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감독 인터뷰의 고전이 된 <히치콕과의 대화>에서 저자인 프랑수아 트뤼포는 여성의 성적 매력을 놓고 앨프리드 히치콕과 말다툼 같은 실랑이를 벌인다. 서스펜스 드라마의 거장답게 히치콕은 성적 매력에도 ‘서스펜스’가 있어야 한다며, 요조숙녀처럼 보이는 여성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반면 마릴린 먼로나 소피아 로렌처럼 성적 매력이 너무 직접적이면,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자 트뤼포는 먼로나 로렌이 관객으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는 육감적인 스타일 덕분이라며 히치콕의 의견에 반박한다. 히치콕도 가만있지 않는다. “마치 학교 선생처럼 보이는 여성이 함께 택시를 탔을 때, 놀랍게도 당신 바지의 지퍼를 여는 것”이 성적 매력의 서스펜스라고 대꾸한다. 대사의 앞뒤 문맥을 보면 그 여성이 그레이스 켈리다. 두 감독은 <이창>(1954)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히치콕이 말한 ‘성적 매력의 서스펜스’
히치콕 감독이 금발 미녀를 좋아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국 시절 발표한 <39계단>(1935)의 주인공 매들린 캐럴부터 히치콕의 금발 계보는 시작된다. 이런 취향은 할리우드에 와서도 이어졌고, 히치콕은 잉그리드 버그먼을 만나며 전쟁 이후의 자신의 전성기를 연다. 그런데 알다시피 버그먼은 로베르토 로셀리니를 좇아 이탈리아로 떠나버렸고(<씨네21> 910호 참조), 이후에 새로 발견한 히로인이 그레이스 켈리다. 당시 그레이스 켈리는 존 포드의 <모감보>(1953)를 통해 할리우드의 신성으로 막 떠오르던 중이었다.
켈리는 버그먼보다는 <39계단>의 캐럴과 더 비슷했다. 흔히 말하는 ‘차가운 금발’로 비쳤다. 그런데 히치콕은 여기에 자신이 말하는 성적 매력의 서스펜스를 더했다. 히치콕과 켈리의 첫 합작품인 <다이얼 M을 돌려라>(1954)를 통해서다. 여기서 켈리는 부자의 상속녀로 나온다. 여전히 지적이고 세련된 중산층 여성인데, 알고 보니 테니스 챔피언 출신인 남편(레이 밀런드) 몰래 유명 작가(로버트 커밍스)와 데이트를 즐기는 비밀스런 인물이었다.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방금 전에 남편과 키스하고, 곧이어 애인과 키스하는, 보기에 따라서는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역할이다. 너무나 결백해 보이는 여성의 반전인데, 여기서 켈리의 매력, 곧 히치콕의 ‘서스펜스가 있는 금발’이라는 이미지가 싹튼 것이다.
히치콕은 <다이얼 M을 돌려라>를 만들 때부터 이미 <이창>의 거의 모든 아이디어를 완성해놓았다. 그는 켈리를 보며, 자신이 찾는 ‘완벽한 블론드’를 이제야 만났다고 생각했다(<히치콕 서스펜스의 거장>(패트릭 맥길리건 지음)). 한때 자신의 뮤즈로 추앙하던 버그먼에 대해서는 ‘사실 그녀는 음탕한 금발’이었다며, 과거와는 다른 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원래 히치콕이 성적으로 짓궂은 농담을 잘하는 인물로 유명하지만, 당시의 버그먼 관련 발언들은 자신의 인형을 빼앗긴 소녀의 질투처럼 속좁아 보였다.
<이창>에서 켈리는 모델 역을 맡았다.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선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련된 패션 감각을 뽐낼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처럼 우아하고 품위 있는 스타일이 더욱 돋보였다. 켈리의 첫 등장 장면은 히치콕의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순간 중 하나이다. 상대역인 사진작가 제프리(제임스 스튜어트)는 낮잠을 자고 있고, 켈리가 그를 깨우기 위해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는 장면인데, 히치콕은 그 모습을 극단적인 프로필로, 또 속도를 늦춰 슬로모션으로 찍는다. 몽환적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이 순간을 통해, 그레이스 켈리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등극한다.
<이창>으로 최고 스타에 등극
켈리가 미국 관객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데는 필라델피아의 상류층인 집안 덕도 좀 봤을 것 같다. 부친은 올림픽 조정 종목에서 세개의 금메달을 딴 미국 스포츠계의 영웅이며, 2차대전 중에는 루스벨트 정부에서 체육 분야의 고급관리로도 일했다. 모친도 체육인인데,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체육을 가르쳤고, 여성 육상부 코치였다. 모친은 또 체육인 이전에 미녀였는데, 어릴 때부터 지역 미인대회에서 종종 우승을 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켈리는 부모로부터 특별한 몸매와 미모를 물려받은 셈이다.
켈리는 큰아버지들의 영향으로 배우에 대한 꿈을 키웠다. 부친의 큰형은 배우였고, 작은형은 퓰리처상을 받은 드라마작가였다. 켈리는 뉴욕에 있는 ‘미국드라마학교’(American Academy of Dramatic Arts)에 입학하며 연기수업을 본격적으로 받는다. 이 학교는 커크 더글러스, 로렌 바콜 등 쟁쟁한 배우들을 길러낸 곳으로 유명하다. 재학 중 켈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며 연기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그런데 성량이 너무 작아, 연극무대에서는 늘 애를 먹었다. 마침 그때 성장하기 시작하던 TV에 진출하며 공연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영화배우로서의 첫 히트작은 게리 쿠퍼와 공연한 <하이눈>(감독 프레드 진네만, 1952)이다. 보안관 쿠퍼와 막 결혼한 퀘이커 교도 신부 역이었다. <하이눈>은 게리 쿠퍼의 거의 1인극이고, 켈리는 많은 조연 가운데 한명이었다. 그러나 22살이던 켈리는 ‘순결함’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기에 모자라지 않는 연기를 보여줬다. 여기에서의 이미지 덕분에 켈리는 존 포드를 만나 <모감보>에 나올 수 있었다. 클라크 게이블을 사이에 놓고, 에바 가드너와 경쟁을 벌이는 역할이다. 가드너의 관능미와 켈리의 청순미가 대조됐다. 당시에 가드너는 이미 스타였고 켈리는 신인이었는데, 켈리의 매력이 얼마나 돋보였던지 영화가 발표된 뒤 두 스타의 위치는 대단히 비슷해졌다.
히치콕이 자랑한 대로 켈리의 어린 이미지에서 성적 매력을 끌어낸 것은 그의 안목이었다.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 히치콕이 말한 ‘완벽한 금발’, 곧 서스펜스를 느끼게 하는 성적 매력이 시작됐고, <이창>에서 그 매력이 더욱 빛났다. 아마도 정점은 히치콕과의 세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인 <나는 결백하다>(1955)일 것이다. 미국인 부호의 딸로 나온 켈리는 프랑스 남부 리비에라 해변의 절경을 배경으로 수없이 아름다운 옷을 갈아입는 인형처럼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상대역인 캐리 그랜트와의 관계를, 특히 육체적인 관계를 주도하는 이중적인 이미지를 연기한다. 차갑고 결백해 보이지만, 속에서는 불꽃이 터지는 여성인 것이다.
켈리는 히치콕을 만나 세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모두는 할리우드 영화사의 보석이 됐다. 1956년 모나코의 왕자와 결혼하며 켈리는 영화계에서 은퇴했는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히치콕의 또 다른 금발 미녀인 <새>(1963)의 주인공 티피 헤드렌의 등장은 더욱 늦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