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블랙박스]
[한국영화 블랙박스] 감독들이 제작자로 나선 까닭
2014-08-18
글 : 조종국
대세가 된 ‘감독=영화사 사장’
<군도: 민란의 시대>의 윤종빈 감독과 <명량>의 김한민 감독은 자신의 제작사를 직접 차려 영화를 제작했다.

최근 흥행을 주도한 화제작의 감독이 ‘영화사 사장’(제작자)인 경우가 많다. <군도:민란의 시대>의 윤종빈 감독,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그렇고, 심성보 감독이 감독한 <해무>의 제작자도 감독 봉준호다. 제작을 겸하고 있는 감독은 강제규, 박찬욱, 김지운, 장진, 허진호, 곽경택, 윤제균, 최동훈, 김용화, 박진표, 정지우, 안병기, 류승완 감독 등 부지기수다. 상당수가 직접 제작사의 대표 또는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일부는 가족이나 친지 등이 대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업이거나 사실상 대리인인 경우다.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감독 등도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제작자이긴 하다. 따지고 보면 감독이 제작자로 나서는 일이 최근에 급속하게 늘어난 현상은 아니다. 이미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된 일로 당시 나름 의미 있는 시도로 주목받았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제작사(‘강제규필름’)를 설립했던 강제규 감독과 꽤 참신한 사업 모델(‘수다’)로 주목받았던 장진 감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어 흥행 대작과 화제작이 속출하던 2000년대 초•중반을 지나면서 유명 감독들의 ‘독립’은 ‘대박 흥행’에 으레 뒤따르는 수순이 되었다.

작품을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도 하지만, 제작자 본연의 과업은 돈을 구하고 배우를 ‘잡아오는’ 일이다. 별 흥행작도 없고 수년간 펀딩과 캐스팅하러 다니느라 발바닥에 땀이 나는 제작자들은 거듭되는 거절과 사양에도 굴하지 않고 절치부심한다. 이런 제작자 곁에서 가슴 졸이고 애를 태웠던 감독들은 기억한다, 그 안타까움과 설움을. 우여곡절 끝에 흥행에 성공하거나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을 선보인 감독에게 굴지의 투자사에서 투자 제의가 잇따르고 톱스타가 ‘책 좀 보여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온다. 제작사 그늘에서 끝없이 미안해하거나, 변함없이 큰소리만 치는 제작자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영화사를 설립해 대표로 이름을 올리고 제작자 겸 감독이 된다.

제작사를 설립하는 감독이 늘어난 데는 속사정이 있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과 비슷한 제작환경을 만들려는 시도나 고유한 제작자의 역할을 병행해서 연출 역량을 제고하려는 목적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사실 흥행 수익 배분의 불리함을 보완하고 급속하게 늘어난 수입의 절세 방안으로 법인 설립을 택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으로 펀딩과 캐스팅이 가능한 감독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는 일이다. 감독의 제작 겸업으로 연출료 이외 흥행 수익에 대한 사후 배분이 거의 없어 감독이 ‘재주만 부리는 곰’에 지나지 않았던 관행과 부조리를 주도적으로 개선하고, 합법적으로 절세를 도모하는 것이 절대로 나쁘거나 과한 일은 아니다. 다만, 영화 만드는 일이 펀딩과 캐스팅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가벼이 여기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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