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화라도 보고 느끼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는 말이 상투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실제로 얼마간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해무>의 경우에는 인물들이 그 다양함의 근거다. 우린 전진호의 막내 선원 동식(박유천)을 중심으로 이 영화를 볼 수도 있다. 그때 <해무>는 한 젊은이가 인생에서 맞은 첫 번째 불행, 하지만 송두리째 모든 게 바뀌는 절체절명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혹은 전진호의 선장 철주(김윤석)를 중심으로 이 영화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삶과 하나로 지내온 낡은 배 전진호에서 일어난 그 일로 이 영화는 철주의 마지막 몰락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 전에는 예상치 못했으나 보고 나서 강력하게 떠오른 한 가지 길이 더 있다. 한예리가 연기한 조선족 밀항자 홍매를 통해 <해무>를 보는 것이다.
“시나리오의 인물들이 각각 다 잘 살아 있었어요. 홍매의 경우에도 너무 매력적이었고요. 홍매 때문에 생기는 스릴러적인 요소들이 있어요. 그리고 동식과는 멜로드라마적인 부분이 있고요. 뭐랄까, 아름답고 슬프다? 이건 꼭 해야겠다, 내가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홍매는 다 드러내놓고 감정을 표현하는 인물이 아니에요. 감춰진 것도 숨겨진 것도 많아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인물이에요. 선원들의 해무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요.”
해무, 바다에 피어오르는 안개. 홍매가 선원들의 해무였고, 그들을 에워싼 안개였다. 그러니 홍매가 <해무>의 전적인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저 낡아빠진 배를 희뿌연 해무가 에워싸고 있는 것처럼, <해무>의 감당할 수 없는 남자들의 저 드라마도 그녀를 배제하고는 조금도 진전이 되질 않는다. 한예리가 <해무>의 홍일점이라는 표현은 정작 아무 쓸모가 없다. 이 밀항자 여인이 곧 사건의 소재이며 계기이고 분위기다. 그렇다면 자신은 멜로의 여주인공이지만 영화의 장르는 멜로가 아닌 경우, 그녀 스스로의 위치설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여기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간명하고 단호하다. “저는 <해무>가 멜로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사랑 때문에 일이 벌어지고 그걸로 끝까지 간다고 생각했거든요. <해무>에서는 스릴러가 더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제 경우는 당연히 멜로가 이 영화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렇다면 일찍이 그녀 스스로 걸어둔 주문 아닌 주문이 이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한예리가 <코리아>를 기점으로 상업영화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할 무렵 <씨네21>과 나눈 인터뷰의 마지막에는 그녀의 이런 말이 실려 있다. “저 독립영화에선 멜로 전문이었잖아요. (상업영화에선) 언제 할 수 있을까요? 머리 기르면 될까요? (웃음)” <해무>에서 당신은 머리도 길고 정말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도 된 거 아니냐고 당시의 말을 환기시켜주자 한예리는 깔깔깔 웃으며 말한다. “정말이네요, 지금 뭔가 말하면 앞으로 또 이뤄질까요? 아니 말한다고 다 이뤄지면 그건 소원이 아닌데? (웃음) 독립영화에서는 멜로를 많이 했었으니까 상업영화에서도 멜로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봐요.”
요컨대 우린 지금 그녀의 제안대로 한예리의 멜로드라마 <해무>에 관해 말하는 중이다. 우선 한예리 자신에게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기관실에서 동식이 준 컵라면을 홍매가 먹는 장면이 있잖아요. 마지막 남은 걸 몰래 챙겨서 홍매에게 주는 건데 거기서 온정을 느꼈어요. 추운 와중에 따뜻한 라면을 먹으면서 서로 대화가 진행되는 그런 밝고 따뜻한 장면이 있어서 그 뒤에 오는 어두운 사건이 더 크게 느껴지지 않나 싶어요. 감정적으로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더 중요하고 절대적인 장면도 있다. 동식 역의 박유천은 시사회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영화 속 동식과 홍매가 기관실에 몰래 숨어 간절하게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이렇게 설명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유일한 사람(들)이었고 그걸 느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박유천의 말이 맞다. 동식과 홍매가 정사를 벌이는 기관실의 그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절실하다. 하지만 이 장면은 설정으로만 보면 다소 의도적이며 갑작스러운 면도 없진 않다. 혹시 그렇게 생각되진 않느냐고 한예리에게 반문하자 그녀는 그 장면의 의의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주려고 애쓴다. “죽음을 맞닥뜨리거나 경험하게 되면 살아 있는 걸 증명받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고들 하더라고요. 우리가 그런 감정까지 갈 수 있겠느냐 많이 고민했어요. 두 사람이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베드신을 하는 것이라면 아마 행복해 보였을 거예요. 그런데 그들은 죽음에 더 가까이 있지 않나 싶어요. 사랑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놓고 본다면 납득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한예리의 말도 맞다. 하지만 동식과 홍매의 이 중요한 정사 장면이 우리를 감정적으로 특히 멜로드라마적으로 공감시키는 것이라면, 그건 그녀가 존중할 수밖에 없는 영화적 의의나 설계가 힘을 발휘해서가 결코 아니다. 이 장면이 절절하게 슬픈 빛을 발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리고 실은 한예리 자신이 말하지 않은 혹은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어떤 세부가 이 멜로드라마를, 이 장면을, 비로소 가치 있게 만드는 진실한 요체다.
축축하고 더러운 기관실 한구석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도 정사를 나눌 때 눈물로 얼룩진 홍매의 눈망울에는 균형이나 인공의 흔적이 거의 없다. 위급함에 빠진 조선족 여인의 표정을 자연스러운 기교로 이음새 없이 잘 표현했다는 뜻이 아니다. 한예리라는 사람(배우가 아니라 사람)이 격정의 슬픔을 느낄 때 가질 법한 동공의 떨림을 그 장면에서 숨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보다 훨씬 더 강렬한 것도 있다. 울음으로 새빨갛게 얼룩진 그녀의 콧등이다. <해무>라는 멜로드라마, 동식과 홍매라는 남녀, 그리고 밀항자 홍매라는 여인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했던 이 장면의 감정을 결국 우리에게 믿게 한 건, 거둘 수 없는 울음을 토해낼 때 숨길 수 없었던, 한예리의 그 새빨간 콧등이라는 슬픈 몸의 세부적 활동이다.
이에 대해 한예리가 적절한 대답을 못 찾고 잠시 망설인 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코는 자기의 몸이지만 자기의 머리를 따른 건 아니기 때문이며 우리가 아는 한 본능적으로 유능한 몸을 지닌 어떤 배우들은 자기의 몸이 해낸 것을 말로 설명하려 할 때 자주 난처함을 겪기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이 <밀양>의 어린 무명 소녀를 캐스팅하면서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울음을 터뜨릴 때 붉어지는 바로 그 코를 보고 그 소녀의 진실한 감정을 온전히 믿었다는 일화를 전해주자 한예리는 그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제가 원래 울 때… 그렇게 좀… 코가 많이 빨개져요. 그러고 보니 정말 정말 많이 울었네요. 많이 힘들었고. 제가 진실로 절박해야 그 장면이 공감이 될 것 같았어요.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동식이라는 사람이 홍매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순간, 내가 살아 있는 게 정말 맞나 의심이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니까, 세부, 장대한 의의가 아니라 불쑥 출현하여 잊혀지지 않는 이러한 세부가 종종 영화를 살린다. 한예리의 세부, 한예리의 빨간 코가 <해무>를 살렸다.
magic hour
순복아, 힘내라!
한예리는 한동안 독립영화의 인기 배우였다. 매니지먼트사를 만나고 상업영화에 뛰어든 첫 번째 영화가 <코리아>였다. 주연배우일 리는 없었다. 남북의 탁구 단일팀을 소재로 한 그 영화의 주연배우는 하지원과 배두나였다. 한예리는 조연으로 유순복이라는 북한팀 선수를 맡았다. 유순복은 실력은 뛰어난 편인데 담력이 약해서 국제경기에 나서자 팀을 위기로 몰아넣는 골칫덩어리였다. 그런데 분열을 겪던 남북 선수들이 유순복을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마침내 하나가 된다. 유순복은 영화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이 영화가 내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한예리는 땀으로 범벅된 머리칼, 경직되어서 굳어버린 어깨,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눈망울, 그리고 감격과 흥분과 슬픔으로 종종 빨갛게 물들곤 하던 그 코로 유순복의 드라마를 감당했다. “그 영화는 제게 순복이의 성장드라마였어요. (양 주먹을 불끈 쥐고 어깨를 활짝 펴면서) 순복아, 힘내라! 그런 거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