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음울한 영웅의 미친 질주
2015-05-04
글 : 장영엽 (편집장)
30년 만에 완성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미리 보기

명성만큼이나 화려한 귀환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5월14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카체이스 액션 신을 장전한 <매드맥스> 3부작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최첨단 기술과 진보된 스턴트 액션의 힘을 빌려 30년 만에 완성된 새로운 ‘매드맥스’는 어떤 모습일까. 예고편의 압도적인 비주얼로 이미 관객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린 이 영화를 보기 전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전한다.

분노에 찬 얼굴로 미친 듯이 도로를 질주하는 검은 재킷의 남자.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의대 출신의 초짜 영화감독과 무명배우는 자신들이 합심해 만들어낼 이 광기의 형사 캐릭터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액션 히어로가 될 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폭주족에게 아내와 아이를 잃고, 그들에게 처절한 응징을 가한 뒤 정처없이 길 위를 떠도는 전직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매드맥스> 시리즈는 조지 밀러 감독과 배우 멜 깁슨에게 명성과 성공을 동시에 안겨준 프랜차이즈였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범법자들을 무자비하게 처단하는 영웅의 모습과 그 당시의 기술로 가능하리라고 짐작되지 않는 고난도의 카스턴트 액션 신, 펑크적인 요소를 가미한 기괴한 코스튬 등 이 시리즈 특유의 개성은 제임스 카메론과 기예르모 델 토로, 제임스 완 등의 감독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모든 프랜차이즈에는 저마다의 운명이 있는 법이다. 2000년대 초반, 주연 배우 멜 깁슨과 함께 시리즈의 4편을 연출하려던 조지 밀러 감독은 9•11테러와 폭우 등의 변수를 맞이하며 4편의 제작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4편의 이야기를 영화로 구현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시리즈를 떠난 멜 깁슨 대신 톰 하디를 영입해 30년 만에 기어이 속편을 만들었다. 그 작품이 바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다.

“세상이 멸망하면서 누가 더 미친 건지 알 수가 없어졌다. 나인지. 이 세상인지.” 이 영화는 <매드맥스> 3편으로부터 45년 뒤의 세계를 조명한다. 핵전쟁이 벌어져 지구는 초토화되고, 살아남은 자들에겐 물과 기름이 곧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된다. 이 디스토피아적인 세계 속을 배회하는 음울한 남자, 맥스(톰 하디)는 물과 기름을 지배하는 시타델의 독재자 임모탄(휴 키스 번)의 노예로 끌려가고, 우연히 임모탄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사령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와 임모탄의 다섯 부인들과 동행하게 된다. 앞서 공개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예고편은 이번 영화의 맹점 역시 흙먼지가 자욱한 길 위에서 벌어지는, 광기의 스턴트 액션을 감상하는 데 있다는 걸 알려준다. 조지 밀러 감독은 이 작품이 “물리학의 법칙을 거스르는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컴퓨터그래픽(CG) 사용을 최소화하고 배우들의 몸과 캐릭터의 개성을 담은 프로덕션 디자인이 이 영화의 진정한 승부수라는 얘기다.

풍경의 블록버스터

“일본 관객이 자막을 읽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는 히치콕의 말은 <매드맥스> 시리즈를 관통하는 조지 밀러 감독의 연출관이기도 하다. 그건 30년 만에 부활한 시리즈의 4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무엇보다 우리 영화는 추격 스토리다. 사막을 가로질러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을 말로 쓰기는 쉽지 않다.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 훨씬 쉽다.” 이에 따라 조지 밀러 감독은 대사를 쓰기 이전에 스토리보드 작업을 먼저 진행했다. 그와 다섯명의 스토리보드 작가들이 3500개의 패널에 작업한 그림은 제작진이 촬영한 장면에 거의 그대로 반영됐다고 한다. 주인공조차 대사가 많지 않은 이 영화를 두고 밀러 감독은 “마치 무성 추격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거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길 위에서 벌어지는 추격전과 저마다의 목적으로 길 위에 선 인물들의 다양한 면모가 곧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서사를 대신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톰 하디.
<매드맥스2: 로드 위리어> 멜 깁슨.

두명의 매드맥스

잘 알려진 대로 <매드맥스> 시리즈는 무명배우였던 멜 깁슨을 스타로 만드는 데 일조한 작품이다. 신선한 마스크의 ‘괴짜’를 찾고 있던 <매드맥스>의 캐스팅 디렉터가 술자리에서의 싸움으로 얼굴이 퉁퉁 부어 오디션장에 나타난 멜 깁슨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재단되지 않은 모습은 모든 것을 잃고 분노에 휩싸여 길 위를 질주하는 음울한 영웅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현해냈다. 30년 뒤, <매드맥스> 시리즈의 제작진이 새롭게 찾아낸 괴짜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의 빌런 베인을 연기한 톰 하디다. 조지 밀러 감독은 그가 멜 깁슨과 유사한 “남성성”과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분위기를 갖추고 있기에 캐스팅했다고 말한 바 있다. 밀러 감독에 따르면, 톰 하디가 연기하는 맥스는 멜 깁슨의 오리지널 캐릭터와 “분명 다르지만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굶주린 늑대를 생각해보라. 혹은 욕조에 빠진 고양이를 떠올려보라. 고양이를 잡고 물속에 빠뜨리면 어떤 꼴이 될까? 그게 바로 이 영화 속 내 모습이다. 하지만 동시에 퓨마처럼, 맥스는 매우 굶주려 있으며 위험하다. 그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톰 하디)

여전사 퓨리오사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매드맥스> 시리즈의 세계로 들어온 것은 지난 3편부터다. 바타 타운이라는 거대한 문명 도시를 지배하며 이방인에게 친절을 베풀기도 하지만, 자신의 뜻을 거역하는 즉시 잔혹한 면모를 드러내던 카리스마 넘치는 도시의 지배자 엔티 엔티티(팝스타 티나 터너가 연기했다)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선 샤를리즈 테론이 여전사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도시 시타델에서 거의 신적인 숭배를 받는 임모탄의 명을 거역하고, 그가 사랑하는 여자들을 빼돌려 탈출을 도모하는 여자.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하는 사령관 퓨리오사는 이 하드보일드한 세계의 앞날을 바꾸는 데 어떤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지 밀러 감독은 맥스와 동등한 위치에 놓일 여성 캐릭터를 원했다. (중략) 이런 세계에 발들일 여자라면 그녀가 느낄 감정은 굉장히 힘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전사 퓨리오사로 거듭나기 위해 기계 팔을 장착하고 삭발을 감행한 샤를리즈 테론의 모습은 서늘하게 아름답다. 맥스의 파트너로 손색없을 만큼.

그 밖의 주요 등장인물들

임모탄

“오직 나만이 너희를 이 황폐한 세상에서 구할 수 있다.” 이 오만한 대사를 서슴없이 내뱉는 이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메인 악당 임모탄이다. 물과 기름을 독점한 그는 살아남은 인류로부터 거의 신적인 추앙을 받는다. 흥미롭게도 임모탄을 연기하는 이는 <매드맥스>의 폭주족 토커터로 출연했던 배우 휴 키스 번이다. 맥스의 아내와 아이를 잔인하게 살해해 그를 ‘미친’ 맥스로 만들게 한 장본인이, 30년 뒤 부활한 시리즈에서 다른 악당의 모습으로 맥스와 다시 맞붙는 것이다. 조지 밀러 감독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휴 키스 번을 무척 아꼈다고 말하며 1편을 본 관객이 그를 알아볼까봐 임모탄에게 마스크를 씌웠다고 밝혔다. 1편에서 맥스의 차가 아닌, 대형 트럭에 치여 잔혹한 죽음을 맞이했던 휴 키스 번은 이번 영화에서 어떤 결말을 맞을까.

임모탄의 여인들

<매드맥스> 1편에서 폭주족에게 아내와 아이를 잃은 뒤부터,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매드맥스의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런 그가 임모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사막을 헤매는 여인들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건 어쩌면 그 비극적인 과거사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의 도움을 받아 길 위로 나선 임모탄의 다섯 부인들은 영화 속 거대한 전쟁의 불씨로 기능한다. 여전사 퓨리오사와 달리 긴 머리와 가냘픈 몸매를 지닌 이들은 맥스와 퓨리오사가 지켜내야 할 존재들이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델 출신이자 <트랜스포머3>로 이름을 알린 로지 헌팅턴 휘틀리가 스플렌디드를, <매직 마이크>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라일리 코프(무려 엘비스 프레슬리의 외손녀)가 캐퍼블을, <다이버전트> 시리즈의 조 크라비츠가 토스트를 연기하며, 호주 출신의 모델 애비 리(더 대그 역)와 코트니 이튼(프래자일 역)이 출연한다. 그녀들의 이름을 통해 캐릭터의 운명을 미리 짐작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눅스

<웜바디스>(2012)의 좀비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의 비스트를 목격한 이라면, 임모탄의 전사로 분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속 니콜라스 홀트의 모습에 크게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외양에 큰 변화를 주는 데 거리낌이 없는 배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창백한 얼굴에 가슴에 엔진 문신을 하고, 모든 것이 날아가는 모래폭풍 속에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날이라니!”라고 외치는 이 광기의 인물을 니콜라스 홀트가 어떻게 구현해낼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하다. 퓨리오사 일행을 잡아 임모탄에게 바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되어버린 눅스는 “강아지 같은 인물”이라고 니콜라스 홀트는 말한 적이 있다. 임모탄의 전사가 되어 차량을 운전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잔뜩 흥분해 날뛰다가 맥스 일행을 만나 변화를 겪게 된다는 눅스는 이 영화에서 가장 복합적인 인물 중 하나다.

<매드맥스> 시리즈의 정체성 담은 자동차들

자동차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질주하게 하는 엔진과도 같은 존재다. 조지 밀러 감독과 프로덕션 디자이너 콜린 깁슨은 이 영화를 위해 <매드맥스> 시리즈의 세계관과 환경, 운전하는 인물들을 고려한 150여대의 자동차, 트럭, 바이크를 만들었다. “차량의 각 부품들은 거의 종교적인 중요성을 띠고 있다”는 조지 밀러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주요 차량 4대를 소개한다.

인터셉터 Interceptor

1979년 <매드맥스> 1편에서 처음 선보인 뒤, 전설이 되어버린 맥스의 자동차. 2편인 <매드맥스2: 로드 워리어>(1981)에서 맥스의 목숨을 살리고 장렬하게 폭파되는 최후를 맞이했기에 이번 영화에서의 귀환이 더욱 반갑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XB 포드 팔콘 쿠페를 기본 모델로 삼고 있지만, 주인공과 운명을 함께하는 자동차인 만큼 갖은 재난과 전쟁을 경험하며 녹슬고 마모된 모습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매드맥스와 마찬가지로 상태가 좋지 않다. 이 차는 망가지고 다시 부활하기를 반복했다.”(조지 밀러 감독)

워 리그 War Rig

사령관 퓨리오사가 운전하는, 시타델의 차량 중에서도 상위 모델에 속하는 자동차. 철통 방어가 가능하며 대형 연료탱크를 장착할 수 있다. 영화에서 큰 존재감을 드러내는 차량이기에 설계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공격자들을 압도하기 위한 해골 모양의 장식물부터 무기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늘어놓은 장비들까지, 제작진은 워 리그의 면모가 치밀하면서도 직관적인 퓨리오사의 성격을 닮았다고 말한다.

두프 왜건 Doof Wagon

“어느 군대나 북 치는 소년이 있기 마련이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콜린 깁슨의 말처럼, 두프 왜건은 임모탄 부대의 사기를 드높이기 위한 준비된 차량이다. 대형 스피커와 조명, 방송 시스템을 갖춘 이 차량에는 눈먼 연주자가 마리오네트처럼 줄에 묶여 화염이 나오는 전자 기타를 연주한다. 북소리 대신 광기의 록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자동차다.

버자드 Buzzard

겉모습부터 위협적이다. 자원을 찾아 무리를 지어 사막을 헤매는 버자드족의 이름을 이어받은 이 차량은, 길 위의 모든 것을 “뭉개고, 뚫고, 산산조각 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차량의 앞뒤에 달린 톱과 포클레인이 그것을 증명한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제작진은 호주의 개미핥기에서 영감을 받아 이 동물의 등에 달린 침과 닮은 1757개의 스파이크를 버자드에 장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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