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로저먼드 파이크] <나를 찾아줘>
2014-10-28
글 : 송경원
로저먼드 파이크
<나를 찾아줘>

때로 어떤 영화는 온전히 배우의 역량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허술한 영화가 배우의 재능에 기대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완벽을 향해 한층 한층 구성요소를 쌓아간 장인의 퍼즐게임 그 마지막 한 조각을 채울 특권은 오직 배우에게만 허락된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배우가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거꾸로 자신을 비워야 할 필요가 있다. 특정 감정을 명확하게 지시하는 단호함보다는 무언가가 일어나기 직전의 조짐을 형성하는 재능이 필요하다. 데이비드 핀처의 스릴러 <나를 찾아줘>의 마지막 조각은 두말할 것도 없이 로저먼드 파이크다.

<나를 찾아줘>는 그녀로 인해 시작되고 그녀를 통해 끝난다. 수사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실제 화면구성도 그렇다. “너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고 싶어.” 남편의 달콤한 말투로 문을 여는 영화는 뒤이어 “너의 머리통을 으깨서라도”라는 살벌한 멘트를 겹치며 ‘그녀’라는 미지를 그려나간다. 단적으로 말해 <나를 찾아줘>는 로저먼드 파이크가 맡은 에이미라는 역할의 비밀을 파헤치고 파헤치고 또 파헤치는 영화다. 그녀는 이 영화의 끝이자 시작이고 모든 것이며 신비로운 빛으로 사람을 빨아들이지만 동시에 접근하고 싶지 않은 심연이다. 매혹의 공포를 표현하기 위해 데이비드 핀처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남편의 입을 빌려 시적인 내레이션으로 그녀에 대해 설명하고 클로즈업으로 그녀의 얼굴을 훑어나간다. 안개처럼 몽환적인 사운드는 기본이다. 그러나 그 어떤 표현방식도 나른한 듯 팔에 얼굴을 누이는 로저먼드 파이크의 표정을 대체할 수 없다. 그것은 완벽하게 비어 있어 어떤 상황과 감정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테두리를 간직한 거울이다.

가끔 배우를 거듭나게 만드는 역할이 있다.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을 집어삼킬지도 모를, 대체 불가능한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을 것이다. 어쩌면 일생에 한번 찾아올 기적, 로저먼드 파이크의 결정적 순간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지금이다. 스무 번째 ‘007’ 시리즈 <007 어나더데이>(2002)로 입문한 로저먼드 파이크에게 ‘본드걸’은 절호의 기회이자 위기 신호였다. 전형적인 금발 미녀의 이미지 덕분에 배역을 따냈지만 이미 그녀의 내면은 만만치 않은 연기 내공으로 다져져 있었기에 섹시 심벌로 반짝 빛나고 사라지는 역대 본드걸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그 바탕에는 로저먼드 파이크 특유의 긴 호흡이 자리한다. 오페라 가수인 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유럽 곳곳을 돌아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유연한 시야와 국립청소년극단의 배우로서의 기본기가 그녀의 중심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여러 극단의 아마추어 요청을 뿌리치고 굳이 옥스퍼드 와드햄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것도 기본부터 다지겠다는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고집 때문이었다. <BBC> 제작의 TV영화 <어 래더 잉글리시 매리지>(1998)로 연예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후 본드걸의 역할에 매몰되지도, 벗어나려 의식하지도 않은 채 담담히 영화의 문을 두드려왔다.

금발에 또렷한 이목구비,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맵시 덕분에 아무래도 제인 오스틴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오만과 편견>(2005) 같은 고전적인 이야기가 좀더 어울리는 듯하지만 게임을 원작으로 한 <둠>(2005)과 같은 액션물, <타이탄의 분노>(2012) 같은 블록버스터도 곧잘 소화해냈다. 그렇다고 영화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종류의 배우는 아니다. 어떤 역할을 맡든지 간에 로저먼드 파이크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기본적으로 그리스 연극의 여배우 같은 우아함, 고결함, 화려함을 바탕으로 한다. 다만 그녀는 상황에 따라 옷을 갈아입을 줄 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확실한 자의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로저먼드 파이크는 역할에 자신을 던져 감정을 폭발시키고 역할 그 자체로 분하는 종류의 배우가 아니다.

“내가 영화에서 분노를 표출했던 건 조니 뎁과 함께했던 <리버틴>에서뿐이었다. 당시 로렌스 던모어 감독은 스무살 때 런던에서 공연했던 연극을 보러 왔는데 연극이 끝나고 나서 어땠는지 물었더니 ‘연극은 좋았다. 하지만 내가 이 배역에 당신을 캐스팅하고 싶은 건 커튼콜 때 당신의 얼굴에서 오늘 자신의 연기에 대한 분노가 보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배우로서 그녀의 핵심은 어떤 역할도 자신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도도하게 거리를 두는 데 있다. 심지어 몸으로 부딪치고 깨지는 액션 장면에서조차 그녀는 커튼 뒤 가려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영화와 일정 정도 긴장관계를 형성한다. 로저먼드 파이크에겐 자신이 두르고 있는 특유의 긴장관계를 효과적으로 포착하고 쌓아올려줄 장인이 필요했고, 드디어 데이비드 핀처가 찾아왔다.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누구의 이해도 바라지 않는 미지의 생물이다. 로저먼드 파이크는 그 미지의 영역을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어떤 역할은 배우의 몸 안에 품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열기와 감독의 냉정함 사이 교감의 신기루처럼 영화 안을 떠돈다. “내가 에이미의 감정을 통째로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 순간에 무엇이 필요한지 흐릿하게 만질 수 있을 정도면 족하다. 나머지는 감독이 채워준다. 데이비드가 지휘하는 현장은 작전사령실처럼 집중력 있다. 가령 에이미가 욕실을 나와 카디건을 걸치고 빈 방을 들어가 문을 닫고 베개를 옮기는, 그런 단순한 장면을 촬영할 때도 데이비드는 하나의 요소도 흐트러짐 없이 딱딱 맞춘다.” 이를 들은 데이비드 핀처는 “영화가 협동 작업임을 이해하고 있는 배우”라며 이 아름다운 마지막 퍼즐 조각을 치켜세웠다. 아마 두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에이미의 색은 미묘하게 다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다. “길리언 플린(원작자이자 시나리오작가)은 여러 버전의 에이미를 열린 태도로 보여줬다”는 로저먼드 파이크의 말처럼 에이미는 한 인물이 지속된 감정으로 끌고 가기 난감한 캐릭터다. 데이비드 핀처는 “에이미의 다중성을 조합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결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전혀 다른 색깔을 낼 줄 아는 배우가 필요”했고 그것이야말로 로저먼드 파이크가 바라는 바였다. 그렇게 감독, 배우, 작가가 각각 다른 면에서 그린 불분명함은 도리어 에이미의 환영을 짙게 만든다. 때로는 완벽한 해석보다 불완전한 접근이 본질에 다다르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완벽을 위한 마지막 한 조각은 화면에 흩뿌려진 그 찰나의 조짐들을 모으고 모아 관객의 손에 의해 각자 다른 형태로 빚어진다. 우리가 에이미에 대해 모를수록, 로저먼드 파이크가 가슴속에 들끓고 있을 정체 모를 감정을 깊숙이 삼킬수록 ‘그녀’의 존재감이 명확해지는 것이다.

영화 속 에이미는 현숙하고 우아한 아내다. 일기장 속 에이미는 결혼생활의 분노를 속으로 삭이고 억누른다. 행동하는 에이미는 목적을 위해 과감한 행동도 불사하는 치밀한 여자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리고 에이미에 대한 정보가 주어질수록 우리는 이 미지의 생물이 우리의 이해 바깥에 있음을 깨닫고 섬뜩함을 느낀다. 로저먼드 파이크는 자신의 육체에 이 불길한 생물을 깃들게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허락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과 배역, 배역과 영화, 영화와 관객 사이의 긴장감을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조율할 뿐이다. 마치 결혼생활처럼. 관객이 오프닝과 엔딩 속 닉(벤 애플렉)의 조심스러운 손길처럼 그녀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바라보면 그녀는 아름답고 따뜻하고 우아하고 불길한 미소로 영화를 완성시킨다. 단 한 장면만으로도 온전히 영화가 되는 그 순간은 어쩌면 한 배우가 커리어에 정점을 찍는 결정적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잭 리처>

magic hour

부산에서 찾았다!

2013년 1월 <잭 리처> 홍보차 톰 크루즈와 함께 한국을 찾은 로저먼드 파이크. 해외 스타 방한으로는 이례적으로 부산에서 열린 레드카펫 행사에서 부산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친절한 톰 아저씨의 유명세에 살짝 가려진 감이 있지만 이미 여러 번 봤던 톰 크루즈 말고 로저먼드 파이크를 직접 보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간 팬도 적지 않았다고. <나를 찾아줘>로 한껏 피어난 그녀를 보고 있자니 그녀의 매력을 일찌감치 알아본 팬들의 혜안이 새삼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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