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왕>의 홍만섭(안재홍)은 막 전역한 복학생인데 돌아와보니 학교는 군대보다 더 살벌하고 험악하다. 기숙사 방을 함께 쓰는 같은 과 선배(박호산)는 싱글벙글 웃고 다니는 만섭에게 공무원 준비나 하라고 찬물을 끼얹는다. 만섭은 그럴 마음이 없다. 마음 맞는 친구 창호(강봉성)와 족구에 열중하더니만 급기야 학교 족구장 건립에 앞장선다. 같은 과 미래(황미영)가 어쩌다 만섭과 창호의 팀에 합세하고 셋은 식품영양학과 족구 삼총사가 된다. 여기에 만섭이 좋아하는 안나(황승언)까지 응원자로 가세한다. 만섭이 족구로 안나의 남자친구이자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인 강민(정우식)을 이기는 동영상이 교내에 퍼지면서 학교는 온통 족구 열풍에 휩싸인다. 체육대회가 다가오고 만섭이 이끄는 팀과 강민이 이끄는 팀이 마침내 격돌한다.
수오 마사유키의 <으랏차차 스모부>에서는 유급당할 위기에 처한 대학생이 교수의 강요에 못 이겨 엉망진창 꼴찌 스모부에 들어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야구치 시노부의 <워터 보이즈>에서는 어벙한 수영부 소년들이 해체 위기를 맞은 수영부를 살리기 위해 싱크로나이즈드 퍼포먼스팀을 결성하여 대성공한다. 스포츠가 아니라 음악이어도 공식은 유사하다. 야구치 시노부의 <스윙걸즈>에서는 시골의 여고생 스윙재즈 밴드가 같은 공식으로 웃음과 감동을 연주한다. 유쾌한 소년소녀 혹은 청춘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일본 청춘물 영화들의 예다. 한국에서는 이해영, 이해준의 <천하장사 마돈나>가 일본 청춘물을 벤치마킹한 경력이 있는데, <족구왕>도 지금 그걸 하고있다. <독>과 <1999, 면회>를 연출했던 김태곤이 각본을 맡고 <1999, 면회>에 스탭으로 참여했던 우문기가 연출을 맡았다.
일단 종목 선택이 탁월했다. 대학생이 쉬는 시간에 족구를 하는 건 촌스럽고도 과거 퇴보적인 짓이다, 라는 상징적 인상을 영화는 좀더 고정하고 응용한다. <족구왕>에서 족구는 심지어 루저들이 사랑하는 스포츠다.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순진남 만섭, 다시마 요법으로 다이어트에는 성공했지만 별 생각 없이 사는 창호, 단지 살을 빼려고 족구팀에 합류한 미래, 그리고 전설의 족구왕이었으나 지금은 별 볼일 없는 취업 준비생 선배, 이들이 중심이 된 몇개의 주목할 만한 장면들이 재치를 발휘한다. 선배가 만섭을 호통칠 때, 만섭이 안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귀여운 포즈를 잡을 때, 창호가 미래의 등에 업혀 갈 때 등이다. 그로써 <족구왕>은 전반적으로 탄탄하기보다는 부분적으로 재치 있는 코미디영화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