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의 스포일러가 나옵니다만, 그게 참, 스포일러라고 하기에도 뭔가….
우주에 남는 역할은 왜 전부 남자들의 몫일까. <인터스텔라>를 보다가 <그래비티>를 떠올렸다. <그래비티>에서 조지 클루니는 샌드라 불럭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줄을 끊는다. <인터스텔라>에서 매튜 매커너헤이는 앤 해서웨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우주선을 본체에서 분리시킨다. 기사도 정신의 확산을 위한 교육적 목적일까, 아니면 멋진 매력남들을 우주에 남겨둠으로써 관객의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는 영화적 전략일까. 내 생각엔 ‘남자들은 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남녀의 차이에 대한 뛰어난 보고서인 오기 오가스와 사이 가담의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에는 이런 비교가 나온다.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감정적인 상황을 더 많이 반추하고 나쁜 감정이나 부정적인 인생 경험에 대한 기억을 더 자주 떠올린다고 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감정적인 기억을 떠올리는 속도가 빠르며, 생생하고 강렬하게 그때의 감정을 기술한다. 여자들은 신상에 대해 월등한 기억력을 갖고 있다.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더 세세하게 기억을 하며 추억에 대한 서사도 더 길다.”
대부분 공감할 만한 분석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체로 그렇다. 남자들은 잘 잊어버리고, 추억은 여자들에게만 있다. 내가 시나리오작가였더라도 기억하는 사람을 여자로 하고, 사라지는 사람을 남자로 했을 것 같다. 반대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살아 돌아오는 게 불가능한 우주에서의 이별이라면 (흠, <인터스텔라>는…) 더욱 그렇다.
남자와 여자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더 있다. 정보 알선 사이트의 하위 카테고리 중에서 ‘미스드 커넥션’(Missed Connection)이라는 코너는 서로 만난 적이 있거나 ‘썸’을 탔거나 끌렸지만 갑작스런 사정 때문에 연락이 끊어진 남녀가 메시지를 남기는 곳이다. 남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문구는 “찾습니다”였다. 그렇다면 여자들이 가장 많이 쓴 문구는? “당신이 그리워요”다. 남자들에게는 다시 만나야 한다는 목적이 중요하고, 여자들은 현재의 상태에서 과거를 추억한다. 무척 다른 동물이 아닐 수 없다. (일반화의 오류가 살짝 있긴 하겠지만) 남자들은 여자들을 찾을 때 흥분하고, 여자와 함께 있을 때 긴장하고, 여자들이 사라지고 나면 방향을 잃은 불나방처럼 멍청해지는 것 같다. 장진 감독의 <킬러들의 수다>도 그랬고, <덤 앤 더머>나 윌 페렐의 영화들도 대부분 그랬다. 남자들끼리 모였는데 멍청하지 않다면 그건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영화인 셈이다. 남자인 내가 보장하는데, 영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 본 정용택 감독의 <파티51>이라는 다큐멘터리영화 역시 백치미 가득한 남자들이 단체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사실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영화 <보이후드>와 소년의 자위행위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다룬(이런 내용이었던 거 맞아?) 지난 칼럼의 배경음악으로 추천하려고 했던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내숭고환 자위행위>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제목 때문에 깔깔거리며 웃다가 (음, 내숭으로 가득 찬 고환이란 어떤 고환인 것일까, 숭고한 고환인 것일까) 다 듣고나서는 어쩐지 뭉클해지기도 했던 노래라서 곡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권하고 싶었는데 (흐흐, 청소년 관람불가다) 더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파티51>에 ‘한받’(a.k.a. 야마가타 트윅스터)이 주요 등장인물로 나온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홍대 앞 칼국숫집 ‘두리반’에서 성장해가는 여러 뮤지션들의 삶과 음악에 대한 다큐멘터리인데, 예상과 달리 비장하지 않고 ‘잉여스러움’도 충만한 데다 ‘한받’, ‘밤섬해적단’, ‘회기동 단편선’, ‘하헌진’ 등 새로운 세대의 뮤지션을 접할 수도 있다.
영화 속에는 한받이 일본 도쿄의 시모키타자와(일본의 홍대 같은 곳이다)에서 게릴라 공연을 펼치는 장면이 나온다. 수많은 갤러리를 이끌고 춤을 추고 있는 그의 모습을 영화에서 만나니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내숭고환 자위행위>의 가사는 이렇다. “집안에만 처박혀/ 방구석에 처박혀/ 내 가슴은 답답혀/ 숨 못 쉬니 숨막혀/ 허구한 날 처박혀/ 빈속에다 술 마셔/ 밥 먹다가 목 막혀/ 울먹이다 열 받쳐/ 내숭고환 자위행위.” 짧고 단순한 가사인데도 이상하게 마음 깊은 곳을 찌른다. 한 청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방구석에 처박혀 빈속에다 술 마시고 울먹이다 열 받친’ 주인공을 한받 자신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 그렇게 예술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에요) 내숭적이었던 고환이 드디어 거리에 뛰쳐나가 일본의 도쿄 한복판을 휘젓고 다니는 것 같아서 속이 후련하기까지 했다. 한받은 ‘내숭’과 ‘고환’과 ‘자위행위’를 끊어서 말할 때의 쾌감이 좋아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자위행위’가 숭고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는 성적인 ‘자위행위’뿐 아니라 정신적인 자위행위, 규칙적인 자위행위가 반드시 필요하다.
회기동 단편선의 노래 중에서 <백치들>의 가사도 무척 공감이 간다. “모텔에 누워서, 생각이란 걸 해봤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따위로 살아갈 텐가. 하지만 우리는 뭣도 모르는 백치들. 다시 난 누워서 탐닉에 열중했습니다. (중략)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뭣도 모르는 백치들. 우리는 아무 쓸데없잖아. 전진 또 전진 전진. 자살은 하지 말자. 뭣도 모르는 백치들. 세계 끝까지 가보자. 전진 또 전진.” 스스로를 백치라고 말하는 이 남자들의 백치미가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영화에는 두리반에서 공연하던 뮤지션들이 ‘자립음악생산조합’의 발기문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앞장서서 무슨 일을 일으켜 시작하면서 그 취지 및 목적 따위를 적어 알리는 글’의 명칭이 ‘발기문’이어서 한받은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빅자지’라는 명칭을 만들어내고는 “빅자지, 세간의 우려와 달리 큰 자지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빅토리의 ‘빅’, 자립의 ‘자’, 땅 ‘지’, 이름하여 승리하는 자립의 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외친다. 어쩌면 조금은 유치한 말장난이고, 성적인 코드로 일부러 불편을 조장하려고 하는 태도도 살짝 마음에 걸렸지만, 어쨌거나 전진 또 전진하려는 ‘백치들’의 마음은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들은 때로 진지했고, 가끔 백치들 같았고, 자주 어린아이들 같았고, 아주 가끔 투사 같았다. (대부분) 남자들만 등장하는데도 이렇게 매력적이었던 영화는 <우린 액션배우다> 이후로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영화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등장한 뮤지션들이 모두 매력적으로 불편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들은 현실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현실을 만들어놓은 기성세대 역시 새로운 세대들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가 사이좋게 공존한다면, 말로는 좋게 들릴지 몰라도 그 사회에는 아무런 발전이 없다. 불편한 것이 있어야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낼 것이고, 불편한 제도가 있어야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지나치게 편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편한 것들을 불편해하지 않으면서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로 불편해지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돈만 아는 저질’이 되고 싶지 않아서 꿈을 좇아가는 ‘백치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