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상남자’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의 계시를 받고 대홍수로부터 세상을 구할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 위대한 철학자이자 과학자이기도 한 슈퍼맨의 아버지 조엘을 모두 연기한 남자. 러셀 크로는 뭔가 ‘세상의 근원’과도 같은 남자다. 거기에 더해 <글래디에이터>(2000)의 막시무스 장군까지 떠올려보면 이른바 할리우드 남자배우 중 그야말로 ‘끝’인 배우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도착하는 공항에서부터 ‘귀요미’ 브이자를 그려 보인 그를 향해 ‘러요미’라는 별명마저 붙었다. TV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에서 그를 ‘세계 어디를 가나 싸우는 남자’로 묘사할 정도였던, 터프하고 과격한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지나칠 정도로 후덕하고 마음씨 좋은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장편 데뷔작인 <워터 디바이너>의 배우 겸 감독 자격으로 인터뷰 자리에 마주한 그는 실로 진지했다. 하나의 질문에 꽂히면 심지어 통역사가 메모하기 벅찰 정도로 기나긴 답변을 쏟아냈다. <워터 디바이너>를 함께했던 배우 제이 코트니가 “이미 10편 정도 연출해 본 감독 같았다”고 묘사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워터 디바이너>는 가족을 모두 잃은 한 남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갈리폴리 전투로 세 아들을 모두 잃은 코너(러셀 크로)는 아내마저 슬픔에 잠겨 스스로 목숨을 끊자, 절망만을 안은 채 아들들의 시신을 찾아 호주에서 1만4천km 떨어진 낯선 땅 터키로 향한다. 아들 모두 아버지의 권유로 인해 머나먼 터키로 향했기에 그 상실감은 어마어마했던 것. 그렇게 전운이 채 가시지 않은 적진인 터키에 다다른 그는 한 꼬마의 손에 이끌려 숙소를 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 아이의 엄마이자 갈리폴리 전투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아이셰(올가 쿠릴렌코)의 증오심 가득한 시선과 마주하게 된다. 이후 아무런 정보도 없이 아들의 시신을 찾아 나선 그는 여전히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현장에서, 아들들의 적으로 싸웠던 터키 장군(일마즈 에르도간)을 만나 그 생사에 대한 단서를 찾게 된다.
영화는 호주의 대지에서 시작하는 첫 장면부터 인상적이다. ‘워터 디바이너’란 탐사봉을 들고 수맥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일컫는데, 그 탐사봉을 들고 기어코 우물을 찾아내는 코너의 모습은 신비롭고 상징적이며 또한 운명적이다. 그가 아들들의 흔적을 찾아낼 것이라는 계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느덧 쉰살이 되어 새로운 예술의 길을 모색하는 그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러셀 크로의 아버지는 워터 디바이너로 일했다고 한다. “광활한 호주에서는 실제로 워터 디바이너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아버지는 어디 가서 그런 얘기는 하지 말라고 하시는데(웃음), 실제로 어릴 때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 살 적에도 아버지는 파이프에 누수가 생긴 곳도 척척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그처럼 몸에 뭔가 전류가 흐르는 사람이었는지 아버지가 시계를 차면 그 시계가 가지 않았다. 하도 신기해서 왜 그런지 물었더니 ‘비싼 시계는 아무리 오래 차도 안 멈춘다’고 하셨다. 그날 이후 성공한 배우가 되어 아버지에게 비싼 시계를 사주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웃음)” 더불어 수맥을 찾는 장면은 어떤 ‘직관’에 대한 믿음이라고 했다. “난 살면서 언제나 직관이라는 마법의 세계의 신봉자였다. 반드시 아들의 시체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직관이 코너를 움직이게 만든다. 더불어 그 직관은 예술가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이후 코너는 그 직관의 힘을 믿고 터키로 향한다.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1차 세계대전의 갈리폴리 전투는, 당시 영국과 독일 사이의 전투에서 영국 편이었던 호주가 독일 편을 들고 있는 터키의 갈리폴리 반도를 침공했던 일이다. 역시 호주 출신 피터 위어 감독, 멜 깁슨 주연 <갈리폴리>(1981)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런데 적어도 10년 전의 러셀 크로였다면 여기서 전장을 누비는 군인으로 등장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그는 적당히 배가 나오고 왕년의 활력을 잃어버린 아버지로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의 러셀 크로를 만든 출세작이나 다름없는 <글래디에이터>에서도 막시무스는 전쟁의 공로로 인한 그 어떤 포상과 벼슬도 바라지 않고 그저 아내의 머리처럼 검은 흙에서 낮에는 허브향, 밤에는 재스민향이 나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아버지였다. <워터 디바이너>의 코너도 아들들의 흔적을 찾아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거기에 더해 <신데렐라맨>(2005)에서 대공황 시기의 아버지 복서, <노아>(2014)에서 말썽 많은 가족을 이끌던 노아의 모습은 또 어떤가. 지금껏 서로 다른 모습의 아버지를 연기해왔던 그의 이력이 만개한 지점이 바로 <워터 디바이너>일 것이다. 코너는 세 아들을 전쟁터에 내보낸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반성한다.
그와 같은 반성적인 시선은 감독 러셀 크로가 거의 강박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균형감’으로도 드러난다. 세 아들의 비참한 죽음의 반대편에서 호주가 결국 ‘침략군’이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의 평화적인 연대를 도모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워터 디바이너>는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당시 ‘형편없는 도시’라며 불평했던 코너가 한 터키 장군을 만나 우정을 쌓아가는 로드무비라 말할 수도 있다. 바로 거기에 감독 러셀 크로의 성숙한 시선이 담긴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4월25일이 안작(Anzac) 데이로 당시 전투에서 숨진 참전용사를 추도하는 공휴일이다. 하지만 반대편 터키군은 얼마나 죽었고 어떤 큰 상처를 입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이번 영화를 위해 자료조사차 터키를 찾았을 때 이스탄불의 한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그 학교의 시계가 멈춰져 있었는데, 바로 갈리폴리 전투 때부터 멈춘 것이라 했다. 전쟁이 나자 군대에서 그 학교 학생들을 강제적으로 몽땅 차출해서 나간 뒤로 학교는 텅 비고 시계도 멈췄다는 거였다. 일방적으로 침공을 당한 나라에서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10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관점을 던질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워터 디바이너>가 호주에서 크게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다. (웃음)”
인터뷰 내내 러셀 크로는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의 영화를 설명했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혀 미진한 부분이 없게끔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렇게 자신의 영화가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무척 궁금해했다. 물론 배우로서 여전히 재미난 일들을 찾고 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최근 힙합 그룹인 우탱 클랜의 르자가 직접 연출한 감독 데뷔작 <강철주먹의 사나이>(2012)에 괴상한 킬러로 출연하기도 했다. “우탱 클랜의 르자는 <아메리칸 갱스터>(2007) 촬영 당시 배우로 만나 친해졌는데, 우연히 맥주를 한잔하던 중 그런 유의 무술영화를 연출하고 싶다고 했고 내게 출연을 부탁했다. 흔쾌히 승낙하긴 했지만 실제로 만들 줄은 몰랐다. (웃음) 그래도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너무 웃겨서 정말 즐겁게 작업했다.” 말하자면 그는 배우로서나 감독으로서나 더 넓은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건 그는 올해 안에 가브리엘 무치노의 <아버지와 딸>, 셰인 블랙의 <나이스 가이>를 통해 한동안 배우로서 우리 곁을 찾아올 예정이다.
Magic hour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지
감독 데뷔하는 배우의 경우, 앞서 많은 작품을 함께한 감독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러셀 크로의 경우 <글래디에이터>는 물론 <바디 오브 라이즈>(2008), <로빈 후드>(2010) 등을 함께한 리들리 스콧으로부터 가장 많이 배웠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리들리 스콧과 대화를 나눌 때면, 화가 나서 싸우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웃음) 우리 두 사람은 언제나 최고의 효율성을 얻기 위해 직설적으로 토론하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가령 <바디 오브 라이즈>를 보면, 집에서 7분 동안 혼자 전화 통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총 3컷이다. 건물 밖에서 통화하다가 안으로 들어오고, 문을 통과하며 계속 통화하고, 다시 테이블을 거쳐 다른 문으로 나간다. 감독과 치밀하게 동선과 카메라 위치를 체크하고는 그 장면을 1시간 반 만에 다 촬영했다. 그다음 뭘 촬영해야 하냐고 했더니 다른 스탭들이 그외 준비한 세팅이 없다고 했다. 하루 종일 그 장면만 찍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웃음) 스콧과 함께 일하며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결코 ‘불가능한 촬영’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