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on]
[flash on] “급식 정책하는 분들이 꼭 보시길”
2015-05-07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오계옥
<잡식가족의 딜레마> 황윤 감독

도축장에서 생을 마감하는 돼지가 불쌍하지만, 돈가스 반찬은 먹고 싶다. ‘찍어내듯’ 돼지를 키우는 대형 공장이 있고 돼지의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소규모 농장이 있지만 어떤 곳에서 자란 돼지이든 도축장에서 생을 마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작별>(2001)과 <어느 날 그 길에서>(2006) 등을 통해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사회적 시스템에 대해 고민해온 황윤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이처럼 축산업과 육식에 대해 인간이 겪는 다양한 딜레마를 응시하는 영화다. “저금통 아니면 고기”가 아는 돼지의 전부였다는 황윤 감독은 박학다식한 선도자이기보다는 아이의 건강을 걱정하는 엄마와, 밥상에 올릴 음식을 고민하는 주부, 다시 말해 일반 관객과 다르지 않은 눈높이에서 이 딜레마의 실체에 다가간다.

-쿠키를 먹으면서 이 영화를 보다가 미처 다 먹지 못했다.

=하하하. 다들 그런 말씀 하시더라. 어떤 분은 핫바를, 어떤 분은 육포를 먹다가 멈칫했다고. 사실 나 역시 이 영화를 만들면서부터 우리가 먹는 음식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를 유심히 보게 된 거지 그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다 사 먹었다. 그런데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 있는 음식을 피하려다보니 그런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없더라. 젤라틴이 소나 돼지의 껍질로 만든 것이고, 쇼트닝은 돼지기름, 시즈닝에 동물을 갈아 만든 가루가 들어 있다는 건 일반 소비자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다.

-영화 전반부에 돼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짧게 언급했지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2010년 말에 구제역이 터졌다. 어마어마한 살처분이 이뤄지는 장면이 뉴스를 도배했고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란 생각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그땐 다큐멘터리보다 두돌이 채 안 된 아이를 키우느라 더 바빴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모순적이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지점이 있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동화책을 읽어줄 때가 많은데, 책을 보면 소나 돼지, 닭들이 푸른 초원이 있는 농장에서 뛰어다니는 그림이 많더라. 우리가 평소 이토록 잔인하게 동물을 대하면서도 아이들에게는 동물을 친구라 부르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 모순과 간극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임순례 감독님에게 전화가 왔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이자 당시 <미안해, 고마워>를 만들고 있던 감독님께서 구제역 문제를 황 감독이 다뤄주었으면 좋겠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시더라. 반려동물의 문제를 내가 맡을 테니, 황 감독은 소와 돼지, 닭을 맡아달라고. (웃음) 그때까지만 해도 야생동물 이외의 동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가, 집에 꽂혀 있던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을 읽고는 비로소 영화를 만들 결심을 하게 됐다.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감독의 전작을 통틀어 가장 사적인 다큐멘터리다. 동물의 사육 과정과 육식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주요 등장인물로 출연시킨 이유는 뭔가.

=어떤 사람들은 가족을 찍으니 작업 과정이 쉽지 않았냐고 묻기도 하던데 너무 억울하더라. 사실 가족을 촬영하는 게 가장 어렵다. 처음 이 문제에 대해 조사를 하며 축산업과 육식에 대한 많은 작품들을 봤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패스트푸드 네이션>이나 니콜라스 게이어할터의 <일용할 양식>(2005) 등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작가로서 어떻게 차별화된 관점으로 이 문제를 다룰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든 생각이, 좋은 정보를 주는 작품들은 이미 많다는 거였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다가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고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내 위치에서 관객의 손을 잡고 함께 농장으로 돼지를 만나러 가는, 그런 느낌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이번 영화의 주요 배경은 돼지를 키우는 공장과 농장이다. 어떤 공간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거다.

=대규모 사육이 이뤄지는 공장과 동물복지에 주목하는 농장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있었다. 특히 동물복지형 농장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추천한 농장들조차 사실은 공장식으로 운영되는데 동물들에게 음악을 들려준다거나 하는, 약간의 노력을 더 하는 곳들이 많았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사육하는 돼지 수가 2천 마리가 넘으면 촬영 계획을 접었다. 동물의 수가 많을수록 밀집 사육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돼지를 돼지답게 키우는, 소규모 농장을 찾던 중 원가자농의 원중연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을 처음 만나뵈었을 때부터 ‘필’이 왔다. 몇 마디 안 하시는데도 철학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모든 것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다. 책이 아니라 땅에서 땀을 흘리며 일한 농부만이 얻을 수 있는 삶의 철학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선생님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육식의 종말> <죽음의 밥상>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등의 책들이 있는 거다. (웃음)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더라도 먹는 양을 줄이고 옳은 방식으로 사육된 동물의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 정말 존경스럽다.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촬영하며 채식주의자가 됐다. 육식은 하지 않지만 해산물은 먹는 세미 베지테리언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해산물도 동물이고 조개도 동물이다. 원래는 비건(완전 채식)까지도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비건으로 살아간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더라. 영화에도 나오지만 외식을 할 때 비건 메뉴를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산물까지는 먹는 것으로 타협을 했는데, 돼지만 불쌍하고 물고기는 불쌍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좀 가혹하게 느껴진다. 완벽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건 굉장한 논리적 모순이고 너무 엄격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실천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

-축사 철창 안에 갇힌 돼지의 눈빛은 동물원 철창 안에 갇혀 있던 <작별>의 호랑이, 크레인을 떠올리게 한다. 전작에서 다뤘던 동물원이라는 공간과 이번 영화의 동물농장은 당신에게 어떻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던가.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들의 눈빛을 보았을 때 정말 슬펐다. 야생에서 수백 킬로미터를 뛰어다녀야 하는 동물들이 좁은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 불쌍했고. 농장에 와서 보니 돼지도 호랑이의 처지와 하등 다를 게 없었다. 재미있는 건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농장 동물들은 그 삶이 철저히 베일에 감춰져 있고 감금이 너무나도 당연시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라는 책이 있다. 그 제목을 좀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호랑이는 보호하고 돼지는 먹을까?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동물의 ‘용도’를 구분하는 기준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건 우리가 무심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목적을 위해 동물들을 범주화하고 목적에 맞게끔 착취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이 시스템에 대한 큰 그림을 깨닫게 된 것이 가장 큰 발견이고 고마운 일이다.

-아들 도영이 올해 일곱살이 된다고 들었다. 급식 먹거리에 대한 걱정도 슬슬 생겨날 법하다.

=유치원 식단만 해도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거의 없다. 채식하는 고등학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학교에서 그냥 김치에 밥만 먹는다고 하더라. 고기를 먹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고기를 먹지 않을 선택 또한 가능한, 선도적인 음식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채식주의자들이 핍박받지 않으려면, 이 영화가 대박이 나는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웃음) 서울시장님이나 급식 정책하는 분들에게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꼭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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