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어린 나이에 에로배우를 만났다(아니, 그런 식으로 만난 게 아니고 인터뷰를 했다). 그때까지 에로비디오 한번 본 적이 없던 나는 맨날 어려운 영화만 빌린다며 나를 감탄의 시선으로 보던 동네 비디오 가게 아저씨의 눈총을 받으면서 에로비디오를 잔뜩 빌렸고(이왕 이렇게 된 거 그동안 궁금했던 <젖소부인 바람났네>도 함께 빌렸다), 열 시간 가까이 벗은 몸을 보며 신음을 듣다가 멀미가 났다. 세상이 온통 살색이었다.
나는 억울했다. 왜 나한테 이런 걸 시키는 걸까, 사무실에서 놀고 있는 남자 선배들 중에는 분명 이걸 다 본 사람도 있을 텐데, 남자 배우는 만나기 싫다 이거지. 배우를 만나기로 한 압구정동 길바닥에 서서 짧은 인생 최대의 회한을 씹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아우디 한대가 내 앞에 서더니 잘생긴 남자가 창문을 내리고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타세요.” 오오, 이것이 지금은 전설로만 남은 압구정동 ‘야타족’인가. 그 후 그 에로배우는 나와 동료들 사이에서 ‘아우디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오랫동안 아우디군을 잊고 살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그가 생각난다. 새벽까지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에로영화에 탐닉하게 된 건 아니고(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건 맞지만), 동네에 아우디 매장이 있기 때문이다. 에로영화가 사라진 시대, 아우디군은 지금도 아우디 타면서 잘 살고 있을까.
사실 아우디군은 당시 에로 영화계에서 매우 드문 경우였다. 아우디를 타서 그런 게 아니라 얼굴이 잘생기고 몸이 좋아서였다. 무릇 배우라면, 그것도 벗는 배우라면, 잘생기고 몸이 좋은 건 기본이 아니겠느냐고? 어허, 순진무구한 청소년기를 보내셨군요. 그때 에로배우들은 대부분 동네 아저씨 스타일로 신체의 세로보다 가로가 강조된 몸에 이목구비도 소박했다. 몽땅 이대근이었다. 아우디군의 설명에 의하면 에로비디오를 보는 남자들이 잘생긴 남자가 나오는 걸 싫어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외국이라고 달랐을까? 포르노 업계를 다룬 영화 <부기 나이트>를 보면서 나는 외국 포르노 배우라면 전부 마크 월버그 정도는 생긴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모델이 됐던 배우 ‘대물’ 존 홈스, 어찌나 컸던지 옆에서 오줌 싸던 사진작가 눈에 띄어 포르노에 입문했다는 그의 사진을 봤는데, 드라마 <유나의 거리> 칠복이 닮았어, 칠복이도 실물은 잘생겼다던데. 사진작가가 거기에 정신이 팔려 얼굴을 안 봤구나.
그래도 외국이 다른 점은 있다. 2000년대만 해도 웬만한 포르노 여배우는 1년에 10만 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2007년 한국영화 <색화동>에 따르면 에로영화 여배우가 1회 촬영에 받는 개런티가 70만원, 넉넉잡아 10회 안에 촬영을 끝낸다고 쳐도 편당 700만원이 되지 않는 액수다. 사람은 역시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건가. <색화동>은 쫑파티하면서 고기를 굽지만 <부기 나이트>는 1970년대에도 풀장 딸린 저택에서 놀던데.
물론 그 척박한 땅에서도 잘생긴 배우는 잘생겼다. 프랑스영화 <로망스>에 나오는 이탈리아 포르노 배우 로코 시프레디는 별명이 ‘이탈리아 종마’인데(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그런 말이 있었다니!) 제법 미남이다. 거기에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었으니 발기하면 길이가 20인치가 넘는다는 소문이었다. 20인치! 스칼렛 오하라 허리를 한 바퀴 휘감고도 남아! 이게 사람이야, 종마야! 아, 별명이 종마지.
에로비디오도 본 적이 없는데 포르노를 봤을 리가 만무한 나는 대학 선배를 만나 흥분해서 떠들었다. 선배의 얼굴에 연민이 어렸다. “그걸 믿니?” 강남 8학군에서 태어나고 자라 어린 시절부터 숱한 선진 문물을 누려온 선배는 물정 모르는 후배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다시 만난 후배에게 CD 다섯장을 내밀었다. “네 눈으로 확인해봐.” 나는 감격했다. “나 주려고 이걸 직접 찾은 거예요?” “아니, 난 평소에 카테고리를 배우로 나눠놓거든.” 근데 남자인 선배가 어찌하여 남자배우 카테고리를 만들고 있단 말인가.
외모보다 중요한 건 미학이며 스킬이다. <목구멍 깊숙이>의 린다 러브레이스의 전기영화 <러브레이스>엔 그녀의 오디션 장면이 나온다. 무려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가슴이 작아 매력 없다며 퇴짜놓으려던 포르노 제작자들은 그녀가 뭔가를 하는 영상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는데, 그건 몸이 아니라 입으로 하는 기술이었다. 그리하여 태어난 <목구멍 깊숙이>, 포르노영화의 역사를 다시 썼다. 가슴이 잘 나온다며 후배위와 여성상위만 선호하던 한국의 에로비디오 제작자들은 반성하라.
열정과 신념에 불타는 한국 에로영화의 대가 <아티스트 봉만대>를 보자. 여배우의 다리를 들고 무릎 뒤를 눌러 연기가 아닌 자연스러운 신음이 나오도록 만드는 기술을 구사하는 그로 인해 나는 오랫동안 불신했던 무언가가 진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TV 시리즈 <앨리 맥빌>에서 깐깐한 루시 리우가 무릎 뒤만 눌러주면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무리수라고 믿었는데 진짜였구나.
그렇다고 영화를 곧이곧대로 믿는 건 곤란하다. 숱하게 섭렵한 에로와 포르노비디오의 영향력이란 무시무시하여 오래전에 불혹을 넘겼는데도 대물 판타지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 선배가 물었다. “크기가… 많이 중요한 거야?” 크기라면 길이인가요 굵기인가요. 하지만 상세 사이즈를 물을 수는 없어서 대충 말했다. “그렇진 않아요.” 선배는 함박웃음을 웃었다. 하지만 이내 수심이 깃들었다. “그렇다고 너무 작으면 곤란하지.” 한없이 어두워지는 선배를 보며 나는 <러브레이스>에서 포르노 배우 해리가 들려주던 대사를 떠올렸다. “우리가 영화에 빠지는 순간 세상은 멈추고 우린 순간을 만끽하지.” 선배, 영화는 순간에 불과하니 현실을 만끽하세요, 존 홈스도 나이 먹고 작아졌대.
기술보다는 연기!
에로의 역사에 남기 위해 필요한 두세 가지 것들
특별한 스킬 내가 어릴 적에 봤던 통아저씨가 아직도 TV에 나오는 걸 보면 감개가 무량하다. 확실한 기술 하나가 있으니까 평생을 먹고살아, 게다가 난 어린이에서 아줌마가 되었는데, 저 아저씨는 아직도 아저씨. 우리 이제 동년배인 건가. 린다 러브레이스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찍은 핍쇼 필름을 보여주고 포르노 배우가 되었던 그녀의 장기는 <목구멍 깊숙이>. 영화 제목이 바로 개인기다. 비슷하게 충격적이었던 장면이 <풀 몬티>에도 있었다. 스트립쇼 오디션 장소에 나타난 아저씨는 영 신통치 않아 보였지만 바지를 내리는 순간 전세가 역전된다. 저것은… 김밥이야? 그 순간 대학가의 조그만 비디오방은 뒤집어졌다. 너도 김밥이냐? 아니, 난 주먹밥.
연기력 포르노 배우도 배우일진대 연기 잘한다고 나쁠 것은 없다. 포르노계의 대모인 <부기 나이트>의 앰버(줄리언 무어)는 린다 러브레이스가 퇴짜 맞을 뻔했던 조건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 가슴이 작고 주근깨가 있고 색기는 없어. 하지만 그녀는 프로듀서가 이랬다 저랬다 맘대로 바꾸는 상황에 맞춰서 제대로 연기를 하는데, 심지어 컷을 나누지 않고 가는 롱테이크다. 영화를 찍는 게 아니라 거의 연극 공연을 하는 수준이다.
뛰어난 감독의 지도 사실 나는 선배에게 로코 시프레디 CD를 받기 전에 딱 한번 포르노를 본 적이 있다. 여자 셋이 일본여행을 갔는데 말로만 듣던 유료 채널이 보고 싶었던 거다. 요금은 1천엔. 몇 달째 월급이 밀리고 있던 우리는 큰맘먹고 1천 엔을 내기로 했다, 그리고 밤을 새우기로 했다. 본전의 열배를 뽑아주겠어! 그러고는 한 시간 만에 잠들었지. 그러니까 <아티스트 봉만대>가 필요한 거다. 옷을 벗길 때도, 가슴을 만질 때도, 본격적인 장면에 돌입해서도, 다양성과 미학을 추구하는, 그대가 아티스트. 실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