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연애 끝에 ‘보통 남자’를 만나길 꿈꾸던 은진(강예원)은 우연히 수줍고 조용한 현석(송새벽)과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연애 기간이 길어질수록 은진은 현석이 점점 더 못 미덥기만 하다. 어느 날 현석의 휴대전화에서 낯선 여자의 문자를 찾아낸 은진은 둘 사이를 의심하고, 그 과정에서 현석의 ‘비밀’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풀려간다.
반전 로맨스영화를 표방했으나 이야기가 주는 반전의 폭은 그리 크지 않다. 영화 전체를 ‘의심스러운’ 톤으로 일관하는 송새벽의 연기도, 뽀얗게 진행되던 로맨틱한 화면이 낯선 여자의 ‘섹시바’에 들어서는 순간 <올드보이>를 연상케 하는 무겁고 짙은 화면으로 전환되는 것도 다소 노골적으로 느껴진다(실제로 이 영화는 많은 장면에서 박찬욱을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반전이 되어야 할 현석의 비밀은 어딘가 익숙하다. 야심차게 여러 장르를 한편의 영화 속에서 작동시켰지만, 각 장르의 규칙을 따라가기에 급급해 혼성 장르의 시너지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석과 은진의 꽤나 복잡한 과거 이야기를 영화의 리듬감과 긴장감을 해치지 않고 재치 있게 정리해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오히려 예상치 않았던 반전은 은진이 보여준다. 영화가 ‘청불’이 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듯, 강예원의 거침없는 대사와 연기는 이제껏 어떠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여주인공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두명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전혀 다른 질감의 연기를 시치미 떼고 엮어나가는 감독의 재기도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