 소마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호탕하게 웃던 장사정의 목에 해적들은 시퍼런 칼날을 들이민다.

조선의 국새를 삼킨 고래를 찾기 위해 해적과 산적이 바다로 모험을 떠난다는 것이 <해적>의 기본 줄거리다. 1월4일 아침의 촬영분은 복잡하게 얽힌 영화의 주요 인물들이 <해적>의 주요 악역 소마의 배에서 만나게 되는 장면이었다. 해적 여월(손예진)을 도와 소마를 몰아내려던 산적 장사정은 도리어 소마에게 인질로 붙잡히고 만다. 위기를 모면하려는 산적의 대처 방식과 해적의 무뚝뚝한 대응이 담긴 이 한 장면이 산적과 해적의 차이를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씨네21>과의 앞선 인터뷰에서 이석훈 감독은 산적을 ‘테러리스트’에, 해적을 ‘무정부주의자’에 비유한 적이 있다. 조선 개국과 동시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산적들은 현실에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산’이라는 지형지물을 이용해 유연하게 살아오는 법을 익혔고, 넓은 바다에서 몸둘 곳이라고는 배 안이 전부인 해적들은 배 한척에 자기들만의 나라를 건설하고 나름의 혹독한 규칙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날의 촬영 장면을 보건대, 별다른 정보 없이 현상금을 노리고 바다로 온 산적들은 아직 해적의 무서움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두목을 따라 호탕하게 웃던 산적들은 장사정의 목에 닿은 칼을 보고서야 웃음을 거둔다.

부수고 다시 만들고…

“입김이 너무 강하니까 호흡을 조금만 더 약하게 해주세요.” 이석훈 감독의 목소리가 메가폰을 통해 들려온다. 오랜만의 화창한 날씨라고는 하지만 <해적> 현장의 체감 기온은 영하 5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렇다보니 ‘컷’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해적>의 배우들은 언제 서로 칼을 겨누었냐는 듯 산적, 해적 가릴 것 없이 배의 액세서리인 화로에 모여들어 몸을 녹였다. 그런데 유심히 배 안을 살펴보니 지난 12월 150여 매체를 대상으로 진행된 <해적>의 현장 공개에서 목격했던 배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현장에서 만난 김지아 미술감독에 따르면 <해적>의 배는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배를 수리하는 과정이 정말 ‘전쟁’이었다. 처음에는 배가 부서지는 장면, 부서지지 않는 장면을 구분해 따로 촬영하기로 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고 날씨 때문에 스케줄이 조정되면서 계획대로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거다. 한동안은 ‘생짜’로 배를 부수고 ‘생짜’로 다시 만드는 고생을 반복했다. 지금은 부서진 상태의 난간을 따로 만들어, 조립식으로 필요할 때마다 교체하며 촬영하고 있다.” 이날의 촬영을 앞두고도 <해적>의 미술팀은 배의 일부를 부수고 복구하느라 밤을 꼬박 샜다. “자세히 보면 배의 곳곳에 재가 좀 묻어 있다. 어제의 촬영 과정에서 생긴 흔적”이라고 박아형 PD가 덧붙인다.

충실한 고증 vs 과감한 해석

올여름 개봉 대기 중인 해양블록버스터 가운데서도, <해적>은 가장 다채로운 종류의 배를 선보일 영화다. ‘해적’이라는 주요 캐릭터의 개성이 미술적으로 자유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고 김지아 미술감독은 말했다. “해적선을 어떤 형태로 가져갈 것인지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배의 형태와 장단점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해적>의 배 고증에 도움을 주신 해양박물관의 박사님이 해적선이라는 건 사실 남아 있지 않고, 복원을 했거나 발굴한 배들도 일부 구조로 전체를 유추한 것이기 때문에 좀 자유로워도 괜찮다고 말씀해주셨다.” 김지아 미술감독에 따르면, 해적단을 이끄는 여월이 타는 해적선은 중국의 정크선을 참조했다. 여월에게 쫓겨난 뒤 복수를 꿈꾸며 전세계를 유랑했을 소마의 배는 지중해의 범선 지벡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고래를 쫓는 게 해적뿐만이 아니다보니 <해적>에는 관군, 혹은 조정 관료들이 타는 군선도 등장한다. 명나라로부터 조선의 국새를 받아오던 중 고래의 습격을 받는 ‘사행선’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실존했던 평전선을 참고해 만들었다. 정리하자면 “군선은 고증에 충실하게, 해적선은 과감한 해석을 시도"했다는 게 김지아 미술감독의 말이다. 더불어 같은 배에 어떤 인물이 타는지에 따라 배의 분위기가 변하기도 한다.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인 소마가 해적선을 이끌 당시의 배는 ‘밀실’의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그 배를 강직한 인물인 여월이 이어받았을 때에는 배의 색감도 한층 밝아지고 이전보다 열린 공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적>의 미술팀은 세트를 변경했다. 이처럼 <해적>에 등장하는 다양한 유형의 배는 서사와 인물을 뒷받침하는, 이 영화의 중요한 캐릭터다.

긴장감 넘치는 최후의 결전

겨울 현장의 어스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유쾌한 장면을 촬영하느라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해적>의 야외 세트장에 어느덧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날 저녁에 예정된 촬영분은 과거에 악연을 맺었던 <해적>의 주요 인물 네명이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생사를 함께하는 고려의 관군이었으나 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돌이킬 수 없는 악연이 되어버린 장사정과 모흥갑(김태우)이, 역시 한때 해적단의 대단주와 소단주의 관계였던 소마와 여월이 목숨을 걸고 칼을 맞부딪친다. 단순히 액션의 합만 맞춰야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실어야 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현장에 모여 리허설을 하는 배우들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주요 인물 네명이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싸우는 장면이고, 드라마적으로도 각자의 한을 풀어야 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이날 저녁의 촬영은 무척 중요하다고 이석훈 감독은 말한다. 현장의 사정상 끝까지 이 장면의 촬영을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배’라는 한정된 공간의 구조 이곳저곳을 활용한 액션이 관전 포인트라는 이석훈 감독의 말이 중요한 힌트가 됐다. <해적>의 야외 세트를 둘러싼 그린매트는 이 영화의 시각특수효과(VFX)를 담당하는 덱스터디지털에 의해 번개가 치고 용오름이 오르는 사나운 바다로 변모할 예정이다. 함께 바다를 주요 무대로 하는 여름영화 <명량>과 <해무>와 비교하더라도 <해적>은 VFX의 비중이 가장 높은 작품이다.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한 이상, 실제 세트와 CG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결합될지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VFX팀이 작업한 레이어를 기반으로 CG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세트를 제작하는 것이 미술팀의 중요한 과제였다”고 김지아 미술감독은 말했다. 거대한 귀신고래가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고, 하늘 위로 솟구치는 용오름이 마지막 전투의 대미를 장식할 판타지 해양블록버스터영화. 지난 1월 <해적>의 촬영 현장에서 짐작할 수 있었던 건 일부분에 불과했다. 우리는 아직 <해적>에 대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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