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니가 가라 하와이
2014-10-03
글 : 권혁웅 (시인)
[ 니가 가라 하와이 ]

겉뜻 친구의 휴가 제안을 거절하는 말 속뜻 4.19의 정신을 되새기는 말

주석 2001년 개봉하여 역대 최다 관객을 경신했던 영화 <친구>는 수많은 유행어를 낳았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내가 니 시다바리가?” “고마 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아이다 친구끼리는 미안한 거 읎다.” “쪽 팔리서.” 심지어는 영어 선생의 콩글리시 발음(“더 워드 폴루션 유주얼리 민스 섬싱 라이크 더티 에어 워터 앤 노이즈…”)까지 흉내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최고의 유행어는 따로 있었다. 준석(유오성)이 상대 폭력조직의 행동대장이 된 친구 동수(장동건)에게 분쟁을 피해 잠시 외국에 나갈 것을 권유하자 동수가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니가 가라, 하와이.”

부산 사투리에 실려서 리드미컬하게 전달되는 저 일곱 음절은 운도 맞고(‘이~아~와~이’로 이어지는 소리는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를 이어 붙여 발음해야 한다), 높낮이도 일품이다(‘가라’가 제일 높고 ‘하’가 두 번째로 높아서 큰 산 하나, 작은 산 하나로 이루어진 안정된 구도를 갖추었다). 오랜 ‘시다바리’ 생활을 청산하고 독립한 이인자의 자부심과 독기가 똑똑 묻어나는 건조한 발음이다.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지금도 저 말은 하와이 여행상품을 파는 관광사들이 제일 좋아하는 문구다.

하와이는 눈물과 쾌락이 한데 섞인 복잡한 곳이다. 폴리네시안 제국의 멸망에서 사탕수수 농장의 눈물과 진주만 기습에 이르는 착취와 수탈과 전쟁의 역사가 하와이의 이면이라면, 와이키키 해변, 할레아칼라 국립공원으로 대표되는 천혜의 자연과 수많은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관광지로서의 명성은 하와이의 표면이다. 하와이는 인종의 용광로라 불릴 만큼 전세계 인종이 자유롭게 통혼하고 아이를 낳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에서 하와이는 어떤 의미일까? 하와이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관련이 있다. 그 역시 하와이만큼이나 복잡한 인물이다. 한쪽에서는 그를 독립운동가, 임시정부 수반, 건국의 아버지, 국부(國父)라 부르며 추앙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분단을 조장하고 친일파를 중용했으며 정적을 암살하고 전쟁 중에는 가장 먼저 달아났으며 부정선거를 자행하고 헌법을 고쳐 종신대통령을 꿈꾸다가 4.19 혁명으로 하야한 독재자라고 기억한다. 독립운동가로 시작하여 독재자로 생을 마친 ‘독고다이’의 대표였던 셈이다. 그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서 망명지로 선택한 곳이 하와이다. 그때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시민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니가 가라, 하와이!

용례 논란이 많은 인물로는 5.16을 일으킨 박정희 전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하야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다. <친구>에서 동수는 준석의 제안을 거절한 뒤 거리로 나와서 무수한 칼침을 맞는다. 동수의 마지막 말이 “마이 무따 아이가”다. 동수는 후회하지 않았을까? 친구 말 들을걸. 내가 갈걸,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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