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석윤] 눈앞의 것들에 충실하기
2015-02-18
글 : 송경원
사진 : 오계옥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 김석윤 감독

면접을 볼 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을 하면 둘 다 하면 안 되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다. 틀을 깨면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답하면서도 왜 틀을 깨면 안 될까 스스로 반문한다.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이하 <조선명탐정2>)의 김석윤 감독은 영화를 들고 대중을 찾을 땐 감독이지만 평소 대부분의 시간은 JTBC 제작 PD로 지낸다. 그에게 감독이라고 불리고 싶은지, 아니면 PD라고 불러야 할지 묻자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선택의 문제도 아닐뿐더러 직업이라는 틀로 자신이 하는 작업을 규정짓고 싶지 않다는 대답에 실수를 깨닫는다. 우리는 종종 타이틀에 가려서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중요한 건 직업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가다. 김석윤 감독이 방송, 영화 두 가지 분야를 성공적으로 병행할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이하 <올미다>)를 극장판으로 만들었던 그가 다음 선택한 영화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하 <조선명탐정>)이었다. 다들 의외의 선택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4년 후 전작의 흥행에 힘입어 <조선명탐정2>로 돌아왔다. 이번엔 당연한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석윤 감독은 그때도 지금도 그저 흥미로운 선택,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골랐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새 영화를 세편 찍었다. 이제는 중견감독이라 불러도 될 것 같다.

=편수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직업 자체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니 그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영화를 만들 땐 영화적인 것에 충실한 것처럼 어떤 플랫폼을 접하느냐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려고 한다. 가령 모바일 콘텐츠를 만든다면 또 거기에 적합한 방식을 고민한다. 영화인으로서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는 것 정도다. 여전히 방송에 비하면 낯설지만. (웃음)

-스스로 정의하는 ‘영화적인 것’이란 어떤 걸 말하는지.

=단순하게는 유료와 무료의 차이. 돈을 내고 관람을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하는 만큼 적어도 2시간 동안은 즐기다 갈 수 있도록 하고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내용, 형식, 제작기법 모두 방송과는 다르지만 근본적으론 목적의 차이다. 기술적으로는 큰 스크린에서 봐야 하니까 영상, 사운드 등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쓴다. 포스트 프로덕션에 좀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도 다르고.

-<올미다> 다음 4년 후 <조선명탐정>이 나왔고 또 그로부터 4년 후 <조선명탐정2>로 돌아왔다. 작품 사이 공백이 제법 긴 편인데.

=주위에선 월드컵이라고 그러더라. (웃음)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딱히 의식하는 것도 없고. 그저 내가 만들고 싶은, 만들 수 있겠다는 이야기들과 딱 그 정도의 간격으로 만났다. 공백이라곤 하지만 4년 내내 영화에 매달려 있진 않다. 그동안 <조선명탐정2>를 실제로 손에 잡은 건 지지난해부터다. 그간 머릿속에만 있던 걸 구체화해나가다가 2013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 속도가 더딘 편은 아닌데 8개월 정도는 시나리오를 만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조선명탐정> 이후 KBS에서 JTBC로 옮겼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내 연차가 이제는 현장이 아니라 데스크를 볼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현장에 서 손을 놓고 싶지 않더라. 마침 만들었던 <조선명탐정>이 꽤 잘되기도 했고, 여러 가지로 현장에 대한 욕심과 갈증이 있었다. JTBC로 옮긴 제일 큰 이유는 현역으로 연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가자마자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를 만들고 나름 바쁘게 지냈다. 개국과 동시에 방송을 시작했는데 진화된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청담동 살아요>는 애착이 많이 간다.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어 다양한 시도를 했고 사소하나마 발전도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시청률은 잘 안 나와서 안타깝다.

-<조선명탐정>은 원작이 있었다. 2편은 완전 새롭게 시작한 이야기인가.

=2편을 만든다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만들고 싶었다. 1편 때는 원작 덕분에 수월한 부분도 있었지만 오락물로 전환하면서 크고 작은 난항도 있었다.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힘든 구조랄까, 각색 과정에서 다르게 뻗어나가려는 이야기를 하나로 수습하려다 보니 휴머니티를 강조한 라인이 날아가서 아쉬웠다. 이번에는 그걸 무조건 살리고 싶었다.

-1편을 만들 때부터 차기작을 만들려는 구상이 있었나.

=솔직히 만드는 입장에서 속편은 재미없는 일이다. <올미다> 때도 속편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땐 2편이 가능할까, 그리고 꼭 만들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 <올미다> 같은 칙릿류 소설이나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서 2편을 만드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조선명탐정>은 경우가 달랐다. 일단 캐릭터가 너무 좋다. 캐릭터는 이어가되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명민, 오달수 두 배우의 호흡만 가지고도 다양한 코미디적 상황이 나온다. 배우들과의 작업 자체가 즐겁기도 했고. 아마 시리즈가 안 됐으면 아쉬웠을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조선명탐정>은 성공한 시리즈가 될 요소가 충분하다. 방송도 하고 있는 만큼 TV시리즈처럼 다른 플랫폼으로의 확장은 고민해본 적 없나.

=사실 생각은 많이 해봤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지만 무엇보다 대본 문제가 가장 크다. 10화 정도의 시리즈물로 기획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에 걸맞은 대본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약간 회의적이다. 장르적으로 위험요소도 적지 않고. 일단 장기적으로 가져갈 만한 추리물의 아이디어를 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타이틀만 살려서 변주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김명민, 오달수 이외에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맡는 건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 눈앞에 해야 할 일부터 하는 스타일이라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

-추리의 밀도를 이어간다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간다. 이 영화도 제목은 조선‘명탐정’이지만 추리보다는 웃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1편 때도 그랬지만 추리와 웃음의 균형을 맞추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추리가 완벽하게 얼개가 짜이면 역설적으로 코미디가 개입할 여지가 줄어든다. 어떨 땐 불친절하다는 지적을 받다가도 다른 쪽에서 지나치게 설명적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어떤 정보를 주고 어떤 정보를 감출지 수위 조절하는 게 까다롭다. 결국 추리 장르의 전문가도 아닌데 너무 고민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얼개만 짜고 나머지는 강점인 캐릭터로 부딪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만들 수 있는 최선을 만들자는 모토다.

-두 주연배우의 호흡이 그만큼 중요한 영화인데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사실 예상한 케미스트리는 아니다. 1편 땐 시나리오 이상만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로 잘 맞을 줄은 몰랐다. 두 사람이 약간 다른 게 더 잘 맞는 것 같다. 김명민은 바른 생활 사나이인데 엉뚱한 면이 있고 오달수는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서로 보완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함께하다보니 오래된 부부처럼 점점 사랑스러워지기도 하고, 서로 진짜 사랑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웃음)

-영화에 현장의 생생한 순간들이 잘 살아 있다. 현장에서 애드리브도 많았을 것 같은데.

=원래 애드리브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개그콘서트> 연출할 때도 웃음의 기본은 철저한 약속이었다. 한데 이번 영화에서는 애드리브가 좋으면 굳이 다시 가지 않았다. 촬영이 생각보다 수월하고 빨랐는데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걸 찍어 놓은 첫 테이크가 제일 좋은 경우가 많았다. 테이크 하나만 찍고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 편집할 때 고생한다고 좀더 찍어두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시 찍어봐야 그런 흥은 안 나온다. 기술적인 부분이 나아질 순 있어도 대부분은 첫 테이크의 살아 숨쉬는 연기가 최고다. 캐릭터가 확실히 설정된 상태고 둘의 호흡에 대한 자신이 있으니까 믿고 맡긴 부분이 많다. 오히려 내가 현장에서 잘 웃는 편인데 너무 웃어서 NG가 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일단 현장에서 배우들이 지치는 게 보기 싫기도 하고 우리가 즐거워야 보는 사람도 즐겁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1편에 비해 세트 디자인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화려한 왜관, 용왕섬 등 시선을 빼앗을 만한 장면이 제법 있다.

=단순히 스케일을 키운다는 게 확장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익히 보던 그림 말고 색다른 걸 보여주고 싶었다. 왜관의 경우 ‘대단히 예쁜 기방, 생경한 볼거리’라는 컨셉에 충실했다. 용왕섬 세트는 액션 어드벤처 영화다운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다. 액션 시퀀스와도 연계되어야 했기에 마지막까지 고심했다. 추상적일 수도 있는 요구를 미술감독과 미술팀이 고민해서 잘 뽑아줘 고마울 따름이다.

-배우들은 이번에도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린다. (웃음) 더불어 ‘달린다’는 속도감을 주기 위해 쓰인 다양한 카메라 기법도 인상적이다.

=사극인데 말을 쓰지 않은 이유는 어설픈 말 달리기가 싫어서다. 대신 당시 운송수단이라면 그저 걷는 거니까 달리는 것 자체를 자동차 액션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 여러 가지 시도도 많이 했고 버린 장면도 많다. 역동성을 담아내기 위해 제일 고민한 건 행글라이더 신이다. 1977년 영화 <7인의 독수리>에서 접근 불가능한 요새에 고공침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걸 해보고 싶었다. 완성도 면에서 한번 크게 낭패를 본 적이 있어 CG는 웬만해선 쓰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리 잘해도 성형수술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도 어울리는 절벽을 찾아 군산 선유도까지 내려갔다. 사실 사고가 많이 날 수 있는 현장이었는데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마쳤다. 특히 날씨 운이 정말 좋았다.

-장면 전환이 갑작스러워 어색하다는 평가도 있던데 전체적인 극의 전개에는 만족하나.

=간혹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순 있다. 상영시간에 대해 여러 버전으로 고민했는데 최종적으로 지금의 버전으로 확정됐다. 장면의 끝에 충분히 여유를 주지 못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다시 찍는다고 지금보다 더 나은 버전이 나올 것 같진 않다. 현실적인 요소를 감안했을 때 지금이 최선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완성했다. 그런 확신도 없이 극장에서 관객을 만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번에는 처음부터 드라마적인 부분에도 공을 들였다. 예를 들면 사라진 소녀들의 사연을 제대로 살리고 싶었다.

-확실히 1편에 비해 드라마적으로 강해지고 전체적으로 매끄럽다.

=엔딩에 흐르는 노래 가사를 기억하나?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찡하다. 하늘나라에 먼저 간 아이가 남아 있는 부모에게 보내는 노래다. 영화의 핵심 드라마이기도 하다. 코믹 사극이라고 시대와 단절될 순 없다. 오히려 훨씬 접점을 넓힐 여지가 있다. 명탐정이라는 게 결국 그 시대의 영웅 아닌가. 억울한 민초들의 한을 풀어주는 이야기를 영화적 장치로 풀어준다면 웃음 속에 가슴이 훈훈해지는 드라마를 충분히 녹여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흥행 여부도 중요하겠지만 <조선명탐정>은 이미 성공적으로 안착한 시리즈라는 느낌이 든다. 엔딩 장면은 속편을 예고하는 것도 같다. 혹시 차기작을 이미 구상 중인가. 아니면 또 4년 후에나 보게 될까.

=글쎄. (웃음) 엔딩 에피소드는 사실 속편을 이런 이야기로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냈던 아이디어였는데 영화로 만들긴 어려울 것 같아 짧게 에필로그처럼 활용해봤다. <조선명탐정>은 상황과 배경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구성될 수 있는 소재인 만큼 속편은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말했다시피 눈앞에 놓인,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한 편이다. 지금은 올해 중반쯤 드라마를 새로 시작할 계획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