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한국판 워킹타이틀 <레드카펫>
2014-10-22
글 : 주성철

에로비디오 업계의 유명감독 박정우(윤계상)는 다혈질의 조감독 진환(오정세), 순진하게 에로배우를 흠모하는 촬영감독 준수(조달환), 한예종 출신의 막내 대윤(황찬성) 등과 함께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 자신이 쓴 시나리오 <사관과 간호사>로 상업영화 데뷔를 꿈꾼다. 그러던 중 잘못된 전세 계약으로 인해 졸지에 전세금을 날린 정은수(고준희)가 정우의 집으로 오게 된다. 그렇게 기묘한 동거가 계속되던 어느 날, 정우는 은수가 연예계에서 갑자기 사라진 왕년의 인기 아역배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레드카펫>은 워킹타이틀에서 만든 <노팅 힐>(1999)의 공공연한 변주다. ‘일반인’까지는 아니지만 상업영화계에서 천시하는 에로비디오 감독과 어느 날 갑자기 톱스타가 되어버린 유명 배우의 은밀한 로맨틱 코미디다. <노팅 힐>뿐만 아니라 <러브 액츄얼리>(2003)의 그 유명한 ‘종이 넘겨가며 대사 전달하기’ 장면도 패러디하며 노골적으로 한국판 워킹타이틀을 지향하는데, 이제껏 같은 꿈을 이루고자 했던 다른 한국영화들과 달리 생생하고 정감 있는 주변 캐릭터들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칭찬하고 싶은 대목은 실제 에로비디오 업계 출신인 박범수 감독의 체험이 진하게 녹아든 스토리 라인에 있다. 정우는 박찬욱 감독을 존경하지만 현실은 <올드보이>(2003)를 패러디해 ‘장도리 베드 신’을 연출하고, 제목만 살짝 바꾼 <싸보이지만 괜찮아>라는 차기작을 준비하는 식이다. 그처럼 비디오 업계와 상업영화계 사이에서 고민하는 정우의 고달픈 처지는 시종일관 ‘웃픈’ 상황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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