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마, 타임머신 탈 준비 됐나?!
2014-12-18
글 : 김성훈
사진 : 노주한 (스틸 작가)
사진 : 최성열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관통해온 어느 부부 이야기, <국제시장> 시끌벅적 제작기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12월1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윤제균 감독의 신작 <국제시장>은 부산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한다. 6•25 전쟁부터 서독 파견 광부, 베트남전쟁, 이산가족찾기를 거쳐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관통해온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 부부와 그들 가족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다. 윤제균 감독, 이상직 프로듀서, 최영환 촬영감독, 류성희 미술감독, 임승희 의상감독, 한태정 VFX 슈퍼바이저, 디지털아이디어 손승현 본부장, 신인배우 황인준이 없는 게 없는 <국제시장> 제작 스토리를 들려줬다. 마, 읽을 준비 됐나?!

6•25 전쟁 흥남 철수 신과 서독 파견 탄광 그리고 1950년부터 80년대까지 시대별 국제시장의 시각적 특수효과(VFX)를 작업한 업체가 모두 다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국제시장>에 매달린 한국 VFX 3개 업체가 그런 심정이었을 듯하다. 평소 경쟁 관계인 회사들이 어떤 연유로 <국제시장>의 주요 시퀀스를 나눠 작업하게 됐을까. 윤제균 감독은 “한국 VFX 업체들의 실력과 경험은 뛰어나다. 하지만 개봉일이 닥치면 스케줄에 쫓기게 되고, 일에 과부하가 걸리게 되더라”며 “<국제시장>은 시퀀스들이 정확하게 나뉘어져 있어 3개 회사가 각기 다른 시퀀스를 작업하는 게 가능했다”고 3개 업체를 한데 모은 이유를 설명했다. 먼저, <마이웨이>(2001)를 작업했던 디지털아이디어가 가장 규모가 큰 흥남 철수 신과 베트남전쟁 신을 맡았다. 디지털아이디어 손승현 본부장은 “이 시퀀스에서 VFX의 역할은 300명의 보조출연자들을 몇 십만명의 피난민 행렬로 확장하는 것”이라며 “군중 합성이 크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지만, 롱테이크 롱숏으로 찍은 장면이 많아 채워넣어야 할 작업이 만만치 않았고, 덕수 가족의 감정도 함께 살리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1950, 60, 70, 80년대 등 시대별 국제시장은 최근 <찌라시: 위험한 소문>(2013)을 작업했던 스튜디오 1064가 책임졌다. 국제시장을 시대별로 구분하는 기준은 색감이었다고 한다. 한태정 VFX 슈퍼바이저는 “1950년대 국제시장은 컬러가 거의 없다. 전쟁 중이라 대부분 판잣집이었는 데다 사람들이 입은 옷 또한 대부분 군복이라 색이 우중충했다”며 “전쟁이 끝난 1960년대부터 1970, 80년대로 넘어오면서 촌스럽지만 화려한 색으로 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부산은 높지는 않지만 낮은 산이 많아 배경에 추가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코코아비전이 서독 광산 시퀀스를 작업했다. 한태정 슈퍼바이저는 “광산 외벽과 주변 풍경은 체코에서 촬영한 뒤 한국에 돌아와 탄광 부분 세트를 지은 다음 폭발 장면을 합성했다. 석탄이 무너질 때 쓰나미 같은 느낌이 들도록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1950년대 국제시장 컨셉아트

1950, 60, 70, 80년대 시대별 국제시장은 어떻게 변하는가?

나이를 먹는 건 사람뿐만이 아니다. 국제시장 역시 덕수와 함께 늙어간다. 류성희 미술감독이 시나리오를 통해 만났던 국제시장은 “덕수의 상황을 반영하는, 보이지 않는 내레이션”이었다. 부산 기장군에 오픈 세트를 지은 것도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시장에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판매 물건이 점점 변해가는 국제시장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상직 프로듀서는 “세트 규모는 직선 길이가 200m고, 세트 뒤에 VFX 작업을 위한 블루매트를 설치했다”라며 “1950년대부터 시간순으로 찍으면서 세트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진행됐다”고 말했다.

1970년대 국제시장 컨셉아트
1980년대 국제시장 컨셉아트

영화에는 1950, 60, 70, 80년대 등 총 4개 시대별 국제시장이 등장한다. 류성희 미술감독이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판매 물건과 가게 간판이었다. “한국의 시장은 가게 공간보다 판매하고 있는 물건과 가게 이름이 더 중요하다.” (류성희 미술감독) 1950년대에는 소시지, 콘수프 등 원조받은 기초 식량과 미군 군용 물품 그리고 염색한 군복이 매대에 올랐다. 1960년대 분유 같은 공산품이 하나씩 늘기 시작했고, 1970, 80년대에는 비누, 샴푸, 린스, 화장품, 술 등 판매 물건이 다양해졌다. 간판 역시 1950년대에는 나무판자에 가게 이름을 직접 썼다가 플라스틱과 아크릴로 제작된 간판이 늘었다. “간판과 제품 라벨을 일일이 디자인해 제작해야 했다. 이산가족찾기 신을 촬영할 때 가족을 찾는 내용이 적힌 피켓을 촬영 전부터 미술팀과 소품팀이 함께 매일 할당량을 의무적으로 채우면서 준비했다. (웃음) 미술팀과 소품팀의 물리적인 작업양이 어마어마했던 작업”이었다는 게 류성희 미술감독의 설명이다.

영자가 1960년대에 청바지를 입을 수 있었던 까닭은?

1970년대 최고의 청바지 모델 브룩 실즈는 저리 가라다. 독일 루르강변에서 <로렐라이>를 부르던 20대 영자(김윤진)는 청바지만 입어도 빛이 났다. 하루 종일 탄광 안에서 석탄만 캐던 덕수(황정민)가 첫눈에 반할 만했다. 하지만 청바지가 국내에 유행한 건 1970년대부터다. 임승희 의상감독은 “1960년대 한국이 배경이었다면 영자에게 청바지를 입히기 어려웠다. 하지만 서독에 간호사로 파견된 설정이라 청바지를 입힘으로써 영자의 자유로움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보다 의상팀이 영화에서 가장 신경 쓴 장면은 보조출연자만 무려 300명 넘게 투입된 흥남 철수 신. “어린이, 20대, 중•장년층 등 다양한 연령층이 겨울 바다로 뛰어드는 설정 때문에 안전이 중요했다. 그래서 바다에 뛰어드는 보조출연자들에게는 한복 안에 고무 슈트를 입게 했다. 당시 임신부였던 배우 장영남에게는 잠수복에 사용되는 네오플랜 원단으로 만든 바지 장화를 입힌 뒤 버선과 큰 사이즈의 신발을 차례로 신겼다.” (임승희 의상감독) 해인 사무실에서 공수하고, 직접 제작한 옷이 500벌 넘게 투입된 까닭에 촬영이 끝난 뒤 세탁하는 데만 무려 열흘 이상 걸렸다고.

흥남 철수 신에서 빅토리아호가 무기를 버리고 피난민을 태운 건 사실인가?

빅토리아호의 흥남 철수 작전은 1950년 겨울, 중공군에 밀려 고립 위기에 처한 연합군이 흥남항에서 탈출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레너드 라루 선장을 비롯한 빅토리아호 선원 47명은 피난민 전부를 태우고 뒤늦게 항구를 떠나 사흘 뒤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명의 인명 피해를 내지 않았다. 윤제균 감독과 최영환 촬영감독은 흥남 철수 신을 찍기 전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몇 십만명이 한꺼번에 피난을 떠나는 장관을 보여주는 것. 전투 신 하나 없이 피난민 행렬만으로 전쟁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게 중요했다. 또 하나는 덕수와 아버지가 생이별을 하게 되는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최영환 촬영감독) 하지만 보조출연자만 무려 300명 넘게 출연했고, 이야기 초반에 배치된 까닭에 제작진으로선 촬영 전부터 부담감이 컸다. “그래서 프리비주얼 작업으로 찍어야 할 장면을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했다. 현장에서는 사전에 약속한 장면만 찍었다. 덕분에 정확히 15회차 만에 끝낼 수 있었다.”(윤제균 감독)

공간마다 각기 다른 카메라로 찍었다던데.

영화에 투입된 카메라는 모두 세 종류다. 한국은 소니 F65, 체코에서 찍은 서독 탄광 신은 알렉사, 타이에서 찍은 베트남전은 레드에픽으로 촬영했다. 최영환 촬영감독은 “나라와 시대별로 각기 다른 색감과 질감으로 구분해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유럽은 해가 부드러워 콘트라스트가 강하지 않고, 샤프니스가 약한 데다가 사랑하는 영자를 만나 덕수의 인생에서 가장 밝은 시절이라 알렉사가 필요했다. 반면, 타이는 해가 강해 콘트라스트도, 색감도 강해 레드에픽이 적절했다”고 말했다. 알렉사와 레드에픽의 중간에 해당되는 F65로 한국 촬영을 진행했다. 한국 촬영 역시 시대별로 각기 다른 색감을 보여줬다. “1950년대 흥남 철수 신은 색을 빼서 최대한 차갑게 보여주려고 했다. 1960년대부터 색을 조금씩 넣기 시작해 1980년대에 원색이 가장 많이 들어갔다”는 게 최영환 촬영감독의 설명. 그가 꼽는 <국제시장>의 가장 중요한 시퀀스는 1980년대 이산가족찾기다. “덕수가 아버지를 찾는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황정민이라는 배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촬영에 기교를 부리지 않았다.”(최영환 촬영감독)

서독 탄광 장면을 체코에서, 베트남전 장면을 타이에서 찍은 이유는 무엇인가?

해외 나가는 게 흔치 않았던 1960, 70년대. 서독 탄광과 베트남전에 파견 근무를 다녀온 덕수는 일찍이 ‘외국물’ 좀 먹어본 남자다. 제작진은 서독 탄광장면과 베트남전 장면을 실제 장소가 아닌 체코와 타이에서 각각 촬영했다. 윤제균 감독은 “독일 장면을 체코에서 찍은 건 체코 물가가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타이 스탭들이 할리우드를 비롯한 해외 제작진과 공동 제작 경험이 많아 베트남전 장면을 타이에서 찍었다”고 말했다.

독일 로케이션 헌팅 때 이상직 프로듀서와 이종석 조감독에게 내려진 과제는 영화의 배경인 독일 뒤스부르크의 함보른 탄광을 대신할 탄광을 구하는 것. 그렇게 찾은 탄광이 체코 오스트라바에 있는 한 폐광. “과거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 현재 탄광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갱도가 길어야 하는 영화 설정과 달리 그곳은 갱도가 짧더라. 그래서 외벽, 탄광 내부 등 체코에서 찍을 수 있는 건 전부 찍은 뒤, 탄광 폭발 신을 포함해 로케이션에서 해결하지 못한 컷은 한국에 세트를 지어 찍기로 했다”라는 게 이상직 프로듀서의 설명이다. 타이 로케이션 촬영은 크게 두 가지 시퀀스로 나눠 진행됐다. 하나는 미국 대사관 폭발 신이고, 또 하나는 정글 전투신이다. “미국 대사관 앞 풍경을 베트남처럼 보이기 위해 소품, 의상, 미술에 공을 들였다. 타이 미술팀이 자전거 같은 소품을 많이 배치했고, 보조출연자들에게는 아오자이를 입혔다. 정글 전투 신의 경우, 야자수 나무가 무성한 풍경을 찾기 위해 바나나 농장을 섭외해 선착장과 베트남 사람들의 집을 지어 베트남처럼 연출했다.”(이상직 프로듀서)

특수분장 중인 러브 라르손팀

노인 얼굴은 스웨덴 특수분장팀이, 젊은 시절 얼굴은 일본 VFX팀이 작업했다던데.

명배우도 세월 앞에서는 장사 없다. 주름이 겹겹이 잡힌 피부도, 탱탱했던 피부도 노력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것도 그래서다. 황정민, 오달수, 김윤진, 장영남 등 배우들의 노인 분장은 스웨덴 특수분장팀 러브 라르손이 맡았다. <007 스카이폴>(2011),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 등 할리우드와 스웨덴영화에서 오랫동안 특수분장을 했던 팀이다. 동양 배우와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인 러브 라르손은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참고하고, 한국인들의 사진을 수집해 골격, 피부톤을 파악하려고 했다”라며 “피부톤부터 골격 구조까지 모든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얼굴을 8개의 픽셀로 본뜬 뒤 인공 피부를 덧씌웠다. 덕분에 얼굴 근육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마다 노인 분장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황정민, 오달수, 장영남씨 같은 동양적인 외모는 노인 분장이 잘 어울리고, 김윤진씨 같은 서구적 외모는 노인 분장 작업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본 VFX 업체 포톤(Foton)은 배우들의 얼굴을 젊은 시절도 되살리는 마술을 부렸다. 일본에서 주로 CF 작업만 해왔고, 영화는 <국제시장>이 처음인 업체. 이상직 프로듀서는 “덕수와 영자가 결혼식 피로연을 하기 전까지 배우들의 20대 시절 모두 CG를 통해 젊게 보이게 한 것”이라며 “황정민, 오달수, 김윤진씨 촬영 데이터를 넘겨주면 포톤이 얼굴만 20대로 되돌린 뒤 보내오는 방식으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유노윤호가 가수 남진을 연기하게 된 사연은 뭔가?

“가수하믄 나훈아지. 남진이는 가시나처럼 생기가꼬. 외모로 보나 목소리로 보나 나훈아가 훨씬 멋있재.” 열에 아홉은 남진보다 나훈아를 더 좋아하는 부산에서 덕수는 남진 팬이다. 덕수가 베트남전에 파견 근무 나갔을 때 남진과 쌓은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진은 1969년부터 1971년까지 해병대 전투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영화에서는 1975년 베트남에서 덕수와 남진이 만나는 설정으로 재구성됐다. “아따 이노무 인기는 전후방을 안 가려 불고마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함께 깜짝 등장하는 남진만큼이나 놀라운 건 남진을 연기한 배우가 유노윤호라는 사실. “전라도 사투리가 유창해야 하고, 나훈아와 함께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닌 가요계 아이콘이었던 만큼 잘생긴 아이돌 가수가 연기해주면 좋겠다 싶었다. 그 조건이 충족된 게 유노윤호”라는 게 윤제균 감독의 설명. 유노윤호의 출연 덕분에 제작진은 아이돌 가수의 위력을 처음 실감했다. “방콕에 도착해 숙소까지 가는 길에 팬들이 탄 차량 40대가 따라왔다. 촬영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옆방에 묵었던 유노윤호 팬들이 밤새 동방신기 노래를 불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웃음)” (윤제균 감독)

덕수가 출연한 KBS 프로그램 <이산가족찾기>의 김동건 아나운서는 CG가 아니다?

<이산가족찾기> 방송 클립과 황정민을 합성한 줄 알았다. 양쪽으로 쭉 찢어진 눈매며, 차분한 저음이며, 마이크를 턱 아래로 잡는 자세가 영락없는 김동건 아나운서의 젊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실제 김동건 아나운서를 섭외할 계획이었다. “시나리오도 보내드리고, 삼고초려를 했다. 김동건 선생님께서 50년 동안 아나운서 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외도를 한 적이 없다면서 출연을 끝내 사양하셨다. 스케줄이나 비용이 문제면 해결해보겠는데 ‘50년의 신념을 윤 감독이 지켜달라’고 말씀하시니 우짜겠노.”(윤제균 감독) 딱 포기하고 있었을 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부천 극단 물매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호텔에서 기업 행사를 주로 진행해왔으며, <국제시장>이 첫 영화 출연작인 초짜 영화배우 황인준이다. 황인준은 “김동건 아나운서는 진행하시는 분이라 억양의 변화가 없다. 눈매가 살짝 날카로워 눈을 덜 뜬 것처럼 보이려고 했다. 입모양이 보이도록 마이크를 턱 아래로 잡았다”고 캐릭터를 분석했다. 덕분에 “그와 호흡을 맞췄던 황정민, 오달수는 물론이고, 후시녹음 때 따라온 아내로부터 ‘진짜 김동건 아나운서 같다’ (웃음)”라는 호평을 들었다고.

지금도 태종대 바위에 앉아 회와 소주를 먹을 수 있나?

술안주가 회뿐이랴. 날씨 좋은 날에는 가까운 오륙도는 물론이고, 56km 거리에 있는 일본 쓰시마섬도 희미하게 보인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대호 선수의 단골 조개구이 집도 근처에 있을만큼 태종대 바위는 관객에게 명소다. 윤제균 감독은 “영화에서는 의상과 소품만 바뀌었을 뿐 실제로 수십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서독에서 돌아온 영자가 덕수를 다시 만나 태종대 바위에서 회를 먹는 장면은 제작진에 쉽지 않은 촬영이었다. “그곳에 가는 방법이 두 가지다. 하나는 바위 아래까지 배를 타고 가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육로로 태종대에서 내려 장비를 들고 바위 위로 가는 방법이다.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전자를 택했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세 차례의 도전 끝에 무사히 바위에 내려 찍을 수 있었다.” (이상직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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