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의 삶이 통속적이므로 상업적 서사도 통속적일 수밖에 없다. 통속적 서사는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의외의 깊이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대로 통속적이려면 신선해야 한다. 통속적인 소재는 변질이 쉬워서 생각보다 다루기 어렵다. <설계>는 세상이 돈에 의해 돌아가고 그로 인해 상처받는 인간들을 보여준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짜놓은 이야기에 신선함이 부족하다. 부유하게 자란 대학생 세희(신은경)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난다. 게다가 아버지 빚까지 떠안게 되자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렇게 노력해도 세희는 빚의 원금은커녕 이자 갚을 돈도 벌기 힘들다. 결국 세희는 화류계에 입문하고 거기서 큰손 인호(이기영)를 만난다. 사채업자 인호는 세희에게 돈 버는 방법을 하나씩 전수해주고 세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자신을 모욕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설계>에서 ‘설계’는 돈을 뜯어내거나 상대를 곤경에 빠트리는 음모를 꾸밀 때 사용되는 단어다. <설계>의 사채업자들은 서로 설계를 하며 서바이벌 게임을 벌인다. “사람 위에 돈있고, 돈 위에 우리 사채업자가 있다”는 인호의 대사는 수긍이 간다. 현실이 그러하니까. 하지만 “아무도 믿지 마라”는 세희의 조언은 좀 싱겁게 들린다. 세희가 들려주는 이 말이 마음에 확 와닿는다면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배우들은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한 것 같은데 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