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의 오! 마돈나]
[한창호의 오! 마돈나] 바바리코트의 로맨티스트
2015-03-27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문정숙
<만추>

문정숙은 적대자(Antagonist)의 이미지로 주목을 받았다. 전통적인 여성, 곧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연약한 여성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는 남성들이 위험을 느끼는 여성으로 나올 때,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는 종종 남성들에게 맞섰다. 이를테면 이만희 감독의 <마의 계단>(1964)에서 배신당한 사랑에 굴복하지 않고 복수하려 할 때, 문정숙의 존재감은 더욱 빛났다. 문정숙은 낮의 태양보다는 밤의 달빛에 더 어울리는 어둠의 캐릭터로 스타 반열에 오른 흔치 않은 배우이다.

달빛의 어둠에 더 어울리는 캐릭터

문정숙은 1950년대 후반 ‘최루성’ 멜로드라마들이 양산될 때 주연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유현목 감독의 <유전의 애수>(1956), 이강천 감독의 <생명>(1958) 등의 멜로드라마에 출연했는데, 그때 이미 너무 ‘요염’해서, 순종적인 보통의 멜로드라마 역할과는 맞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여성영화인사전>, 주진숙 외 지음). 1960년대 들어 문정숙의 요염하고, 공격적인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계발되기 시작했다. 두 감독, 곧 권영순과 한형모가 문정숙의 남다른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

권영순은 이광수의 원작을 각색한 <흙>(1960)에서 문정숙을 시골의 청순한 여성(조미령)의 대립항으로 제시했다. 서울 세력가의 딸로, 건방지고 야망을 품고 있으며, 1930년대가 배경인데 위험하게도 다른 남자들을 제멋대로 만나는 여성으로 나왔다. 결말 부분에선 멜로의 공식대로 남편(김진규)의 세계 안으로 통합돼 들어가지만, 그전에 관객은 이미 남성 질서를 헤집고 돌아다닌 문정숙의 모습을 다 본 뒤였다. 남편은 일본의 고등고시에 합격한 식민지 조선의 인재인데, 더 높은 곳을 원하는 아내의 위압적인 시선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는 애완동물처럼 볼품없어 보였다. 그만큼 문정숙의 눈빛은 남성을 압도했다.

<표류도>(감독 권영순, 1960)에서 문정숙은 사생아를 낳은 여성으로 나온다. 말하자면 사회의 명령을 이미 한번 위반한 여성이다. 그는 생계를 위해 다방을 운영하는데, 미혼모에 다방 ‘마담’이라는 사실 때문에 주위로부터 늘 무시당하며 산다. 대학동창 모임에서도 따돌림당하는 것은 물론이다. 온갖 편견을 이겨내고 살인까지 저지른 뒤, 마침내 자신의 남자(김진규)와 겨우 합쳐졌을 때, 그만 병이 들어 죽고 마는 여성이다. 말하자면 관객 입장에선 동일시하기가 대단히 주저되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문정숙은 그런 비운의 여성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의 계단>의 간호사도 살인과 비운의 모티브를 가진 역할이다.

한형모 감독이 발견한 캐릭터는 문정숙의 남성성이다. 먼저 <질투>(1960)를 통해 문정숙의 동성애성을 묘사한다(필름은 분실됐다). 문정숙은 의동생을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그녀의 남편까지 질투하는 역할을 맡았다. 남성과 맞서는 역할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문정숙이 어떤 연기를 펼쳤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코미디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한형모는 <언니는 말괄량이>(1961)에서 문정숙을 유도 선수로 등장시켜 남편(김진규)을 걸핏하면 집어던지는 여장부로 만들었다. 다시 말해 한형모는 문정숙을 남자처럼 그렸다. 두 감독에 의해 계발되기 시작한 문정숙의 남다른 캐릭터는 1960년대에 이만희 감독을 만나, 더욱 발전한다.

이만희 감독과의 ‘화양연화’

문정숙은 이북 출신으로, 10대 때부터 연기수업을 받았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극단 ‘아랑’에 가입해 기성 무대에 섰다. 결혼은 그때 연극계에서 만난 배우 장일과 했다. ‘아랑’은 배우 황철이 이끌던 신생 극단이었는데, 문정숙의 언니인 문정복(훗날 북한의 인민배우가 된다), 그리고 배우 최은희 등이 단원으로 있었다. 자매 가운데 언니는 북한에서, 그리고 동생은 남한에서 스타가 된 셈이다. 영화 데뷔는 신상옥 감독의 데뷔작인 <악야>(1952)를 통해서 했다. 23살 때다.

문정숙의 경력에 큰 전환점을 맞은 것은 감독 이만희와의 만남이다(그 역도 마찬가지다). 문정숙은 이만희를 만나면서 연기가 더욱 발전한 원숙한 배우로 성장하고, 이만희도 여성심리에 눈뜨며, 특히 멜로드라마와 스릴러에 발군의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첫 만남은 1962년작 <다이얼 112를 돌려라>였고, 그 뒤 <7인의 여포로>(1965), <시장>(1965), <군번 없는 용사>(1966), <만추>(1966), <귀로>(1967), <싸리골의 신화>(1967), <여자가 고백할 때>(1969)까지 한국 영화사의 보석들을 연속해 내놓는다. 기혼자인 두 사람은 당시 연인 관계였는데, 문정숙이 이만희보다 두살 위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마치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잉그리드 버그먼 혹은 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 경력의 최고치의 작품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들과 달랐다면, 이만희와 문정숙 커플의 연장자 혹은 리더는 여성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스크린에서의 문정숙의 원숙한 이미지는 현실에서도 기시감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최고작인 <만추>는 두 사람의 관계가 많이 투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아쉽게도 필름이 분실된 바람에 지금 <만추>를 볼 수는 없지만, 이만희 감독처럼 짧은 머리에 건장한 몸을 가진 신성일의 등장이 그런 상상을 더욱 자극하는 것이다. 시간이 정해진 짧은 여정, 청년과 연상의 여인, 쫓기는 남자와 여유 있는 여성, 성적 매력을 가진 두 남녀 등 허구 속의 상황이 현실과 겹쳐 보이는 까닭이다.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만추>는 어느덧 이만희의 대표작을 넘어 한국영화 최고급의 작품으로 격상된 감이 있다. 수많은 영화인들로부터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받고 있지만, 볼 수 없으니 더욱 그리운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에 있는 177장의 <만추> 관련 사진들을 보면, 고(故) 이영일 평론가가 “한국영화가 도달한 또 하나의 높은 예술적 수준”(<한국영화전사>)이라고 평가한 찬사가 허사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특히 바바리코트 차림으로 인천 앞바다의 갯벌 주변을 거니는 두 남녀의 외로운 모습은 늦은 가을의 쌀쌀함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표현력이 발군이다. <만추>에서 문정숙은 (아마도)사형수이고, 특별휴가를 받아 잠시 밖으로 나왔는데, 그 며칠 사이에 바바리코트 하나 걸치니 영원히 기억될 사랑을 경험하는 여성이 되는 것이다. 왠지 문정숙에게는 그런 로맨틱한 원숙함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20대의 청춘이 아니라 30대에 들어 더 빛나는 배우가 됐다. 아마도 문정숙은 <만추>의 외로운 바바리코트 하나만으로도 한국 영화사에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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