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감독 허진호 자막 영어, 한국어, 일본어 오디오 돌비 디지털 2.0 화면포맷 아나모픽 1.85:1 지역코드 0 출시사 새롬
요즘엔 우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빼면 일상적인 대화가 진행이 안 될 만큼 재미있고도 다양한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되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상황은 많이 달랐다. 우리 영화에 대한 상품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 큰 변화가 진행되던 몇년 전의 시점에 나는 미국의 한 시골 동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참신한 우리 영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개봉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려오는데 전혀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래 봤자… 아마 거품일거야…’라며 애써 궁금한 걸 ‘무시’함으로써 넘어가려 노력했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더해지는 대단한 소식에 오히려 궁금증만 더해 갔다.
그런 궁금증에 대해 은근히 열을 받은 나는 미국으로 건너오는 인편을 수소문해 최신 한국영화 20여편을 케이스까지 다 갖춘 비디오 테이프로 공수받기에 이르렀다. 그때 내게 공수돼온 비디오들 중에서, 가장 먼저 손이 간 영화가 바로 . 그러나 너무 큰 기대를 해서였는지, 막상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느린 템포의 멜로영화라 신선하긴 한데 조금 지루하다’라는 자체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얼마 전 출시된 DVD를 본 뒤에, 나는 당시 나의 평가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석규의 자는 모습으로부터 시작되는 자연광의 부드러움이 화면 위에 생생하게 살아나면서,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안정된 색감을 유지하고 있는 이 영화는, 분명 내가 2년 전에 봤던 그 영화와 달랐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이유를 꼽으라면 원본의 네거필름에서 바로 텔레시네를 했기 때문에, 비디오와 달리 필름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날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허술한 원본필름의 보관상태를 반영하듯 가끔 잡티가 보여 혀를 차게 만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서플먼트에 담겨진 허진호 감독의 나지막한 음성해설로 대표되는 이 따뜻한 느낌은 DVD 전체에서 풍요롭게 뿜어져나오며 잔잔한 즐거움을 새록새록 선사한다. 웃겨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배우 혹은 제작진이 음성해설의 중요한 의미를 계속 방해하는 식의 서플먼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DVD는, DVD가 뭔가 조용히 집중하고 음미할 만한 영화에 대해서도 상당히 좋은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하나의 실질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DVD에는 국내 모 케이블 TV에서 방영된 50여분짜리 제작다큐멘터리와 O.S.T(상당량의 한정판에 한해서)까지 들어 있어 일본과 중국에서 이미 출시된 타이틀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