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스틸 앨리스>의 앨리스에게서 사라지고 있는 건 몸이 아닌 기억이다. 기억을 잃는다는 건 곧 지나온 시간의 상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녀에겐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그저 자신이 쌓아온 시간이 무너져내리는 걸 허망하게 바라볼 뿐. 앨리스는 유능한 언어학자로서 누구보다 언어의 조탁에 관심을 기울여왔고, 남편과 세 아이를 둔 엄마로서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불행은 앨리스를 비껴가지 않았고 되레 그녀 안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간다. 처음에는 저녁 약속을 깜빡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지 못하게 됐고, 마침내 가족과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누구인지도, 무엇을 더 잃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앨리스는 이 말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잘 안다. 하지만 머지않아 앨리스는 자신이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될 것이다. 기억의 삭제, 자아의 상실이란 얼마나 비극적인가.
앨리스의 처연함은 줄리언 무어를 만나면서 그 비극성이 배가 된다. 잘 정돈돼 있어 쉽게 헝클어질 것 같지 않은 여자가 서서히 붕괴해가는 과정을 그녀만큼 잘 보여주는 배우가 또 있을까.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중산층 가정의 안주인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통함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되는 경우는 줄리언 무어의 연기 세계가 일궈온 핵심이다. 줄리언 무어의 인지도를 한껏 끌어올렸던 토드 헤인즈의 <파 프롬 헤븐>(2002)의 케이시는 그 시작이었다. 1950년대 미국의 평범한 가정에서 전업주부로 살던 케이시는 남편의 성정체성을 뒤늦게 알고 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줄리언 무어는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으로 되돌릴 수 없는 케이시의 삶의 균열을 절묘하게 포착해냈다. <디 아워스>(2003)의 로라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아들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가정주부 로라는 문득 고요한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집을 나선다. 안정과 불안정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줄리언 무어는 늘 후자의 세계로 떠밀려 가거나 그 세계 안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쪽을 택하곤 했다.
여기에 더해 <스틸 앨리스>는 줄리언 무어가 가지고 있는 격조 있고 우아한 이미지를 역으로 이용한다. 비극과는 절대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줄리언 무어의 그 우아함이 앨리스를 만나면서 허물어져갈 때 슬픔은 더 커진다. 자신이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직감하며 앨리스가 보여주는 당혹스러운 눈빛은 <스틸 앨리스>의 모든 순간을 통틀어 가장 쓸쓸하다. 이런 감정 표현은 <매그놀리아>(2000), <디 아워스>, <세비지 그레이스>(2009), <클로이>(2010) 등에서 줄리언 무어가 능숙하게 표현해낸 불안과 음울한 기운의 연장선상에 있는 동시에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간 애처로움이다. 앨리스의 초점을 잃은 눈빛을 볼 때면 마치 그녀 내부에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될 만큼 헛헛해진다. 줄리언 무어를 보고 “캐릭터가 느끼는 내적인 감정의 혼란을 마지막 순간까지 끌고 가는 능력이 탁월하다”라고 한 <가디언>의 평은, 그러므로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 올해 아카데미가 줄리언 무어에게 생의 첫 오스카를 안겨준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신기한 건, 줄리언 무어가 표현하는 그 불안과 슬픔의 정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 안에는 놀랍게도 용기나 결기와 같은 종류의 정조가 켜켜이 쌓여 있다. <스틸 앨리스>에서도 앨리스는 마냥 좌절의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앨리스는 어떻게든 계속해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앨리스로 남아 있고자 한다. 알츠하이머가 한창 진행되던 와중에도 알츠하이머 학회에 나가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서 애쓴다.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독려할 때가 그렇다. 슬픔과 좌절로 신음하면서도 애상에 젖어 있지만은 않는, 기어코 그 좌절을 뚫고 나가려는 의지다. 비극 앞에서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앨리스의 결연함은 줄리언 무어의 연기로 비로소 완성된다. 점점 더 상태가 악화되는 앨리스가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영상을 찍을 때도 그녀가 보여주는 침착하고 단호한 태도는 줄리언 무어의 다부진 말투와 표정 위에 자연스레 포개진다. 이처럼 줄리언 무어에게서는 도도함이나 고집스러움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자신에 대한 굳은 믿음과 강한 자존감이 엿보인다. <눈먼 자들의 도시>(2008)에서도 그녀가 맡은 의사의 아내 역은 극 안에서 유일하게 책임감을 느끼는 인물이었고, 다소 황망한 결말로 이어진 <포가튼>(2004)에서조차 외부의 침입에서 아이를 구하려는 강인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돌이켜보면 <스틸 앨리스>로 마무리된 2014년은 줄리언 무어에게는 기념비적인 한해였다. 앨리스를 연기하기 전, 그녀는 이미 세편의 영화 작업으로 평단의 지지와 상업적 성공을 두루 맛보고 있었다. 시작은 <논스톱>(2014)이었다. 비록 평단의 반응은 냉랭했지만 나쁘지 않은 흥행 성적을 거뒀고 곧이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맵 투 더 스타>(2014)를 통해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맵 투 더 스타>에서 줄리언 무어가 맡은 하바나 시그랜드는 영화의 등장인물 중 가장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였다. 한때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캐스팅 하나에도 전전긍긍하는 여배우 하바나는 거의 신경쇠약증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한다. 죽은 엄마의 혼령에 시달리며 지칠 대로 지쳐 흐느끼거나, 할리우드에서 ‘퇴물’ 취급당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면 줄리언 무어의 진가가 발휘된다. 거칠 것 없어 보이는 하바나의 기운을 줄리언 무어는 자신의 왜소하지만은 않은 체구와 평소보다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떡하니 받쳐낸다. 줄리언 무어 하면 곧바로 떠올려지는 초조하고 불안한 눈빛이 이번에도 빛난 것은 물론이다. 이후 그녀는 <헝거게임: 모킹제이>(2014)에 합류해 프랜차이즈영화에서도 무게감 있는 조연으로 극을 이끌었다.
데뷔 때부터 쉰살을 넘긴 지금까지 줄리언 무어는 독립영화와 블록버스터, 장르물과 정극 사이에서 경계를 두지 않고 거침없이, 또 쉼없이 연기 지평을 넓혀왔다. 이것은 또래의 여배우들, 아니 후배 여배우들까지 포함해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한 성취다. 그녀는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고 비전이 분명하다면 그가 누구든, 규모가 어떻든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유일한 원칙만을 고수한다. 그녀가 신인감독 시절의 토드 헤인즈와 저예산영화 <세이프>(1995)를, 할리우드에 막 발을 들인 폴 토머스 앤더슨과 <부기 나이트>(1997)를 찍으며 그들의 성공의 견인차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시나리오를 보는 그녀의 탁월한 안목이 크게 작용했다.
이처럼 매 순간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길 주저하지 않는 줄리언 무어의 과감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스코틀랜드 이민자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자란 유년의 경험 속에서 체득한 삶의 지혜가 큰 이유일 것이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던 그녀는 “여러 곳을 이주하면서 알게 됐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나의 행동이 변한다는 걸. 캐릭터를 이해해야 하는 배우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빠르게 받아들인 이 배우는 지금도 자신의 변화 가능성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올해 개봉을 기다리는 <헝거게임: 모킹제이-파트2>(2015)의 출연을 비롯해 폐암으로 죽음을 맞이한 여형사의 실화를 다룬 <프리헬드>, 에단 호크와 호흡을 맞춘 <매기스 플랜>도 이미 촬영을 끝낸 상태다.
게다가 어린이 동화책 작가로도 성공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다. 주근깨투성이인 얼굴 때문에 어린 시절 놀림거리가 됐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주근깨투성이 딸기>(Freckleface Strawberry)라는 연작 동화를, 이민자 가정에서 겪은 본인의 일화를 옮긴 <우리 엄마는 외국인>(My Mom Is a Foreigner)을 발표해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줄리언 무어는 앞으로도 다섯권의 동화책을 더 낼 예정이라고 하니 그녀의 자전 동화를 기다리는 팬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소식이다. 믿음직한 배우이자 작가인 줄리언 무어를 올해도 계속해서 만나볼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충분히 기쁘고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Magic hour
여배우의 사자후
마음 수련을 하면 좀 나아질까. 풍경 소리를 들으면 좀 안정이 될까. <맵 투 더 스타>의 하바나는 지금 자기와의 싸움 중이다. 결과는? 대실패다. 하바나는 재기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평생 짐인 엄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맡고 싶었던 배역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 수련 중에 전해들은 결과는 비보뿐. 결국 그 자리는 다른 여배우의 차지가 되었다. 눈을 내리깔고, 코를 벌름거리며 숨을 고르던 하바나는 그 순간 제대로 폭발하고야 만다. 불안과 초조, 울분과 분노가 마구 뒤섞인 하바나가 된 줄리언 무어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격한 사자후를 내지른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고 강력하게 줄리언 무어는 감정을 분출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현재를 의심해야 하고 “그 애보다 내가 더 예쁘지? 내 피부가 더 곱지?”라며 자격지심에 똘똘 뭉쳐 있는 하바나. 성형수술과 보톡스를 싫어하고 자신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한명의 인간일 뿐이며 그래서 가장 자연스럽게 사는 걸 지향한다고 말하는 줄리언 무어. 두 인물 사이의 간극을 알고 보면 훨씬 흥미로운 장면이다. 할리우드의 어두운 그림자, 그 야릇하고 치졸한 속내를 여지없이 까발린 <맵 투 더 스타>에서 과연 줄리언 무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