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장마와 싸우다
2014-12-05
글 : 박소미 (영화평론가)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봄> 김정원 촬영감독

필모그래피
2014 <봄> 촬영감독, <두근두근 내 인생> B카메라 2013 <감시자들> C카메라 2012 <광해, 왕이 된 남자> C카메라 2011 <완득이> <그대를 사랑합니다> 촬영B팀 2010 <시> <내 깡패 같은 애인> 촬영B팀, <악마를 보았다> 촬영C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 ‘봄철의 곰’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큰 덩치의 푸근한 첫인상과 달리(?) 알면 알수록 로맨티시스트인 김정원 촬영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그 이미지가 떠올랐다. 물론 <봄>의 촬영현장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의외의 복병은 장마였다. “비온 날이 더 많은데 정작 영화에 비오는 장면은 없어요. 낮에 저녁 신을 찍느라 암막 커튼을 치면 스팀이 따로 없더라고요. (웃음)” 하지만 실제 영상은 봄볕에 곱게 말린 이불처럼 눅눅한 기운 하나 없이 산뜻하고 청초하다.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세트에서 서정적인 화면을 담아내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영상의 매무새를 만지고 또 만졌을 그의 모습이 상상된다.

섬세하다고 해서 그가 물렁하냐고. 오히려 강단 있다. “예술가와 뮤즈를 다룬 영화 중 열에 아홉은 베드신이 나오는데” 그는 반대로 “베드신이 들어가는 순간 망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제 반응을 보면 그의 직감이 맞았다. 노출 장면에 대한 나름의 원칙도 세웠다. “모델인 민경(이유영)의 몸을 나체가 아니라 조각상”처럼 보이게 하고 싶어 “선정적이지 않게 찍는 법을 정말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클로즈업으로 민경이 자세를 다듬는 과정에 집중하는 대신 포즈를 완성한 뒤에는 풀숏으로 패닝하며 모델의 몸에서 나오는 균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화가 정적인 톤이라 연기도 절제되고 화면도 잔잔하다. 뒤집어 말하면 촬영에 쓸 수 있는 앵글과 기법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화면을 채우는 고민만큼 화면을 비우는 문제가 중요했다. 주인공들을 맴도는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중앙을 텅 비게 하고 인물을 구석에 치우치게” 찍었다. 자칫 화면이 지루할 수 있는데 조명이 큰 도움이 되었다며 신경만 조명감독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준구(박용우)의 작업실 장면이 워낙 많다보니 새로운 걸 보여주는 데 한계를 느낀 적이 있어요. 그때 조명감독님이 노을로 색감에 변화를 주거나 커튼 그림자를 끌어들이는 아이디어들을 주셨거든요.”

편집을 전공했지만 “16mm 카메라의 필름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뷰파인더를 보는 느낌이 너무 좋아” 졸업 전부터 무작정 현장에서 촬영을 배웠다고 한다. 17년 동안 40편의 작품을 해오면서 ‘쌍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저인망 어선처럼 모든 작품에 이름이 올라가 생긴 별명”이라며 웃어넘기지만 그게 곧 그의 힘일 것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묻자 <화양연화> <비포 선라이즈> <호우시절>이 줄줄이 나온다. 세 영화처럼 “느리지만 지루하지 않게 일상의 순간을 건져올리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와 딱 어울리는 <봄>을 만나 데뷔와 동시에 밀라노국제영화제와 댈러스아시안영화제에서 촬영상을수상했다. 그의 화양연화가 시작되었나보다.

필름카메라

“대학 때 선배한테 물려받은 필름카메라예요. 갈수록 사람들의 감성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저는 아직까지 빈티지한 필름 냄새가 좋거든요. 사실 <봄>을 찍을 때도 필름의 느낌을 주고 싶었고 실제로 필름으로 찍었냐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웃음)” 역시 <봄>의 수채화 같은 장면들에서 괜히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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