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뜻 사람이 살아가는 데 지켜야 할 바른 도리가 있음 속뜻 도리가 없음
주석 가히 의리 열풍이라 할 만하다. <투캅스> 시리즈(1993~98)에 등장했던 김보성이 그때 그 선글라스를 끼고 예의 가죽 잠바를 입고 등장해서는 온갖 곳에서 의리를 외친다. 20년 만에 재등장한 의리남을 국민들은 수많은 패러디물로 환영했다. 그는 부활한 스타가 되어 CF계를 접수했다. 그가 의리를 외치는 방법은 모든 “리” 자 앞에 “으” 자를 삽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한 식혜 광고에서 이렇게 외친다. 이것이 우리 몸에 대한 으리, 신토부으리, 회오으리, 아메으리카노, 에네으리기음료, 으리집 으리음료, 마무으리. 그러니까 여기에는 오래된 노래 하나가 겹쳐 있는 셈이다. 리리리자로 끝나는 말은? 코끼으리, 잠자으리, 개구으리, 봉우으리, 유으리 항아으리. 이로써 세상에 온갖 의리가 넘쳐나게 되었다.
이런 음운 바꿔치기의 선구자는 조용기 목사다. 그는 ‘ㅅ’을 ‘시’로 발음하는 특이한 발성법을 선보인다. 그의 입을 거치면 “사랑”은 “샤랑”이, “소망”은 “쇼망”이 된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라 “예슈님의 샤랑”을 전하는 유포니(euphony)의 대가가 되었다. 유포니(우리말로는 활음조라고 한다)는 듣거나 말하는 데 유쾌한 소리로 발음하는 현상을 뜻한다. 현세의 고난 대신에 “현셰의 츅복”을 강조하는 그분의 세계관은 듣기 좋은 말이 실제로도 좋은 말이라는 유포니식 믿음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의리”를 “으리”로 발음한 것은 무슨 세계관의 표현일까? 김보성은 뉴스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공익에 대한 의리, 타인을 생각하는 나눔의 의리로, 화합과 의리의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의리를 외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러나 이 말이 쓰이는 문맥은 정반대다. 우리가 이 말을 제일 많이 듣는 곳은 조폭 영화에서다. 헤이, 부라덜. 우리는 으리에 살고 으리에 죽는 거여. 의리를 외치는 보성댁, 이국주는 말한다. “의리 열풍은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 정의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다.”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양강 서청원, 김무성 의원의 출사표에도 의리는 빠짐없이 등장했다. “30년간 정치하면서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다.”(서청원) “의리를 목숨처럼 여기고 정치인생의 신조로 삼았다.”(김무성) 이분들이 그토록 성스럽게 지킨 의리의 대상은 누구였을까? 문맥을 보니 국민은 아닌데?
용례 <투캅스>에서 김보성의 복장은 형사보다는 폭주족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20년 만의 복귀에는 달라진 점이 있다. 한결 후덕해진 몸매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외침과 비주얼 사이에는 격차가 있었던 건데, 이것은 의리의 본뜻과 실제 쓰임새 사이의 격차를 증언하는 것이 아닐까? 우울한 일이지만 이 나라의 의리는 땅에 떨어졌으며, 남은 것은 패거리들의 이해관계뿐이다. 사으리사욕을 추구하는 패거으리들의 으리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민 아빠의 순결한 의리를 저렇게 짓밟고 모욕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