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언젠가 이 편지를 꺼내볼 그날을 위해
2014-10-17
글 : 윤혜지
사진 : 백종헌
한국영상자료원에 한국고전영화 자료를 기증하는 수집광 소년의 가상 편지

※ 박지환 학생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어느 날 한국영상자료원 SNS에 한 소년의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어느 중학생이 해외 웹사이트를 뒤져가며 국내에 없는 한국 고전영화를 발굴해 정기적으로 자료원에 기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특한 소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소년의 기증작 편수가 무려 130여편이라는 겁니다. ‘보통 아닌 덕후로구나!’ 싶어 한국영상자료원 수집부에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소년이 “영화과에 진학할 생각인데 혹시라도 기사들이 불공평하게 가산점이 될까봐 우려한 까닭에 지금까진 사진촬영을 겸한 인터뷰를 거부했지만, 영화잡지인 <씨네21>이라면 사진촬영에 응할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는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다시 소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간단하게 몇 가지를 물었습니다. 소년은 중학생 때부터 자료를 기증해왔으며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한국영화를 찾는 일이 무척 즐겁기도 하고, 이 재미있고 예쁜 영화들을 혼자 보기가 너무 아까워 자료원에 지속적으로 자료를 기증하고 있노라고 말했습니다. 김수용 감독을 무척 동경해 그의 영화 비디오만 따로 보관할 자리를 마련해두었다고도 했습니다. 예상대로 보통 아닌 이 소년의 실물과 그의 ‘컬렉션’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만나자는 약속을 잡고, 주말이라 꽉꽉 막히는 도로를 네 시간 동안 달려 강원도 동해에 자리한 소년의 집까지 찾아갔습니다. 모델 안재현을 조금 닮은 소년은 예상보다 눈이 높은 고전영화광이었고 대단히 수줍음이 많았으며 그럼에도 주관은 무척 뚜렷한 영화감독 지망생이었습니다. 스스로는 “반 애들은 나를 오타쿠 아니면 미친놈으로 생각한다”고 자조적으로 말했지만, 소년이 모은 비디오들을 하나씩 들추어보다 <씨네21>은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소년이 꼭꼭 숨겨두었던 은밀한 편지, 선배 감독들에게 보내는 씩씩한 출사표를 말입니다.

자리가 없어 책상 아래까지 진열해둔 비디오들.

감독을 꿈꾸는 어느 소년이 씁니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니 어디로든 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대상을 정하지 않고 선배 감독님들께 영화와 관련된 저의 경험들을 담아 편지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김수용 감독님의 <사랑의 조건>의 비디오 케이스에 이 편지를 넣어둘 겁니다. 가장 먼저 저의 편지를 읽는 사람이 누구일지 저도 무척 궁금합니다. 제가 좋은 영화감독이 되었다면 어느 분께든 직접 편지를 드릴 수도 있을 테고, 영화감독이 되지 못했다 해도 언젠가 숨겨두었던 이 편지를 발견하고 힘내서 다시 꿈을 꿀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영화에 대한 저의 기억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텔레비전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방영해준 고전 크리처 영화들에서부터입니다. <쥬라기 공원> <죠스> <불가사리>를 보며 저는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고전영화를 즐기는 취향도 이 무렵 만들어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수집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였습니다. 그땐 그냥 재미있어서 샀습니다. 알라딘 중고판매 카테고리나 DVD프라임, 이베이옥션 같은 웹사이트를 열심히 뒤지고 다녔습니다. 처음 산 영화는 <엑소시스트> 1편과 2편이었습니다. 다들 존 부어먼의 <엑소시스트2>는 졸작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 영화를 1편보다 훨씬 좋아합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굉장히 사랑하거든요. 모리코네를 만나게 된다면 제일 먼저 큰절부터 올릴 거예요. 정말이에요. 아니, 어쩌면 울음부터 터질지도 몰라요. 그 정도로 저는 모리코네의 음악을 사랑한답니다.

<엑소시스트2>로 모리코네의 음악을 알게 된 뒤 저는 그의 음악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지금 제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음악도 전부 모리코네의 영화음악들이랍니다. 주세페 파트로니 그리피의 <어느 날 밤의 만찬>(1969)이라는 영화에서 쓰인 음악이 특히 좋아요. 프랑코 루바텔리가 연출한 <베르슈카>(1971)의 삽입곡 <인형>(La Bambola)은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곡이에요. 제 시나리오엔 <인형>을 듣던 중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장면도 있어요. 마음 같아서는 구상하고 있는 영화의 음악을 모두 모리코네의 곡으로 하고 싶어요. 어느 장면에 어떤 음악을 쓰면 좋을 것 같은지도 다 구상해뒀어요. … 물론 꿈으로만 그치겠지만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감사패도 받고 연말파티에까지 초청받았다.

교장선생님께 장비를 빌려 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미 저는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두었답니다. 하지만 장비를 구할 수가 없어서 촬영은 미뤄두고 있어요.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학교 연극부에도 들어가봤는데 제 생각과는 너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뒤 탈퇴하고 교장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제가 영화를 만들어서 영화제에 출품을 하고 운좋게 수상이라도 하게 되면 얼마나 학교에 이익이 되겠느냐고, 또 그 경험 자체가 학생들에게는 적성을 파악하는 뜻밖의 기회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러니 장비를 지원해주실 수 없겠느냐고 거듭 말씀드렸죠. 물론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지만요. 그래도 문학을 가르치는 담임선생님께서는 저를 많이 응원해주고 계세요. “자기 꿈을 찾아서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제일 좋아 보인다”고 하시면서 저를 칭찬해주신 적이 있는데요. 그 말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몰라요.

장비도 부족하지만 관심 있는 크루를 모으는 것도 힘든 것 같아요. 배우를 할 친구는 한명 구해뒀어요. 그 친구의 이미지가 참 마음에 들었는데 친한 친구가 아니라서 말을 붙이기 어렵더라고요. 그 친구의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그 친구를 소개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선생님이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직접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어요. 일단 하겠다고는 했는데… 그 친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해줄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른 친구들과도 고전영화를 두고 재미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고전영화를 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작품을 탐구하고 관련된 영화 외적인 배경지식도 많이 쌓는 편인데요. 친구들이 저를 그저 단순한 ‘오타쿠’라고만 치부하는 건 솔직히 조금 기분 나빠요. 뭐,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요.

제게 영감을 주는 또 한분이 있어요. 저는 오래된 이탈리아영화를 즐겨보는데요.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테오레마>(1967)를 특히 좋아합니다. 몇번이나 돌려보았는지 몰라요. 영화 이면에 숨겨진 다른 것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대단하거든요. 원래 한편의 영화를 여러 번 돌려보며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편이기는 합니다. 다들 왜 그리 파솔리니의 영화를 ‘역겨운 영화 리스트’ 같은 데에 자꾸 올려놓는지 모르겠어요. <테오레마>의 마지막 장면 즈음, 하녀가 스스로의 의지로 땅에 묻히는 장면과 아버지가 나체로 소리지르며 벌판을 뛰어다니는 장면을 가장 좋아합니다. 또 파솔리니는 모리코네와 여러 번 작업한 감독이기도 해요. 파솔리니와 비토리오 데 시카, 루키노 비스콘티, 마우로 볼로그니니, 프랑코 로시가 단편을 엮어 만든 옴니버스영화 <다섯 마녀 이야기>(1969)도 자주 돌려보는 작품 중 하나인데요. 그중에서도 파솔리니가 만든 <달나라에서 온 마녀>를 역시 가장 좋아합니다. 다른 네 감독과 달리 파솔리니만 영화음악을 모리코네에게 맡기기도 했어요. 제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죠.

이왕 말을 꺼냈으니, 제가 만들 영화의 한 장면 정도도 함께 적어볼게요. 소년이 환상을 보는데 회색빛깔의 장면이 될 거예요. 안개가 낀 부둣가에서 등대 불빛만 돌아가고 있고, 소년은 어리둥절한 느낌으로 서 있다가 긴 머리를 휘날리는 여인의 그림자를 보아요. 소년은 여인을 쫓아가고, 여인은 그림자만 보인 채로 바다를 향해 몸을 움직이죠. 여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여인을 잡으려는 찰나 소년은 바다에 빠지고 말아요.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시겠죠? 영화를 완성하게 되면 좀더 친절한 설명을 덧붙일게요. 아마도 제 영화엔 자연에 영감을 받은 장면들이 많이 들어갈 거예요.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건 자연과 더불어 자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 것도 같아요. 세살 때 울릉도에서 주황색 지붕을 얹은 집에 살았던 기억도 생생하고요. 여덟살 때부터 열한살 때까진 송정의 자연에서 뛰놀며 자랐어요. 동네 사람들도 정이 많고 풍경도 굉장히 환상적이었어요.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마음이 편해져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 김수용 감독의 <사랑의 조건>.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테오레마>.

인천의 아파트 지하실에 간 적이 있었는데요

영상자료원에 기증한 첫 작품은 유현목 감독님의 <한>(1967)이에요. 국내엔 없는데 홍콩에 비디오가 출시된 걸 보고 복사본을 구해서 기증했어요. 홍콩에선 제목이 <인귀신>으로 출시돼 있더라고요. 홍콩으로 수출되면서 이름이 바뀐 영화가 꽤 많은 것 같아요. 이규웅 감독님의 <꼬마검객>(1970)도 홍콩에선 <소검객>으로 출시돼 있었어요.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들을 저 혼자만 보는 게 아깝더라고요. 영상자료원에 기증하면 저도 언제든 가서 볼 수 있고, 자료도 깨끗하고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고, 다른 이용자들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어머니께서는 제가 영화에만 너무 빠져 있다고 늘 핀잔을 주세요. 고등학생인 아들이 공부는 안 하고 다른 취미만 탐닉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시지요. ‘야자’도 안 하고 그 시간에 영화공부를 하는 데다 용돈을 받는 족족 비디오만 사들이니 말이에요. 나중에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면 이런 취미까지도 이해해주실 거라 생각해요. 오늘 만난 <씨네21>의 사진기자님은 “소극적인 성격이면 절대 한국 영화판에서 영화 못한다”고 하셨지만요. 전 세상에 안 될 일은 없다고 봐요. 보통은 가위가 보를 이긴다고 하죠. 그런데 보는 정말 가위를 이길 수 없을까요? 우선 부딪쳐봐야죠. 부딪치기도 전에 포기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어요.

해외에 돌아다니는 우리 영화들의 자취는 수출 기록을 찾아보거나 전해지는 말들을 통해 추적해나가요. 홍콩에 있다는 소문만 들리는 <만추>(1966)도 꼭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홍콩엔 저에게 따로 비디오를 구해다주는 사람이 있어요. 중고 DVD 카페를 자주 이용하는데 우연히 그분이 제가 찾던 영화, 장일호 감독의 <여수대타록>(1976)의 비디오클립을 업로드해놓으셨더라고요. 그 인연으로 알고 지내게 돼서 홍콩과 중국쪽은 그분께 물어물어 비디오를 구하고 있어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중국인이라는데 그분 말로는 쇼브러더스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인터넷으로만 알고 지내는 분이니 그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저도 몰라요. 중요한 건 제가 그분 덕에 귀한 영화들을 모을 수 있었다는 거죠. 이분은 권격영화, 무협영화에 관심이 많은데 이분 도움으로 최근 <풍운의 권격>(1972)을 구하게 됐어요. 곧 기증할 예정이에요. 어떤 영화를 찾다보면 예기치 않게 다른 영화를 찾게 될 때도 있어요. <맥권>(1986)이라는 권격영화를 찾기 위해 인천의 어느 아파트 지하실까지 찾아간 적이 있어요. 한참 뒤지고 난 뒤 발견한 영화는 <맥권>이 아닌 <빨간 하이힐>(1986)이었어요. 이런 우연한 만남들마저 무척 영화적으로 느껴진다면, 제가 지나치게 낭만적인 것일까요.

김수용, 김기덕 감독님을 뵌 적이 있어요

언젠가 한번은 김수용 감독님께 편지를 써서 보낸 적이 있어요. 무사히 받아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학마을 사람들>의 영화 제작 소식입니다. 이범선 작가의 소설 <학마을 사람들>의 시나리오를 김수용 감독님이 쓰셨다는 기록을 어디선가 보았거든요. 영화화되었다는 가정하에 필름이나 비디오를 찾아보았는데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서 그 행방이 더욱 궁금해졌어요. 홍콩에 머물며 영화를 만드신 적도 있지요. 홍콩에서 번 돈으로 미국에 진출하시기도 했는데, 홍콩과 미국에서 별다른 어려움은 없으셨는지도 여쭤보고 싶었어요. 감독님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감독님을 직접 뵙기도 했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감독님이 오신 날이었는데요. 제가 모으고 있던 감독님의 비디오 표지 사진들을 가져가서 감독님께 사인도 받았어요. 그때 저는 동경하던 분을 직접 뵙는다는 놀라움과 긴장에 온통 정신이 나가 있었어요. 물어보고 싶던 것도 산더미였는데 직접 뵙게 되자마자 그 모든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홀라당 사라져버렸답니다. 손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신 영상자료원의 어느 직원분이 아니었다면 그 기념비적인 순간을 마음속으로만 간직해야 했겠지요. 필름마저 소실된 <씻김불>(1973)에 대해 김기덕 감독님께 묻고 싶은 것도 무척 많아요. 영상자료원 연말파티에 초대받아 간 날 김기덕 감독님께 직접 인사까지 드렸는데, 역시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했던 거 있죠.

쓰다보니 편지가 너무 길어졌네요. 사실 마음에 담아둔 말은 반의 반의 반도 다 못했는데 말예요. 하지만 내일 학교에 가야 하니 지금쯤은 잠자리에 들어야 할 것 같아요. 모쪼록 낡은 비디오 케이스에 담긴 이 편지가 어느 날에는 꼭 감독님들께 전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대로 영화감독이 돼서 감독님들께 자연스럽게 인사드리며 감독님들의 영화 곁에 고이고이 이 편지를 간직해왔다고, 언젠가 꼭 직접 말씀드릴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정말 좋겠습니다.

동해 사는 박지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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