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장은 엄청나게 좋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회사에 다닌 적이 있다. (물론 예감은 불길했다. 무슨 좋은 사장이 등산복을 차려입고 너희는 일해라 나는 이따 놀러간다는 자세로 출근을 한단 말인가.) 몇주 뒤, 사표를 냈다는 동료가 고백했다, 사실 우린 전부 노비야. (몰랐던 사실도 아니지만.)
30대 후반이었던 그녀는 미국 사는 사장 친척이 서울에 왔다가 짐이 무거워 일단 호텔에 들어갔으니 그 짐을 사장 집으로 옮겨놓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바퀴 달린 가방도 무겁다며 호텔로 직행한 친척이라면 그 옛날 아메리칸드림 시절에 이민 떠난 어르신이라도 되는 건가. 그녀는 기분이 나빴지만 노인 공경의 마음을 다잡으며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웃통을 벗고 젖은 머리를 탈탈 터는 스무살 정도의 건장한 젊은이. 오, 이게 무슨 횡재인가! 사장님, 감사합니다! 아니, 이게 아니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친척은 조기 유학을 떠난 사장의 조카였다. 내일모레가 불혹인 노구를 이끌고 팔팔한 젊은이 대신 짐을 나른 그녀는 마침내 잡코리아 추정 그 업계 평균 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온갖 잔심부름을 하던 5년 세월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심했다. 영감마님, 저 면천(免賤)할래요. 하나 노비의 면천이란 다른 말로 하면 실직. <노예 33개월>을 찍다가 그녀의 뒤를 쫓아 면천한 나는 “그래, <만덜레이>의 노예들이 괜히 제 발로 노예 생활한 게 아니었어” 탄식하며 노새 한 마리와 밭 한 뙈기를, 아니 반달치 월급과 퇴직금을 받아들고 노예의 도(道)를 추억하고 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영웅이었던 존 칼훈은 “노예제도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한 것으로 부도덕하지도 부자연스럽지도 않다. 그것은 불가피한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햇수로 3년에 걸친 나의 임금 노예 생활을 돌이켜보건대(그전에 임금 ‘노동자’ 생활 1X년을 이어오기는 했다) 과연 그러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럴 수가 없다. 19세기가 배경인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욕쟁이 할아범 스티븐하고 똑같은 인간을 200년이 넘게 지난 대한민국 서울에서 만나다니.
스티븐은 악명 높은 농장주 캔디(근데 이름은 귀여워) 가문을 섬기는 가내 노예로서 흑인은 저택 본관이 아닌 뒷간에서 자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노예가 노예를 부리고, 노예가 노예를 벌주고, 노예가 노예를 잡는 딜레마의 화신. 하지만 그에겐 딜레마가 아니다. 왜냐, 노예라고 다 같은 노예가 아닌 탓이다. 스티븐으로 말하자면, 조선시대로 치면 수노(首奴)에 해당하는 자로서, <조선 노비들>이라는 책은 수노란 수백이 넘는 노비를 거느린 집안에서 “대기업 이사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 설명하고 있다. 그래, 이사면 월급은 받아도 노조는 아니지.
내가 다니던 회사에도 몸은 영세기업 부장이지만 영혼만은 스티븐인 이가 있어 추노꾼 못지않은 근성을 발휘했다. 출근은 일찍, 퇴근은 늦게, 회식 자리에서 고기 추가하지 말고, 월급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사장님이 베푸는 은전이니 언제나 그분의 은혜에 감사드리자! 회사를 구석구석 누비면서 매의 눈을 빛내는 나는야 21세기 스티븐. 그 시절 나는 지각을 하거나 책상에서 졸다가 사장이 아닌, 추노꾼 스티븐에게 들켰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 그의 장부에 올랐다가 추후에 보복을 당하곤 했다.
노예제도가 얼마나 불가피한 만큼이나 자연스러운지는 영화 <만딩고>를 봐도 알 수 있다. 미국 남부의 대농장, 예쁜 여자 노예와 주인집 서방님과 그 서방님의 아내인 아씨 마님과 건장한 남자 노예가 얽힌 이 남녀상열지사는 노예를 종으로 바꾸고 미국 남부를 조선시대 한양으로 바꾸면 <사노> 같은 에로 사극하고 똑같은 이야기다. 심지어 서방님한테 데려갈 여자 노예를 다른 여자 노예들이 들통에 담가놓고 구석구석 씻기는 장면까지 거의 표절 수준으로 똑같다. 조선시대 노비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날아 자유의 나라 미국으로 도망가봤자 도긴개긴이라는 이야기. 노예로 끌려가다가 갖은 고생 끝에 자유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간 <아미스타드>의 흑인들도 마찬가지다. 고향 갔더니 마을은 이미 다른 노예 상인들이 쓸고 가서 아무도 없어 도긴개긴.
그러니 이러나저러나 노예로 살아야만 한다면 어떤 노예가 되어야 하는가. 일단은 <노예 12년>을 보면 알 수 있듯 남들이 하루에 목화 3kg을 따면 나도 그만큼은 따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복종이다. 노예주는 말 잘 듣는 노예를 원한다. (고용주 또한 말 잘 듣는 노동자를 원하니 시대가 변해봤자 다시 한번 도긴개긴.) <조선 노비들>에 의하면 조선시대 양인들은 땅을 빌리거나 일자리를 얻기가 힘들었는데 “자유로운 사람은 통제하기 힘들다는 관념 때문이었다”. 자유인가, 땅인가. 이상은 자유지만 현실은 땅이어서 조선시대 노비 인구는 한때 50%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다음은 무엇인가, 여전히 복종이다. 하지만 이번엔 적극적인 복종이다. 다른 노예들이 뙤약볕 아래 목화 따는 동안 현관 그늘 아래 주인어른과 농담을 따먹는 수노 스티븐을 보라. 이미 말을 잘 듣고 있지만 더욱 적극적으로 있는 힘껏 말을 잘 들어 노예 잡는 노예가 되면 그렇게 살 수 있다. 21세기 스티븐도 남들 일하는 사이 사장과 함께 오를 산을 찾고 맛있는 식당을 검색했지. 나도 맛있는 거 좋아하는데, 제대로 찾을 수 있는데, 사장이랑 등산은 싫지만.
옛날, 혜화문 바깥 불천이라는 냇가에는 부처가 새겨진 벽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노비 부처라 불렀다고 한다. 그 부처가 부근 노비들을 종으로 묶어놓는다는 속설이 있어 원한을 품은 노비들이 오가다 낫으로 눈을 파내곤 했다고. 부처님처럼 좋은 사람이라 칭송받는 사장에게 부처님 좋아하시네, 비웃음을 날리며 면천한 나도 있으니, 노예와 노예주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부처님이 욕보신다.
노비 중의 최고는 공노비
노예 생활에 빛을 밝히는 두세 가지 것들
아씨(또는 도련님)
오직 아씨만 바라보던 드라마 <한성별곡>에 이어 <대왕 세종>에서도 아씨를 사모하여 ‘아씨 마니아’라는 애칭을 얻은 노비 이천희.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노비 덕칠(주지훈)이 세자(이것도 주지훈)와 뒤바뀌는 계기도 아씨를 향한 일편단심. 드라마 <추노>의 언년이(이다해)도 양반을 밝혀서 도련님(이었다가 나중엔 스토커로 진화한) 대길이(장혁)에 이어 한때는 장군이었던 태하(오지호)까지 문무관을 두루 섭렵하는 밸런스를 과시한다. 아무렴, 누룽지라도 한 덩어리 얻어먹으려면 동료 노비보다는 아씨나 도련님!
영역 본능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닥터 슐츠(크리스토프 왈츠)는 아내를 찾으러 가겠다는 장고를 말리면서 말한다, 흑인을 워싱턴이나 미시시피에 혼자 보내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노예 12년>의 솔로몬이 돈 벌자는 유혹에 넘어가서 출장 갔다가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 가는 지역이 바로 거기다, 워싱턴. 인간도 동물일진대 자기 영역을 찾아야 하고 그걸 지켜야 한다. <나는 노비로소이다>에서 어느 노비는 자기가 양인이 아니라 성균관 노비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공노비가 (굶어 죽기 직전의 양인이나) 사노비보다 처지가 나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500년 뒤의 조선 땅에는 공노비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들끓었다 전해지니….
얼굴
아내를 구하러 가는 장고는 말한다, 내 아내는 밖에서 일 안 해요…. 예쁘거든요, 이 계통 노예의 단점이라면 주인과 항상 붙어 있기 때문에 탈출할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는 것. <노예 12년>의 예쁜 여자아이도 나중에 돈을 갈퀴로 긁어줄 거라며 엄마하고 함께 팔려 갈 기회를 놓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