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상윤]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영화를 하는 게 철학이자 야심”
2015-05-06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CJ CGV아트하우스 이상윤 사업 담당

지난해 CJ CGV아트하우스가 한국영화 투자배급 사업을 시작했을 때 기대만큼이나 우려도 많았다. 불모지에 가까운 한국 저예산영화 시장에서 대기업 자본이 활로를 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기대였다면, 아트하우스관을 무기 삼아 저예산영화 시장까지 장악하려는 움직임이 아닌가라는 게 우려였다. 상반된 시선이 오갔던 가운데, CGV아트하우스는 <한공주> <도희야> <우아한 거짓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 작품성과 시장성을 두루 갖춘 작품들을 차례로 선보이면서 저예산영화 시장의 활로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셜포비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라인업인 <차이나타운> 기자시사회를 앞둔 지난 4월20일, CGV아트하우스 이상윤 사업 담당을 만나 한국형 스페셜티 디비전(메이저 스튜디오들이 독립영화 성격의 저예산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설립한 레이블-편집자)으로서 CGV아트하우스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는 1998년 제일제당 공채 6기로 입사해 CGV강변 매니저(1999년), CJ엔터테인먼트 마케팅팀(1999~2005년), 투자팀(2005~2007년), 기획개발팀(2007~2010년), 필라멘트픽쳐스(2010~12년), 지원파트장(2012~13년) 등 회사의 여러 보직을 두루 거친 뒤 2013년부터 CGV아트하우스 사업 담당을 맡아오고 있다.

-오후에 <차이나타운>이 첫 공개된다. 어떤가.

=매번 긴장된다. 영화 일이 힘든 건 이전까지 쌓은 경험이나 성과가 새 영화의 성공을 전혀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공주> <도희야> <우아한 거짓말>과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 지난해 라인업을 보면서 CGV아트하우스가 폭스 서치라이트나 포커스 픽처스 같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아트하우스 레이블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한국영화 투자배급 사업을 하기로 결정한 뒤 라인업의 성격을 규정할 때 모델로 했던 게 할리우드의 스페셜티 디비전이었다. 물론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산업 규모나 성격은 많이 다르지만, 모범적으로 참고했던 회사는 폭스 서치라이트였다. 포커스 픽처스의 저예산 독립영화에 대한 과감한 투자도 교훈을 줬고, 제작사 웨인스타인 컴퍼니와 워킹타이틀이 시장에 접근하는 방식도 참고했다.

-CJ가 저예산 상업영화를 제작하는 레이블을 만든 건 CGV아트하우스가 처음은 아니다. 2010년 CJ엔터테인먼트가 설립한 필라멘트픽쳐스 역시 저예산 상업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설립된 레이블이다. 필라멘트픽쳐스를 맡으면서 저예산 상업영화와 그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눈여겨본 건가.

=CJ그룹이 영화 콘텐츠 사업을 하면서 저예산 상업영화를 제작하는 레이블의 가능성보다 필요성에 더 주목했던 것 같다. 예전부터 스페셜티 디비전에 대한 고민을 해왔던 것도 그래서다.

-CGV아트하우스가 할리우드의 스페셜티 디비전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할리우드의 스페셜티 디비전이 저예산영화 시장을 발견하는 성격이었다면 우리는 불모지를 개척한다는 의미가 컸다.

-저예산영화 투자배급 사업을 시작할 때 바라본 저예산영화 시장은 어땠나.

=한해 100편이 넘는 저예산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중 관객과 제대로 만나는 접점을 가진 작품은 드물다. 문제는 생산보다 유통과 마케팅에 있고, 그걸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우리가 저예산영화를 픽업하고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아트하우스관과 기타 상영관을 활용해 다양한 배급 서비스를 제공하고, 관객의 관심을 끄는 마케팅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게 <한공주> <도희야> 같은 작품이었다.

-저예산영화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런칭 첫 라인업이었던 지난해 성과가 중요했을 것 같다.

=우리 같은 신생 투자배급사는 한편 한편의 성과에 크게 흔들리기 마련인데 운좋게도 지난해 선보였던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CJ엔터테인먼트에서 CGV로 넘어왔을 때 투자배급사로서 CGV의 내부 분위기가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경영진이 저예산영화 투자배급 사업을 잘 이해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들은 대부분 영화계에서 수혈된 인력들인데 그들 역시 우리 사업의 철학을 잘 이해하고 열심히 일했다.

-과거 필라멘트픽쳐스를 맡으면서 쌓았던 경험은 어떤 영감을 주었나.

=필라멘트픽쳐스 시절은 ‘흑역사’인데…. (웃음)

-그때 경험이 없었더라면 CGV아트하우스가 빠른 시간에 제 궤도에 안착할 수 있었을까.

=그건 개인적인 경험이라기보다 회사의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게 맞다. 필라멘트픽쳐스가 사업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면 CGV아트하우스는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해 시도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필라멘트픽쳐스는 나나 회사에 중요했던 레슨이었다. 수익이 나는 극장이 리스크가 있는 사업을 운영하는 게 그룹 입장에서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그때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지난해와 올해 CGV아트하우스 라인업을 보면 필라멘트픽쳐스 시절 만들었던 변영주 감독의 <화차>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흥행성과 작품성 모두 갖춘 영화 말이다.

=그게 제일 좋다. 회사마다 라인업 운용을 규정하는 철학이 있지 않나. 우리의 철학은 무엇인가. 예술성을 갖춘 영화들은 대중성이 약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영화의 예술적 성취는 상업성과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불안감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처한 공포를 장르적 방식으로 다룬 <화차>가 내게 좋은 연이었던 것 같다. <화차>처럼 영화적 성취가 높고, 장르적 재미가 있는 작품이 내가 추구하는 작품과 유사하다.

-CGV아트하우스가 필라멘트픽쳐스와 다른 점은 아트하우스 상영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사업을 하는 데 유리한가.

=유리하다. CGV라는 플랫폼이 없었더라면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CGV아트하우스 상영관이 공공재적 성격도 가지고 있지만, 이 상영관을 통해 독립•예술영화도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으면 좋겠다. 그 점에서 CGV아트하우스는 독립•예술영화의 전초기지이자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초기 제한상영을 위한 플랫폼으로도, 일반 상영관에서 상영 후 장기상영의 플랫폼으로도 CGV아트하우스관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

-한국영화의 투자배급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무척 조심스러워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CGV가 저예산영화 시장까지 장악하려는 게 아닌가라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저예산영화 시장은 사이즈가 존재하지 않는 불모지에서 극장이 리스크가 큰 투자배급 사업에 수익을 투입하면서까지 스페셜티 디비전 설립을 시도한 건 다양한 영화의 생산을 통해 한국영화 시장을 튼튼하게 하겠다는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극장이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했다면 투자배급 사업이라는 리스크를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한국영화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과제라고 생각했기에 시도할 수 있었던 선택이다. 당시에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극장이 투자배급 사업을 함으로써 수직계열화를 꾀했다는 비판을 받았을 때 정면 돌파할 생각은 없었나.

=말로 정면 돌파할 수 있는 문제도, 하루이틀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성과들을 조금씩 보여주면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장기적으로 우리가 가는 방향이 드러날 것이고, 언젠가 우리를 오해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라인업을 꾸릴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뭔가.

=기준을 두고 작품들을 잘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회사에선 못하지만 여기서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예술성이 대중성과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라면 이 둘을 모두 갖춘 영화를 하는 게 우리의 철학이자 야심이다.

-<차이나타운> <무뢰한> <조이> <그놈이다> <극적인 하룻밤> 등 올해 라인업은 다양한 장르영화로 포진했다는 인상이다.

=이 작품들이 장르영화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모두 새로운 시도를 한 영화들이다. 흥행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대중에게 신선한 시선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할 만한 작품들이다.

-지난해 10월, CGV무비꼴라쥬에서 아트하우스로 새 단장을 하면서 극장 운영의 변화 역시 눈에 띈다. CGV압구정에는 독립예술영화전용관 3개가 들어섰고, 이중 1개관은 1년 내내 한국 독립영화만 상영하기로 했다.

=지난 10년 동안 CGV인디영화관을 시작으로 무비꼴라쥬를 거쳐 아트하우스까지 운영해온 건 한국영화 시장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공익적인 목적도 있고, 동시에 최소한의 시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트하우스를 찾은 관객이 총 120만명이다. 충성도 높은 관객이 늘었고, 그만큼 좋은 영화가 많이 상영됐다. 한국영화 시장의 건전한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닌, 없으면 안 되는 사업이라 생각하며 운영할 것이다.

-개인적인 질문도 있다. CJ엔터테인먼트, CGV 등 CJ그룹에서 17년 동안 근속하고 있다.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 (웃음)

=신입사원이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신입사원에게 그런 농담을 한다. “긴장해라. 너희들 내일모레가 나다.” (웃음)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힘들었지만 여러 도전이 늘 새로웠다.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었나.

=여러 번 있었다. 여러 번.

-그만두고 나가 제작사를 차리지 그랬나. (웃음)

=진짜 제작을 잘하는 분이 뭘 잘하는지 생각해보면 네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 영화의 본질을 잘 아는 것. 둘째, 관객의 시선을 잘 아는 것. 셋째, 사람을 잘 알아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능숙하게 이끌어내는 것. 넷째, 제작사를 운영하면서 겪는 여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내공. 이중 어느 것도 훌륭한 게 없어 제작사를 차릴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너무 겸손한 거 아닌가.

=아니, 진짜다. 아트하우스 일을 얼마나 오랫동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잘되고 있는 모습을 좀더 오래 지켜보고 싶은 생각이 많다.

-이상윤을 두고 “회사 안에선 대기업 사람 같고, 회사 밖에선 영화인 같다”는 평가가 있다.

=사람이 일관성이 없다는 얘긴데…. (웃음) CJ에 있었던 지난 17년은 한국영화가 성장하는 시기와 맞물렸다. 투자배급사 직원으로서 일의 가치와 규범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우 화려하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기업 안에서는 수익을 내야 했기에 압박받을 여지가 많았고, 영화계에선 대기업 직원이기에 배척받을 상황이 많아 살아남기 위해 몸에 익힌 스킬이 아닌가 싶은데… 내가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웃음)

-CJ 내부에서는 “목표의식이 분명하고,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리더”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좋게 얘기하면 그런 건데, 그런 평가를 동전 뒷면에서 보면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강도 높은 노력을 강요한 것에 대한 방증이다. 나와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나로 인해 겪은 어려움과 힘듦을 이제는 잊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리고 싶다. 기사에 눈물 표시를 넣어달라. (웃음)

-감독, 제작사, 배우 등 영화계 여러 플레이어들을 관리하는 솜씨도 좋다.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친화력이 있거나 사람들을 잘 관리하는 성격은 아니다. 아직도 영화인들을 만나는 걸 어려워한다. 그들은 대단한 일을 하고 있어 존경스럽다. 그 마음이 잘 드러나면 영화인들이 내가 대기업 직원 같지 않다고 생각해주는 것 같다.

-좀 늦었지만 올해 각오를 듣고 싶다.

=한국에서 스페셜티 디비전을 찾기 어려운 까닭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산업의 지속 가능한 힘을 만들어내겠다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알찬 성과를 내고 싶다. 프로축구 K리그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리더는 성공을 통해 기회를 만들어낸다.” 가슴에 항상 남아 있는 말이다.

-자신 있나.

=솔직히 한번도 자신 있어본 적 없다. 늘 신중했다. 끝까지 노력해보고, 노력을 다 해봤다 싶을 때 더 숙고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다만, 실패했을 때 좌절하거나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을 정도의 자신감은 있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