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뜻 밀고 당기기의 준말 속뜻 비밀당원의 준말
주석 연애를 잘하려면 밀고 당기기에 능통해야 한다고들 한다. 선수들의 가르침이다. 입질을 시작하면 살살 풀어주고 한동안 줄다리기를 벌이다가 상대가 달아나는 데 지치면 슬슬 당겨서 마침내 포획해야 한다는 거다. 이때의 밀당은 실은 낚시용어다. 팽팽한 손맛에 연애의 긴장감을 빗댄 것은 그럴듯하지만 상대를 월척으로 대하는 일이 개운한 것만은 아니다. 상대를 ‘노는 물’에서 건져내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다음 회를 뜨거나 탕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애가 칼산지옥이나 화탕지옥도 아닌데 말이다.
밀당을 밀고 당기기로 보는 것은 사랑이 전쟁의 일종이라는 관점을 수락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때 상대는 전쟁의 당사자가 아니라 정복 가능한 땅으로 변한다. 상대의 마음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때에 따라 진지전, 기동전, 포격전, 유격전, 백병전 따위를 벌여야 한다.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할 때가 있고, 마구 진입해 들어갈 때가 있으며, 먼 데서 쏘아댈 때가 있고, 치고 빠질 때가 있으며, 정면으로 대결할 때가 있다. 여기엔 정복자를 영웅시해왔던 모든 수컷들의 역사가 아른거린다. 처음 가본 땅을 처녀지(處女地)라고, 첫 비행을 처녀비행이라고, 첫 작품을 처녀작이라 부르는 징그러운 관용어들의 역사가 여기에는 있다. 그러니까 밀당을 밀고 당기기로 간주하는 것은 남자들의 시선이다.
밀당은 중력의 일종이다. 실제로도 인력을 ‘attractive force’라고 부른다. 매력적(attractive)이란 본래 ‘끌어당기는’이란 뜻이다. 상대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상대에게 끌린다는 것(=상대가 나를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사랑은 만유인력이다. 사랑은 주체와 대상이 바뀌는 이상한 체험이다. 그가 나를 당기지 않았는데 나는 그에게 끌려들어간다. 밀당이 말하는 ‘밀어냄’이란 저 ‘당김’의 당기지 않음, 나는 당겨지는데 도무지 그는 무심한 그 이상한 경지를 말하는 게 아닐까? 정신없이 끌려가면서 나는 상대에게 묻는다. 왜 날 끌어당기니? 그는 대답한다. 아니, 난 그런 적 없는데?
그러니까 밀어냄이란 당김의 반대말이 아니다. 당기는 사람은 밀어내지 않는다. 당겨지는 사람만이 덜 당겨짐을 밀어냄이라고 느낀다. 이 경지를 신묘 가운데 하나라고 하면 될까. 사랑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지 하나를 숨겨두고 있다. 밀당은 이 불가지, 불가해의 다른 이름이다. 나를 매혹하는 그이는 밀당, 즉 비밀당원이다.
용례 영화 <연애의 온도>에서 이동희(이민기)와 장영(김민희)은 헤어진 뒤 자잘한 복수극을 주고받다가, 다시 만난 다음에 오히려 시들해진다. 당기기만 하면 재미가 없어서? 튕기는 맛이 없어서? 실은 비밀스런 사내커플이라는 신분이 폭로되었기 때문. 둘은 더이상 비밀당원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