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이런 건 나만 그릴 수 있다
2015-04-17
글 : 김현수
사진 : 오계옥
<스물> 삽화 캐릭터 디자인 작가 백봉

필모그래피

2015 <스물> 삽화 캐릭터 디자인 2014 <족구왕> 홍보 웹툰

다음 인기 웹툰 <노점묵시록>의 백봉 작가가 영화계와 연을 맺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족구왕> 때는 영화 홍보사의 의뢰로 번외편 격인 웹툰을 발표했다. 그때는 영화 홍보 차원에서 참여했다면 이번 <스물>에서는 시나리오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 참여해 영화 일부에 삽입된 30여컷 분량의 삽화를 직접 그렸다. 극중 영화감독을 꿈꾸는 치호(김우빈)가 술을 마시다 느닷없이 자기가 구상한 이야기라며 ‘고추 행성의 침공’이란 제목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삽입된 만화가 바로 백봉 작가의 작품이다. 일단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하긴 했지만 이번엔 혼자 망하는 작업이 아닌 까닭에 부담감이 컸다”라고 말하는 백봉 작가는 극중 치호처럼 스스로의 작업에 대단히 만족하는 중이다. “처음 감독님에게 <스물>이란 20대 청춘영화를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왜 나에게 의뢰를?’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내 만화가 젊은 애들이 좋아하는 취향이 아니니까. 그런데 집으로 보내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가 그려야 할 장면을 표시해주었는데 나 아니면 안 되는 그림을 요구하고 있었다. (웃음)”

그런데 처음 그가 제작진의 의뢰를 받은 직후, 간단하게 본인의 생각대로 작업한 스케치를 받아든 제작진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가 그린 그림의 수위가 너무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병헌 감독은 15세 이상 관람가보다 영화 등급이 더 높았으면 다 실을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실제 영화에 들어간 지금의 버전은 몇번의 수정 작업을 거쳐서 등급을 보완한 안전 버전이다.

백봉 작가도 여느 만화가들처럼 어려서부터 그림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사람을 예쁘게 그리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거리를 돌아다닐 때에도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든 사람들의 주름진 얼굴에서 더욱 영감을 받는다. 현재 그의 그림체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를 설명해준다. “분명히 내 그림체는 남들과는 차별성이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나만 갖고 있기 때문에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디테일하게 파고 다듬었다.” 그는 틈새시장을 공략해보겠다며 뛰어들었지만 허영만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 자신감이 한풀 꺾이기도 했다. “내 그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후 평소 존경했던 박재동 화백 등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가들의 영향을 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는 차기작으로 야구만화와 반찬가게가 배경인 만화를 구상 중이다. 결코 농담은 아니지만 그전에 자서전 연재 계획도 가지고 있다. “굉장히 의아하죠? 얘가 왜 자서전을? 바로 그 포인트에서 재미가 발생할 겁니다.” 무엇이든 기어이 기대하게 만드는 비상한 능력을 가진 그가 앞으로도 계속 영화와 연계된 작업을 이어나가길 기대해본다.

통기타

웹툰 작가는 만화를 그리지 않을 때는 뭘 할까. 혹은 책상에 앉아 뭐든 그리기까지의 과정에는 뭘 할까. 작업하든 안 하든 거의 집에 혼자 있는 백봉 작가는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구상하다가 “시끄럽지 않게 접근하기 쉬워 보여” 기타를 골랐다. 그는 “짜증날 때는 한번 후려치고 나면 작업하기 쉬워진다”면서 통기타를 배운 후기를 간단히 요약한다. “그러면 작업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비울 수가 있다.” 기타로 덜어낸 빈자리에 또 그만의 이야기가 금세 들어차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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