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신음과 비명
2014-08-07
글 : 김혜리

<그녀>의 OS 사만다(스칼렛 요한슨)가 육체 없는 자의식이라면, <언더 더 스킨>에서 지구인 외피를 뒤집어쓴 외계인(스칼렛 요한슨)은 인간적 자아가 결여된 육신이다. 동시상영에 딱인 한쌍의 영화다. 남자들을 헛된 매혹에 빠뜨리는 자기 몸을 낯설어하며 거울을 바라보는 <언더 더 스킨>의 한 장면에서, 스칼렛 요한슨은 지구에서 영화 스타로 산다는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7/10

<랄프 스테드먼 스토리: 이상한 나라의 친구들>은 재미없기가 힘든 다큐멘터리다. 인물? 곤조 저널리스트 헌터 톰슨과 한팀으로 묶여 파란만장을 경험한 일러스트레이터다. 볼거리? 스테드먼의 카툰은 신랄하고 강렬해 편집해놓으면 신작 애니메이션으로 착각할 지경이다. 슬쩍 보여주는 작업 과정도 흥미진진하다. 인지도? 다름 아닌 스타 조니 뎁이 관객을 대리한 질문자로 등장한다. 한데 모르긴 해도 영화의 안전판으로 간주되었을 법한 조니 뎁이 뜻밖에도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작업실을 찾은 그는 한번도 스테드먼에게 반문하지 않는다. 예의 멋지게 후줄근한 모습으로 우리를 한눈팔게 하면서 “그렇군요”, “근사하네요”를 반복할 뿐이다. 물론 뎁의 출연 자격은 충분하다. 그는 헌터 톰슨을 두번이나 연기했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에서 적극적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조니 뎁의 존재감과 그가 자연히 상기시키는 거물 헌터 톰슨의 추억은, 주빈 랠프 스테드먼에게 맞춰져야 할 영화의 초점을 흔들어버린다. 찰리 폴 감독은 왜 조니 뎁과 스테드먼의 투숏을 필요로 했을까? 헌터 톰슨과 협업을 뺀 랠프 스테드먼은 어떤 아티스트이고 어떤 인생을 살았던가? 나는 극장을 나서면서도 답을 얻지 못했다. 일화와 구경거리로 가득한 이 영화에 부족한 성분은 대상의 매력에 대한 감독의 확신과 비전이다.

7/11

<님포매니악 볼륨2>를 마저 보았다. 통틀어 네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2권으로 나눈 개봉 형식, 캐릭터의 여정과 결말 등이 골고루 할리우드적인 관습에 도전하는 영화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방법이 달라졌을 뿐 ‘도그마 95’ 선언을 여전히 실천하고 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님포매니악>(이하 볼륨1, 2를 통칭한다)의 화자는 남보다 강한 성욕으로, 하얗게 재가 될 때까지 인생을 불살라온 여자 조(샬롯 갱스부르/스테이시 마틴)다.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서 다쳐서 쓰러져 있는 조를 구해준 친절한 남자 샐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이 밤새도록 그녀가 구술하는 성(性)의 자서전을 들어준다. 이 선한 사마리아인은 (정치적으로 올바르게도) 조의 성적 편력을 결코 책망하지 않으며 들어줄 뿐 아니라 (교양 있게) 주석을 달아준다. 이를테면 첫 성경험의 삽입 횟수는 피보나치 수열에, 복수의 섹스 파트너는 다성 음악에 비견된다. 그리스 정교와 로마 가톨릭의 차이는 사도마조히즘 경험담과 연결된다. <님포매니악>의 요점은, 샐리그먼이 달아주는 각주와 보론에 대한 조의 반응이다. 자신의 색정증을 보편적 인간 문화의 맥락에 넣어 우아하게 해설하고 짐짓 정당화해주는 신사에게 여자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어이없어한다. 나아가 “내 이야기를 경시하고 있다”면서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그녀가 느끼기에 이 남자의 점잖은 해설은, 섹스를 날것 그대로 차마 소화하지 못하는 비위를 감추기 위해 동원한 방어 시스템이고 쓸데없는 요설인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도발적 예술가로서 스스로를 조에게 동일시하는 한편, 야한 영화 <님포매니악>을 예술영화관에 앉아 샐리그먼처럼 분석하는 표정으로 관람하고 있을 부르주아 관객을 흔들어놓고 싶어 하는 듯하다. 급기야 샐리그먼을 중립적인 청자(聽者)의 의자에서 내동댕이치는 이 영화의 결말은 부르주아 문화의 코드인 정치적 공정함과 교양, 서사에 대한 로맨티시즘을 향한 조롱의 절정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정말 세상의 ‘샐리그먼들’을 확 쏴버리고 싶은 것이 아닐까? 아니, 적어도 쏴버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욕망이 <님포매니악>을 완성한 가장 큰 동력이 아니었을까? 이런 상상을 부추긴 꼬투리는, 조가 불감증을 극복하기 위해 말이 통하지 않는 아프리카 출신 남성을 일부러 섭외해 섹스하는 대목이었다. 회고 도중 ‘니그로’라는 비하 용어를 조가 입에 올리자 샐리그먼은 정색하고 그럼 못 쓴다고 제지하는데 조는 마치 이 비판을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된 반론을 펼친다. 그녀는, 하나의 단어가 사용 금지될 때마다 세계는 생기를 잃어간다는 신념을 피력하는 한편 나쁜 내용의 이야기를 좋은 포장으로 하면 떠받들고 악의 없는 이야기를 나쁘게 하면 핍박하는 세태를 꼬집는다. 2년 전 <멜랑콜리아>를 출품한 칸영화제에서 폰 트리에 감독이 “나는 나치다. 히틀러를 어떤 면에서 이해한다”라는 발언으로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정된 사건을 기억하는 관객에게, 이 장면은 확실히 조금 늦게 배달된 항소장처럼 느껴진다. 말하자면 해당 일화 전체가 의사소통 불능 상대와의 섹스가 주는 예외적 쾌락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인물이 금기어를 거론하는 상황을 마련하기 위해 구상된 건 아닐까 하는 추측이다. 캐릭터가 감독의 철학을 대변하는 일이야 다반사지만 여기서는 약간 조바심을 내며 영화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라스 폰 트리에가 보여서 아슬아슬하다.

그렇다고 <님포매니악>이 티셔츠 가슴팍에 새겨진 표어 같은 영화라는 건 아니다. <님포매니악>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풍성한 영화다. 관객에게 아첨하는 영화가 홍수를 이루는 마당에, 영화 관람 행위에 내포된 위선을 돌아보게 하는 ‘옆구리 찌르기’도 유의미해 보인다. (이 역시 부르주아 관객의 가증스러운 해석에 포함되겠지만.) 특히 영화 속 섹스가 로맨스와 포르노그래피 사이에서 디딜 수 있는 영역이 상당히 비좁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님포매니악>이 섹스를 다루는 확고한 노선과 그것을 견지하는 집중력은 감탄스럽다. 다만 관객인 나를 주눅 들게 한 것은, 조 아니면 샐리그먼의 자리를 고르라고 윽박지르는 듯한 감독의 어조였다. 우리는 왜 위선자가 아니면 동물이어야 하는가? 인간 내면의 광활한 진공을 채우려는 몸부림으로서 님포마니아에 공감하는 것도, 색정증의 풍경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일정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모두 인간성의 일부 아닐까? 인간은 저열한지 고상한지 택일하라고 묻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조에는 인간 본성에 관한 도그마적 태도가 희미하게 묻어난다.

7/12

앞만 보고 달리는 액션영화니까 당연히 100분 남짓일 줄 알고 러닝타임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손에 쥔 <레이드2>의 티켓에는 9시 시작. 11시40분 종료라고 찍혀 있었다. 앓는 소리가 절로 났다. <레이드: 첫 번째 습격>(2011)이 보기만 해도 삭신이 쑤시는데 하도 재미있는 바람에 눈도 못 돌리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치과 진료실 의자에 누워 손 모으고 조명이 켜지길 기다리는 심정으로 객석에 앉았다. 그리고 150분이 몰아쳤다. 불이 켜지자 수첩에 휘갈긴 메모의 필체가 가관이다. 줄곧 격앙하고 움찔거리며 펜을 움직인 탓에 도무지 뭐라고 쓴 건지 알아볼 수가 없다.

적의 요새인 아파트 안에서 액션이 시작하고 끝나는 <레이드: 첫 번째 습격>(이하 <레이드>)은 극도로 단순한 아이디어와 극도로 철저한 실행이 미덕인 영화였다. 그러므로 실내외를 망라한 다양한 장소로 배경을 확장하고 길이가 50% 늘어난 속편이 방만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당연하다. 실제 결과물을 봐도 이 염려는 부분적으로 들어맞는다. 셰익스피어적인 가족 비극을 포함해 <대부> <무간도>로 익숙한 갱스터 에픽의 공식을 충실히 반복하는 서사는 고답적이다. 지루한 대목도 없지 않다. 예컨대 가라오케 장면은, 비슷한 업소를 배경으로 한 <온리 갓 포기브스>의 시퀀스들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노래방을 상당히 불길한 공간으로 기억에 남길 듯하다. 이야기가 직접 연결된 1편에서 분명 죽었는데 다른 인물로 시침 뚝 떼고 등장하는- 워낙 무공이 초현실적이라 도플갱어라고 우겨도 설복될 지경이긴 하지만- 배우(야얀 루히안)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집을 불린 <레이드2>에 항복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이 영화가 ‘규모’를 활용하는 방식이 옳기 때문이다. 액션의 양을 늘리고 무게 잡는 드라마를 더한 것은 에픽의 표면적 용도에 불과하다. 개러스 에반스 감독에게 2편의 길어진 시간과 넓어진 공간은 무엇보다 촬영, 편집, 사운드, 미술 등의 영화적 기술을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의미한다. 외신에 따르면, 개러스 에반스 감독은 <레이드2>의 시나리오를 먼저 완성했지만 450만달러(약 78억원)의 제작비를 도저히 모을 수 없었다. 투자자들에게 이 액션영화의 가능성부터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한 감독은 일종의 쇼케이스로서 100만달러 예산의 <레이드>를 만들었고 성공했다. 즉 <레이드2>가 <레이드>의 히트로 착안된 확장판이 아니라, <레이드>가 <레이드2>를 만들기 위한 프레젠테이션이었던 셈이다. 과연 <레이드2>는 <레이드>가 탁월한 액션배우와 하이 컨셉의 조합이 올린 일회적 개가가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액션영화로서 포커스는 1편보다 흩어졌을지 몰라도, <레이드2>는 각본, 연출, 편집을 도맡은 개러스 에반스를 장르의 달인을 넘어 필름 메이킹의 모든 측면을 능란하게 통제하는 영화작가로 확실히 주목하게 만든다.

7/13

<레이드2>에는 대략 아홉개의 액션 세트 피스가 전반 1시간에 셋, 그 이후 여섯 정도로 분배돼 있다. 말하나마나 이 영화의 첫 번째 매혹은 인도네시아 무술 실랏에 다양한 ‘연장’을 결합한 싸움의 강도와 밀도다. 주연 이코 우웨이스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배우들은 경이로운 신체능력으로 구경꾼을 압도할 뿐 아니라 진전되는 격투와 더불어 점점 독해지고 이기고 싶어 절박해지고 마침내 피폐해지는 감정선까지 잘 보여준다. 주인공 라마가 살상을 즐기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설정도 액션의 정서를 더욱 치열하게 한다. 나아가 격투 신이 통상 액션영화보다 훨씬 길게 지속되는 <레이드2>는, 합이 거듭될수록 주먹과 칼을 주고받는 배우들 사이를 흐르는 상호 신뢰를 극중 내용과 무관하게 관객으로 하여금 감지하게 한다. 이처럼 인물의 동세와 심리를 선명히 드러내는 액션은 촬영과 편집에 힘입은 결과이기도 하다. 개러스 에반스는 넓은 공간에서 다수가 치고받는 액션을 찍을 때 패닝으로 컷을 대신하면서 화면의 지리(地理)를 놓치지 않는다. 롱테이크 기법을 대놓고 채택한 교도소 난투극 시퀀스에서는 심지어 총격이 발생했을 때도 컷하지 않고 총구를 찾아 카메라로 탄도를 거슬러간다. 일대일 근접전에서는 숏이 짧지만 그렇다고 동일 동작을 여러 앵글로 찍어 조립하는 트릭은 쓰지 않는다. 슬로모션으로 배우의 타격을 돋보이게 하는 기법도 배제한다(느린 동작은 보통의 움직임이나 낙하 장면에 썼다).

그러나 <레이드2>는 오로지 치고받는 쾌감만을 향해 곤두박질하는 영화와 거리가 멀다. 간간이 사색적이기까지 하다. 1편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사치스런 여백 덕택이다. <레이드2>의 주요 시퀀스는 액션이 불붙기 전의 ‘들숨’과 본론의 액션 그리고 난투극이 잦아든 다음의 ‘날숨’으로 구성되는데, 전후의 여백에서 정교하게 디자인된 음향과 세트. 화면구도가 위력을 발한다. 예컨대 싸움이 터지기 전 ‘전주’ 부분에서 관객은 곧 액션 동선의 가이드라인이 될 세트와 로케이션 구조를 익힌다. 잠시 후 흉기가 될 만한 소도구와 가구도 흘깃거린다. 타란티노가 가학적 대화로 임박한 살육을 카운트다운한다면, 개러스 에반스는 끓어오르는 침묵을 선호한다. 결전을 앞둔 인물의 보이스 오버 독백도 쓰지 않는다. 대신 낙숫물, 나사못, 걸레 밀대 따위가 내는 증폭된 음향과 의미심장한 인서트 숏이 예민해진 감각을 최고조까지 끌어올렸을 때 함성이 스크린을 덮친다. 들숨이 길고 깊은 반면, 후주의 날숨은 짧고 가볍다. “일단 여기까지만” 또는 “(오늘은) 이제 그만하자”라는 투의 숏들이 마침표 노릇을 한다. 샐러리맨이 하루 일과를 마치는 분위기다. 이 장대한 갱스터 서사극의 피날레가 개별 시퀀스의 마무리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자못 유쾌하다. 이 감독에게 영화는 다른 무엇이기에 앞서 영원히 계속되는 운동인 것이다. ‘일시정지’(pause)는 있되 ‘정지’ 버튼은 없는.

좋아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그루트

빈 디젤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연기하는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으랴. 달변과 민첩성을 뽐내는 다양한 종족의 캐릭터가 엎치락뒤치락 꾸려가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은하계에서, 이 식물형 외계생명체는 “나는 그루트다”라는 딱 세 단어와 대인배의 도량으로 모두를 끌어안는다. 한데 빈 디젤은 1분 만에 영화 전체 목소리 연기를 마치고 믹싱에 모든 걸 넘긴 건 아닐까? 천만의 말씀이다. 더빙 현장에는 똑같은 한줄 대사가 장면마다 내포하는 천차만별의 의미- “밥 먹자”부터 “우주를 구하자”까지- 를 문장으로 풀어놓은 제2의 대본이 제공됐고, 빈 디젤과 제임스 건 감독은 일일이 해석을 실어 녹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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