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소나기> <벙어리 삼룡이> 현재 작업 중
“어디? 레바논?”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연필로명상하기’에 취재를 다녀온 이주현 기자가 그곳에 레바논 출신의 애니메이터가 있다는 말을 전하자, 다들 되물었다. 미국도, 유럽도 아닌 레바논에서 애니메이션을 하러 한국에 왔다고? 게다가 1920~30년대 한국 문인들이 쓴 단편문학을 애니메이션화하는 작업에 참여한다니.
‘패트릭 스패르, 2013년 6월24일.’ 스탭들이 연필로명상하기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할 때면 안재훈 감독이 직접 써준다는 이름표가 스패르의 자리에도 놓여 있다. “이거 받았을 때 정말 행복했다. 대학 졸업 후 베이루트에서 7년간 프리랜서로 TV광고용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지만 한번도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여기 오기까지 오랜 시간을 보낸 후라 더 감사했다.” 그의 기쁨 뒤엔 애니메이션을 향한 애정과 연필로명상하기를 향한 끈질긴 구애가 있었다. “레바논에는 극장용 애니메이션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도 전무하다. 스토리가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 한국 애니메이션을 찾아봤다. 그러다 <소중한 날의 꿈>(감독 안재훈•한혜진, 2011)에서 주인공 이랑과 철수가 우산을 주고받는 장면을 보고, ‘이거다’ 싶더라. 여기 오기 2~3년 전부터 안 감독님께 그림을 첨부한 메일을 보냈는데 매번 거절당했다. (웃음)” 서운한 마음보다 실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었기에 급기야 한국으로 날아왔다.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어 교육을 2~3개월간 받고 감독님을 찾아뵐 계획이었다. 근데 2주째 되니 더 못 참겠더라. 한국이라고 연락을 드렸더니 한번 찾아오라고 하시더라.”
그때부터 <소중한 날의 꿈>의 컷들을 다시 그려보고 인체학 공부를 해보라는 안 감독의 말을 새기며 연필로명상하기의 가족이 됐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작업한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2014)의 개봉(8월21일)을 앞두고 있다. <봄봄>(김유정 원작)의 수정 컷 몇개를 그렸고 <운수 좋은 날>(현진건 원작)에 수석 애니메이터로 합류했다. 한국적 감수성을 그림으로 옮길 때의 어려움에 대해 묻자, 현답을 내놓는다. “꼭 그 시대를 살아야 그때 사람들을 이해하는 건 아니지 않나. 중요한 건 캐릭터의 감정이다. 병든 아내를 사랑하나 먹고살기 힘든 <운수 좋은 날>의 사내의 심정이나 현재 작업 중인 <소나기>(황순원 원작)의 소년, 소녀의 풋풋한 사랑 같은 것은 한국적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사는 얘기라 생각했다.”
그의 든든한 조력자는 당연히 안재훈, 한혜진 감독이다. “한 감독님은 원하는 장면이 있다면 과감히 그림의 틀을 깰 필요도 있다고 얘기한다. 안 감독님은 인물의 움직임을 짚어주고 즐겁게 작업해야 한다는 말씀을 잊지 않으신다.” 왼쪽 팔뚝에 ‘나답게 살자’는 한글 문신까지 새긴 그에게 자신답다는 건 뭘까. “현실의 벽 앞에서도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그 꿈을 잊지 않고 좇아가는 거다”란다.
김광석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듣고 눈물을 쏟았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 다 정말 너무 좋다.” 안 감독의 추천으로 처음 듣게 됐다는 김광석의 노래가 그의 감성을 제대로 자극했나 보다. 지금 듣는 곡은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작업할 때도 음악이 없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