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영화를 본 이주승은 변요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번에 대박났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예언이었다. 홍석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 7기 작품인 <소셜포비아>는 현피( ‘현실 플레이어 킬(Player Kill)’의 준말)를 소재로 한 독특한 사회파 드라마다. 영화에 대한 관심은 부산에서부터 들불처럼 퍼져나갔고,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고 주연배우 변요한과 이주승이 TV드라마 <미생>과 <피노키오>를 통해 각각 스타가 되면서 개봉 전부터 화제의 정점에 올랐다. 롤플레잉 게임 속을 누비는 듯한 몰입감과 스릴, 은근한 복선과 현실에 대한 은유는 <소셜포비아>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온라인 세상에 대한 애정과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비하인드를 홍석재 감독으로부터 들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어떤 선수에게 가해진 악플러들의 공격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실제로 악플러들이 그 선수의 집 근처 PC방까지 찾아갔다고 하더라. 사건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놀라움과 호기심, 무서움을 느꼈다. 온라인상에서 악플을 다는 것 때문에 누군가가 죽고, 은폐된 진실이 밝혀지는 상황들은 새롭게 생겨나는 어떤 현상들이다. 무엇을 어떻게 극화할지 생각하던 중에 아카데미 동기인 엄태화 감독의 <잉투기>(2013) 프로젝트 발표를 보고 아차 싶었다. 저렇게 좋은 소재를 나는 왜 못 찾았을까. 다만 나는 <잉투기>가 가지 않은 방향에 더 관심이 있었다. 국내 인디게임 <Tablua ~the Werewolves in the Village>(보드게임 <Lupus in Tabula>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사운드노벨.-편집자)에서도 모티브를 얻었다. 웹게임 <타뷸라의 늑대>를 하는 유저가 실제로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해 다음날 온라인상에 나타나지 않게 된다. 오프라인에서 그 유저를 알고 있던 다른 유저가 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사건의 실체를 추적해가는 게임이다.
-처음 제목이 <일베충>이었다는 말도 있다.
=처음 시나리오 쓸 땐 주인공들이 일베 회원이라는 설정이었다. 2012년 대선 직전, 정치 관련 기사들이 한창 올라올 때 일베가 핫하게 떠올랐다. 궁금해서 접속을 해보고 어떻게 이런 커뮤니티가 가능한 건지 호기심이 생겼다. 보통 쓰레기통이라고 하잖나. 어쩌면 다음 세대의 구성원들이 이런 아이들일 수 있겠구나, 이것 또한 상징적 지표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못 쓰겠더라.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안 됐다. 또 당시의 일베는 오프라인에 나오는 게 금기였다. 그래서 인터넷 세계에 빠진 아이들로 다시 접근했다.
-실제로 최근 트위터에서 벌어진 페미니즘 논쟁 등 ‘여혐’(여성혐오)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뜨거운 감자다. <소셜포비아>의 시작이 ‘여혐’과 ‘군대’를 키워드로 한 온라인상의 다툼이잖나.
=연출자로선 내가 만드는 이야기가 이 순간과 밀착되길 원하지만 영화에서 다뤄지는 시기와 현실의 간극을 맞추기란 어렵다. 그래서 보편적인 원형을 찾는 것 같다. ‘군대’와 ‘여혐’은 오래전부터 온라인상에서 끊이지 않는 떡밥이잖나. 오히려 난 너무 안일하게 출발한 게 아닌가 싶었다.
-각종 커뮤니티나 SNS ‘눈팅’을 웬만큼 하지 않아선 못 나올 시나리오다.
=눈팅만 많이 한다. 인터넷 서핑이란 게 다 그렇지 않나. 링크를 타고 가다보면 어느 순간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게 되고. (웃음)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그렇게 쌓아둔 즐겨찾기가 도움이 됐다.
-많은 현상과 사건이 겹쳐져 만들어진 영화다. 일관되게 지키고 싶은 지점이 있었다면.
=밖에서 보면 ‘현피’ 멤버들의 행동이 황당하게 느껴지지만 잘 보면 인간이 유사 이래 무수히 해온 일들과 다르지 않다. 무리짓고 적을 만들고 격하고 화해하고 관계를 맺고 끊는 것까지. 이들을 괴물로만 보지 말아줬으면 한다. 이들은 뉴타입이다. 뉴타입으로서의 기질을 버리지 않길 바랐다. 레나 집에 처음 갔을 때 그녀의 시신을 보고 현피 멤버들은 각자 달았던 악플부터 지우기 바쁘다. 시나리오 개발할 때 아카데미에서 이 장면이 비인간적이란 얘길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 설정을 버리고 싶진 않았다.
-죽기 전에 하드디스크는 꼭 포맷하고 가야 한다는 말도 생겼잖나. 그게 오히려 현실적이다.
=온라인 활동을 잘 안 하는 관객이라면 생경할 순 있을 거다. 연기하는 동안 배우들도 현장에서 많이 어색해했다.
-현피 멤버들이 온라인에서처럼 무슨 님, 무슨 님 하며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어색한 듯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운 듯 어색하다.
=개인적으로 장르문학, SF에 애착이 있다. ‘SF&판타지도서관’에서 어느 크리스마스이브에 <에반게리온>시리즈 전편 상영회를 연 적이 있다. 온라인으로만 활동하다가 그 오프라인 모임에 처음 가보고 특유의 느낌을 받았다. ‘이런 거였구나!’ 싶었다. (웃음)
-이주승, 변요한뿐만 아니라 BJ 양게 역의 류준열과 레나 역의 하윤경까지 각 배우들의 특장점을 잘 살린 캐스팅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 나는 아프리카TV의 BJ 철구를 레퍼런스로 삼았는데 마침 오디션을 보러온 준열씨도 BJ 철구를 보고 캐릭터를 연구했다고 하더라. 오디션장 문을 열 때부터 이미 BJ 양게는 완성돼 있었다. 교정기도 설정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웃음)윤경씨는 요한씨 학교 후배다. 주변의 추천이 있었다. 말로 누군가를 고통 주고, 고통받는 것이 무슨 느낌인지 아는 분을 캐스팅하고 싶었는데 마침 그 무렵 윤경씨가 SNS를 하다 염증을 느끼게 된 일이 있었다고 했다.
-레나가 현피 멤버들의 대화창을 보고 있을 때 그 안엔 용민(이주승)이 있다. 그때의 레나의 얼굴은 레나 노트북 웹캠에 기록되고 그 기록 영상을 나중에 용민이 본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다. 용민은 레나를 동경했던 건가.
=윤경씨 얼굴이 주승씨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용민은 레나의 분신이라고 생각했다. 동경일 수도 있고 질투일 수도 있다. 용민이 레나에게 추근거린다고 표현된 부분이 있는데 실은 연심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을 자기가 죽인 셈이 되니까 용민은 복잡했을 거다.
-SNS나 웹페이지 CG 때문에 영화가 롤플레잉 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CG 연출에 관한 고민은.
=현피 자체가 RPG에서 몹을 잡으려고 파티를 만드는 행위와 닮아 있다. 영화에선 현피의 목적지도 전부 위쪽에 있다. 보스몹을 치러 우르르 몰려갈 때 파티원들끼리 느끼는 전우애가 있다. 관객도 그런 감정을 느끼길 바랐다. 현피를 하러 가는 과정을 잘라내란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굳이 버틴 이유도 그런 연상 때문이었다. 텍스트와 온라인 TV중계 레이어가 화면에 겹치는 것도 처음부터 고집했다. 게임 레이어처럼 보이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음악도 RPG 같은 걸 원했다.
-화면 위의 수많은 텍스트들을 관객이 전부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판독 불가, 단절의 느낌을 의도했나.
=텍스트 과잉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수없이 많은 말들에 잠식당하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우리도 인터넷을 하면서 쓸데없는 말까지 다 읽으려다 피로해지곤 하잖나.
-다음 작품에서도 인터넷 세계를 다룰 건가.
=이번엔 여성 인터넷 유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거기에 아이돌 팬덤 안의 사건들을 엮으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방송 이미지와 판이하게 다른 과거가 밝혀졌던 모 아이돌 가수 사건을 시나리오로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