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스지프론 감독의 <와일드 테일즈: 참을 수 없는 순간>은 여섯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엮어 만든 옴니버스영화이다. 20여분씩 진행되는 각각의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주인공을 내세워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들을 느슨하게 묶는 공통 테마는 ‘분노’이다.
각각의 상황만 살펴보면 이렇다. 첫 번째. 이륙 준비를 하는 비행기 안, 우연히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된 승객은 그들이 모두 한 남자와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번째. 레스토랑 웨이트리스인 주인공은 식당 손님으로 찾아온 한 남자가 오래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임을 알아본다. 세 번째. 고급 승용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마리오는 고물차로 자신의 앞길을 막던 남자에게 욕설을 퍼붓고 지나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어 펑크로 차를 세운 마리오 앞에 고물차 사나이가 나타난다. 네 번째. 불법주차로 견인된 차를 찾으러 갔던 주인공은 앞뒤 꽉 막힌 공무원들과 느려빠진 행정처리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다섯 번째. 아들이 저지른 뺑소니 교통사고를 돈으로 무마하려던 아버지 앞에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난다. 여섯번째. 결혼식 날, 신부는 우연히 자신의 신랑이 다른 여자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와일드 테일즈: 참을 수 없는 순간>은 형식상 옴니버스영화이지만, 한명의 감독이 모든 에피소드를 연출한 덕분에 이야기 진행이나 촬영, 편집 방식이 일정해 한 호흡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옴니버스영화가 가진 산만함이 없어 좋다. 각각의 에피소드를 일정한 ‘주제’가 아닌 특정한 ‘상황’으로 묶어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데미안 스지프론 감독은 누구나 한번쯤 겪었음직한, ‘참을 수 없이’ 분노가 치미는 여섯개의 상황을 설정하고, 각각의 주인공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지켜본다. 이때 각각의 이야기는 ‘분노를 유발하는 익숙한 상황-황당한 복수-예상치 않은 결말’의 패턴으로 진행된다.
각 에피소드에 할당된 20여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공감대를 얻을 만한 상황을 관객에게 설명하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이 역시 큰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하지만 동일한 패턴이 여섯번 반복되다 보니 영화가 진행될수록 재치 있는 결말이 주는 놀라움과 재미가 반감돼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에도 노미네이트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