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잘생긴 총각, 카드는 안 받아?
2015-02-19
글 : 김정원 (자유기고가)
<만추> <나비> <바람의 전설> 등에서 살펴본 제비의 도(道)
<만추>

전셋돈 급등의 암운이 드리운 2014년 서울, 지인의 대학 동기가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게 됐다고 했다. 그는 직업은 있지만 소득은 없는 예술가다. 그런데 어떻게? 그 아파트는 지방에서 일하는 그의 애인이 사둔 집이었다. “그럼 결혼하나?” “여자는 그렇게 알고 있지.” 그렇다는 건…. “여자가 눈치채고 쫓아낼 때까지 버틸 거래.” 그는 그 대학 전설의 카사노바, 가출해서 술집 여자에게 얹혀살았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껏 등쳐먹은 여자가 한둘이 아니지만, 단 한번도 송사에 휘말린 적이 없다는 순백의 제비였던 것이다.

얼마나 잘생긴 남자인지 궁금했다. 내줄 집은 고사하고 나 살 집도 없지만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고 아우성치는 우리에게 그녀는 말했다. “삼식이 닮았어.” 삼식이, 표준어로는 삼세기. 못생기고 바보 같다는 놀림말로 쓰이는 삼식이가 여기서 유래했다. 머리는 위아래로 납작한 편이며, 아랫면은 편평하고 넓다. 눈은 매우 크며 두눈 사이는 깊게 파여 있고, 눈의 등쪽에는 한개의 긴 수염 모양의 촉수가 나 있다(출처: <두산백과사전>). “그게 사람의 얼굴이냐.” “사람 아니고 삼식이라니까.” 그러니까 왠지 더 보고 싶은데?

우리는 다시 한번 아우성을 쳤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삼식이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거냐고, 가르쳐달라고. 그녀의 답은 간단했다. “헌신적이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우리는 말을 잊었다. 불혹을 앞에 둔 중년의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삼식이의 헌신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떤 도(道)를 깨우쳐야 여자 삼식이가 되어 남자를 등쳐먹으면서 살 수 있을까, 그 제비의 도를 미치도록 알고 싶었다.

제비의 역사는 유구하다. 카바레가 급증하여 200여개에 달했다는 1980년대에 제비족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게 되었지만, 해방 직후에 이미 댄스홀을 누비며 부인네들이 “남편을 떼버리고 집도 팔고 옷도 팔고” 하게 만들었던 젊은 남자들이 등장했고, 1968년에는 그걸 직업으로 삼은 건달패가 18명이나 일제 검거되어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서울의 밤문화>).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 제비의 기술과 분야를 세분하는 전문용어 또한 숱하게 존재했다. 그 전통은 21세기가 되어도 사라지지 않아 현대사회의 곳곳에서 발견되니 영화 <만추>를 보다가 나는 외쳤던 것이다, 나, 남수다!

<나비>

과연 바다를 건너는 철새답게 미국까지 날아간 한국 제비 훈(현빈)은 차비가 모자라자 버스 승객의 관상을 훑은 다음 뭔가 감이 좋은 상(相)을 지닌 애나(탕웨이)를 점찍어 초면에 30달러를 빌린다.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변명하면서. 그게 남수다. 20여년을 제비로 살면서 1천여명의 여자를 후리다가 1990년대 중반에 자서전 <뻘> 시리즈를 출간한 한상훈에 따르면 남수는 본격적인 제비로 나서기 전의 첫걸음이다.

그렇다면 남수란 무엇인가. 아까 말했다, 지갑 잃어버렸다고 사기치면서 여자들한테 차비 빌리는 거. 한상훈에 따르면 “잘생긴 총각이 어려움에 처해 도움을 청하는데 안 도와줄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나라도 현빈이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돈 좀 달라고 하면 당황해서라도 몽땅 털어주겠다. 총각, 카드는 안 받아요? 하고. 그런데 그게 돈이 될까? 한상훈이 남수로 올린 첫 수입은 2만원이었는데 당시 그의 한달 방세가 5만원이었다.

하지만 남수만 해선 기껏해야 방세밖에 벌 수 없다. 소년은 야망을 가져야 하고 청년을 꿈을 가져야 하니 남수는 언젠가 진짜 제비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지를 불사른다. 폼나게 살겠다면서 애인 버리고 서울로 상경한 <나비>의 시골 청년 민재(김민종)가 깨달은 바도 바로 그것이다. 물정 모르던 시절엔 깡패가 최고인 줄 알고 김용건 형님 밑으로 들어갔지만 큰물에서 놀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제대로 한건 하고 싶다면서 그가 밝힌 포부는 “형님, 저는 제비가 되겠습니다”. 우리 민재, 장사하거나 취직해서 돈 벌 생각은 꿈에도 안 하는구나.

그렇게 주먹계를 떠난 그는 1980년대라는 시대적인 제약을 극복하고 서비스업으로서의 제비, 인간적인 제비를 표방하는 선진적인 마케팅 전략하에 무도장으로 진출하지만, 기껏 얻어걸린 먹이가 5년 전에 버리고 떠난 옛 애인, 그 군부 독재 시절 장군의 애인. 우리 민재는 되는 일도 없지. 춤이 안 돼서 그런가.

<내 아내의 모든 것>

그래, 춤이다. 다른 나라 제비와 다른 한국 제비만의 경쟁력이라면 방바닥에 앉아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천리를 찍고 도는 춤솜씨다(삼식이가 춤을 잘 추는지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하지만 카바레에서 사모님 허리를 안고 돈다 하여 무조건 제비냐고 묻는다면 듣는 제비 서운하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에게서 받은 이름에 이미 바람의 기운이 충만한 <바람의 전설>의 풍식(이성재)이 주장하기로, 그는 예술가다, 무도(舞蹈) 예술가. 5년 동안 전국을 돌며 숨은 고수를 찾아 무도를 연마하고 돌아온 그가 죄를 지었다면 더불어 한곡 추고 싶은 여인들이 자발적으로 들고 오는 통장을, 아니 순수한 마음을 거절 못한 것이 죄랄밖에.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돈 많은 여자는 많아졌으며 세상은 넓어졌다. 현빈의 외모, 이성재의 댄스, 김민종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르면) 인간적인 서비스로도 장악하지 못한 틈새시장이 어디엔가 존재할 터. 사람에겐 대비가 필요하다. 겉만 봐선 도무지 카사노바 같지 않지만 바로 그 덕분에 허를 찌르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기(류승룡)를 보라. 불어, 젖 짜기, 스테인드글라스 공예에 샌드애니메이션까지, 그 정도면 일시불로 돈 받고 제비짓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살겠지만 그 모든 기예를 동원하며 여자 후리기에 전념한다. 30년 전 한상훈씨도 제비의 한길을 가고자 독서와 공연, 전시에 프로야구까지 섭렵했다지.

여기에 이르고 보니 역시 사람은 한길을 걸어야 한다. 나는 딛고 온 곳마다 우물 자리만 표시했지 제대로 파본 적이 한번이 없으니 불혹에 가까운 일생, 헛되기 그지없구나. 지금이라도 삼식이를 찾아가 한수 가르침을 청해야겠다. 그리고 사교댄스도 배워야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새봄은 스텝을 밟으면서 맞이할 테야.

블루오션을 찾아서

선진적인 제비가 되기 위한 두세 가지 비기

<내 아내의 모든 것>

선입견을 버려라

몇년 전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고백을 들었다. 독신으로 불혹을 넘긴 선배가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거였다. “내가 여자들이 딱 싫어하는 타입이잖아, 키 작고 말 많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걸 누가 믿겠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결혼했고 나는 싱글이지, 에잇, 더러운 세상. 이 더러운 세상의 법칙엔 예외가 있다. 여자들이 키 작고 말 많은 남자만큼이나 싫어하는 남자는 느끼한 남자지만, 그 느끼함이 일가(一家)를 이루면 조지 클루니가 되거나, 하다못해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류승룡이라도 된다. 제비들이여, 수요는 적지만 경쟁자도 적은 블루오션이 그대들 눈앞에 있다.

<바람의 전설>

희소성을 확보하라

멀쩡하게 잘 살던 <바람의 전설>의 풍식을 무도계로 인도하는 선배 제비 만수(김수로)는 설파한다, 흔한 블루스나 지르박으로는 눈에 띌 수 없다, 자이브를 추어라. <슈퍼스타K>의 윤종신도 말하지 않는가, 희소성이 중요하다고. 만수는 여기에 덧붙여 춤을 출 때면 주머니에 호두를 넣고 여성의 특수 부위를 자극하라는 비기를 전수하지만, 과유불급, 자칫하다가는 무도예술가가 아니라 제비로 오해받는 수가 있다..

<S러버>

스텝을 밟아라

춤에만 스텝이 있는 것이 아니다. 후리고 등쳐먹는 기술에도 스텝은 필요하다. 열여섯살이 많은 데미 무어와 예쁜 사랑을 했지만 덕분에 할리우드의 놀림감이 됐던 애시튼 커처가 무슨 생각에서 연상의 변호사한테 빌붙어 사는 제비로 출연했는지 모를 영화 <S러버>에 따르면 평소에 점수를 쌓아둬야 성공한 제비가 될 수 있다. 꽃다발은 1점, 직접 만든 저녁은 3점, 섹스한 다음날엔 반드시 전화를 걸어 젖은 땅도 다시 굳히기. 땀 흘리지 않고 얻어지는 열매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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