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성일] 영화와의 끈질긴 인연을 믿는다
2014-08-20
글 : 주성철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천성일 작가

이석훈 감독, 천성일 작가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은 올여름 한국영화들의 ‘역대급’ 대결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코미디로 승부를 걸었다. <해적>은 위화도 회군을 둘러싼 조선 개국 초기의 혼란스런 분위기를 배경으로, 나라의 국새가 한동안 없었던 역사적 사실로 파헤쳐 들어간 코믹 팩션 사극이다. 앞서 도망친 노비를 쫓는 조선시대 노비 사냥꾼의 이야기를 그린 TV드라마 <추노>(2010)로 이름을 알린 천성일 작가였기에, 그가 조선 개국 초기로 눈길을 돌린 것은 꽤 흥미롭다. 더구나 <7급 공무원>(2009) 등 코미디에 관한 한 타율 높은 창작력을 과시한 그였기에 ‘사극’과 ‘코미디’라는 그 특유의 솜씨 좋은 장르의 만남은 <해적>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그가 말하길, 가진 것 없는 ‘싸구려 작가’로 시작하여 주목할 만한 흥행 작가의 자리에 오른 뒤 이제 영화사 하리마오 픽쳐스의 대표를 거쳐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서부전선 1953>으로 감독 입봉을 눈앞에 둔 그를 만났다. 지나온 세월의 변화의 폭만큼 허허실실 야무진 꿈과 포부를 들려줬다.

-<해적> 시나리오의 최종 마침표를 찍을 때 어땠나.
=솔직히 너무 오래돼 기억이 안 난다. (웃음) 더듬더듬 기억을 떠올려보면 써나가면서도 ‘이거 잘못 저지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컸다. 개인적인 만족감과 별개로 이걸 과연 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 내내 의문이 들었을 정도다. 그래도 끝까지 쭉 가보자는 생각으로 멈추지 않았다. 애초부터 워낙 스케일이 큰 작품이었는데, 나중에 거대한 스크린을 채우는 것은 감독의 몫이고 나는 충실히 시대에 대한 질문으로 메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내게 산고의 고통을 묻는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천성일 작가 하면 역시 TV드라마 <추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해적> 또한 사극이고, 사극에 느끼는 매력이 있다면.
=워낙 힘들게 작업해서 기쁨보다 상처가 더 큰 작품이긴 하지만 <추노>는 당연히 고마운 작품이다. 그리고 확실히 사극의 맛이 있다. 가장 큰 건 정보화시대가 아니라는 거다. 캐릭터 설정이건 사건 전개건 휴대폰이 없기 때문에 훨씬 편하다. (웃음) 인물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연락이 닿지 않아 그리워하는 것도 그래서 가능하다. 우리가 보통 어떤 영화를 보다가 답답해서 ‘전화 한통이면 될 텐데!’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웃음) 그런 점 때문에 오히려 여러 제약에서 굉장히 자유롭다.

-그런 식의 정보교류라는 측면에서 산적 중 그 누구도 고래를 보지 못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다른 지방에 사는 친척집에 가보면 집집마다 제사 지내는 방식이 다 다르다. 뒤늦게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게 생겼다지만 ‘과거에는 참 정보교류가 안 됐구나’ 싶다. 지역적으로 아주 가까워 보이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사투리만 해도 얼마나 차이가 큰가. 게다가 시나리오 쓸 때 주변 사람들에게 실제로 고래를 본 적 있는지 물어봤다. 고래고기는 먹어봤어도 실제로 고래를 본 적은 없다는 사람, 호주 여행 가서 고래 투어를 하며 봤다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는데(웃음) 어쨌건 거대한 고래를 진짜 본 사람이 없었다. 동물원에도 없으니까. 그래서 스크린에 거대한 고래를 등장시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작품의 시작은 고래였나.
=큰 틀에서 보자면 ‘바다’ 하나였고, 거기에 거대한 고래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 고래를 찾으려는 해적이 있고, 또 그들은 수군과도 맞서 싸운다. 마지막으로 난생처음 바다에 가보는 산적이 화룡점정을 찍는다. 물론 그 핵심은 해적과 산적의 대결인데, 그를 묘사하기 위한 기본 컨셉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싸움’이었다.

-태조 이성계(이대연)와 정도전(안내상), 한상지(오달수)까지 등장한다.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위화도 회군이라는 조선 개국 초기를 진지하게 다룬다. 그 시기를 다루고자 한 이유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세상과 괴리된 채 그저 혼자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결국은 미약하나마 세상과 이어진 끈은 물론 타인과 얽힌 사연이 있다. <해적>을 통해 격변의 시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위화도 회군과 조선 건국 초기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누구나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한 욕망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나라를 열고자 했던 가장 위의 왕부터 그 밑에서 또 다른 권력을 쥐려는 사람들, 그리고 더 아래로는 한밑천 잡으려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세상의 주인을 꿈꿨던 시대다. 그리고 저마다 자기만의 행복을 꿈꾸며 달려가지만 결국 누구는 그 꿈을 이루고 누구는 이루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고려시대 국제무역항 벽란도의 모습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저물어가는 고려의 마지막 화려함을 담고 싶었던 공간이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외국인들의 왕래가 잦았던 당대 최고의 무역항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들어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시대가 되면서 이익을 취하는 상업은 가장 말업(末業)이 되어버렸다. 어쨌건 그때는 여전히 조선이 아니었으니 산적이건 해적이건 농부건 조선이 뭔지도 몰랐을 테고, 변함없이 먹고사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시나리오 쓸 때도 그랬고 벽란도가 더욱더 화려하길 원했다.

-작가이자 제작사 하리마오 픽쳐스의 대표로서 이석훈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해적>은 국새와 그것을 삼킨 고래, 그리고 세상의 순진한 모든 이들이 권력의 희생양이 된다는 핵심 줄기가 있다. 이석훈 감독이 <해적>을 맡으면서 지렁이가 용 됐다고 생각한다. 있던 걸 빼는 게 아니라 신을 심화시키면서 시나리오가 환골탈태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배를 가졌다고 우쭐대는 소마(이경영) 앞으로 상어가 끄는 산적들의 배가 쌩 지나가면 ‘금방 뭐가 지나간 것 같은데?’ 하는 코믹한 장면들은 시나리오에 없던 것이다. 감독과 배우들이 현장에서 코미디를 강화시킨 부분이 많다. 말장난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애초의 시나리오로부터 많이 안 바뀌었지만 크게 바뀐 것도 맞다. (웃음)

-이석훈 감독과는 오랜 친구 사이로 알고 있다.
=알고 지낸 지 한 13~14년 된다. 이석훈 감독이 단편 <순간접착제>(2001)를 만들 때도 서로 알던 사이였다. 이후 모 영화사에서 코미디영화를 함께 진행한 적 있다. 그는 입봉을 준비하던 감독이었고 나는 그 영화사의 기획실 직원이었다. 그런데 회사 대표가 수십억원을 횡령하고 중국으로 도망가면서 망했고, 다 없던 일이 됐다. 그런 아픔을 나눈 사이다. (웃음) 그때부터 느낀 건데 난 저질이지만 그는 고급스럽다. 또 내가 일차원이라면 그는 다차원이다. 밑바탕을 잘 깔아주면 그는 뭔가 특별한 걸 만들어낸다. 아무튼 감독이건 스탭들이건 현장에서 힘들다고 말하면, “당신들은 현장에서 6개월 고생하지만 난 3년이나 고생해서 썼다. 내가 더 힘들었다!”고 말해준다. 진짜 재수없다고 느끼겠지? (웃음)

-<캐리비안의 해적>과의 비교는 <해적>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숙명이다. 부정과 긍정 다 끌어안으면서 그 이상의 새로움을 추구해야 했다. 작가로서도 매번 느끼지만 언제나 앞에는 거대한 뭔가가 있다. 다른 작가들도 이미 쓸 때부터 무엇과 비교되리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방법은 없다. 더 노력해서 콘텐츠로서 비교우위의 힘을 길러야 한다. ‘바다로 간 산적’이라는 부제는 그래서 더 중요했다.

-유해진과 박철민 등 애드리브의 달인이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왔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
=유해진과 박철민은 물론이고 성동일과 이한위까지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애드리브의 달인들과 다 일해봤다. (웃음) 묘한 차이가 있다. 유해진과 성동일은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치열한 고민과 훈련 끝에 애드리브를 만들어내고, 박철민과 이한위는 현장 분위기를 타고 더 상승하는 배우들이다. 유해진이 현재와 같은 반응을 얻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웃음)

-작가로서 굳이 하나의 장르를 고르라면 역시 코미디인가.
=잘 모르겠다. 너무 심각한 건 확실히 싫다. 덧붙이면 진지한 건 좋은데 심각한 건 싫다. 코미디가 심각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숨통을 틔워주니까 좋긴 하다. 그러다 보니 한때는 ‘싸구려 코미디 작가’라는 얘기도 들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7급 공무원>을 끝낸 다음에 꼭 하고 싶은 작품이 있어서 모 대표를 만났는데, 내가 코미디 작가라서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하더라. 그런데 <추노>를 끝낸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추노>를 내가 쓴 줄 모르고 연락했던 거였다. (웃음) 그리고 언젠가 꼭 한번 영화화해보고 싶은 만화가 있다. 바로 김혜린 작가의 <불의 검>이다.

-이제 가을이면 <서부전선 1953>을 통해 감독으로 입봉하게 된다. 간략하게 작품을 소개한다면.
=내가 제작사 대표이긴 하지만, 직원들이 하도 <서부전선 1953> 얘기는 하지 말라고 해서. (웃음) 1953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남과 북의 병사가 한국전쟁 막바지에 서부전선에서 만나 생존을 위해 힘을 합치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해적>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라면 <서부전선 1953>은 중심인물 단 두 사람의 이야기다. 가을에 촬영 들어간다. <해적>을 쓰기 전, 약 5년 전에 쓴 시나리오다. 오래전에 쓴 작품이 수도 없이 많은데 왜 하필 지금 내가 이걸 꺼낸 걸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분석한 적 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둘 중 하나다. 내가 빨랐건 다른 사람들이 늦었건 세상 모든 이야기가 바로 그때 만들어지고, 또한 바로 그때 흥행이 되는 데는 어떤 ‘인연’이 있다. 공들여 쓰고 최선을 다해 만들어 그 인연을 믿을 수밖에. (웃음)

시나리오작가 겸 영화사 대표. 그리고 곧 입봉을 앞둔 감독. 커리어로만 보자면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없지만 천성일 작가만큼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도 없다. <해적>의 홍보사 ‘영화인’은 그가 이력서를 냈다 떨어진 곳이기도 하다. “서른 넘어 영화 일을 시작하다 보니 현장 스탭으로 들어가기도 힘들고, 경력이 일천해 영화사 기획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씨네21> 구인구직란에 있던 마케터 모집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당시 그의 친구는 “너 정도 스펙으로는 다 떨어진다”는 독설까지 날렸다. 그리고 작가생활 초기에 쓴 <격투기 고등학교>는 영화사가 엎어지면서 함께 엎어졌다. 그랬던 그가 어느덧 감독으로 데뷔하게 됐다. 그는 그것을 <해적>의 한 장면처럼 ‘지나가던 고래가 우연히 국새를 삼킨 것과 같은 경우’로 표현한다. “드라마작가나 시나리오작가를 꿈꾸면서 글을 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처음부터 프로듀서가 꿈이었는데 작가 계약할 돈이 없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추노>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지만 잘 안 풀려서 졸지에 드라마작가까지 된 것인데, 그때그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고 여기까지 왔다. 당연히 감독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서부전선 1953>은 유일하게 직접 연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다.” 그가 어떤 이유로 감독을 꿈꾸게 된 것인지, 아마 내년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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