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 포착해내는 놀라운 동체시력을 가진 ‘환자’, 여장부(차태현)는 이 기이한 능력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따돌림을 받으며 자란다. 가족 이외에 친구 한명 없이 성장한 장부는 경찰 CCTV통제센터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하루 종일 CCTV 속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며 즐거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화면 속에서 우연히 소년 시절 첫사랑과 똑 닮은 수미(남상미)를 발견하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그녀에게 점점 다가간다. 불쑥불쑥 찾아와 이해 못할 드라마 속 대사들을 던져대는 투박한 장부가 수미도 싫지만은 않다.
<헬로우 고스트>로 성공을 거두었던 ‘김영탁(감독)+차태현(배우)’ 콤비의 야심 찬 두 번째 작품이지만, 그 시너지가 충분한지는 다소 의문이다. 게다가 흥행 사례를 오해해 학습한 탓일까? 무엇으로 웃기고, 어떻게 의외의 사건들을 배치하며, 어디에서 감동을 주어야 할 것인가의 선택이 누구나의 생각범위 안에 고스란히 놓여 있다. 그래서 딱 생각만큼 웃고, 정해진 만큼 감동받으며, 적당히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는 영화가 되었다.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1990년대 멜로드라마풍의 ‘고색창연’한 화면과 대사들이다. 흥미로운 건 요즘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긴 호흡의 편집 덕분에 첫 데이트 장면이라면 어김없이 등장할 법한 은행잎 가득 쌓인 공원이나 아무도 없는 겨울 바닷가의 뻔한 풍경들, 여기에 ‘꽃이 피어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와서 봄이야’라는 식의 낯간지러운 대사들이 촌스럽지만 꽤 진지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