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동시대 애니메이션과 만나자
2015-05-27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제19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5월23일부터 28일까지
<담장 너머>

1995년 시작된 한국의 대표적 애니메이션, 만화 축제인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이 올해 19회를 맞았다. 서울광장, 명동역 일대,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개최되는 올해의 SICAF는 국내외 장•단편 133편의 경쟁작을 선보이며 화려한 볼거리를 마련했다. 학교 괴담을 쫓는 소녀들의 아련한 청춘 감성을 담아낸 이와이 슌지 감독의 첫 장편애니메이션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이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페스티벌의 문을 연다. 강풀의 웹툰을 최초로 애니메이션화한 <타이밍>(민경조), ‘인어공주’의 슬픈 성인 버전인 퍼펫애니메이션 <생선가게 막내>(얀 발레이) 등 장편경쟁 섹션과 할아버지를 여읜 소녀의 감성을 다큐멘터리식으로 엮은 <할아버지>(쉬바 사데그야사디), 한 커피숍의 마지막 영업일을 다루는 <카페 노스탤지어>(모리타 시호), 가미카제 특공대로 징집되어 제로센에 오른 조선인의 과거와 현재를 환상적으로 엮은 <환>(김준기) 등 단편경쟁 섹션에서는 동시대 최고의 세계적 애니메이션들과 만날 수 있다.

1995년부터 2014년까지 SICAF와 함께 성장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재를 돌아보기 위해 올해의 SICAF는 ‘한국 작가 애니메이션 특별전’을 기획했다. 이제는 국내 애니메이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 이성강 감독의 <덤불 속의 재>(1998)에서부터 2014년 홀랜드애니메이션영화제 서사단편 그랑프리를 수상한 정유미 감독의 <연애놀이>에 이르기까지 한국 작가 애니메이터들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인물포커스’ 섹션에서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재를 상징하는 연상호 감독의 장•단편 연대기가 펼쳐진다.

또한 올해의 SICAF는 중국 동시대 애니메이션에 주목한다. 1941년 아시아 최초로 장편애니메이션을 발표했던 중국은 수묵화 기법을 차용한 작품에서부터 영화관과 미술관을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까지 전통과 혁신을 뒤섞은 역동적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상하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특별전’에서는 1950~60년대 이곳에서 만들어진 고전 애니메이션을 만날 수 있다. ‘중국 청년 작가전’에는 발광하는 현대성을 경험하는 아시아의 뜨거운 장소인 중국의 현재를 담아낸 강렬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가족과 함께 즐길 볼거리도 풍성하다. ‘시카프 키드 부문’에서는 동심의 세계를 다룬 애니메이션들을 골라 볼 수 있다. ‘패밀리 스퀘어’ 섹션에서는 추억의 애니메이션인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김수정, 1996), <오디션>(민경조, 2009), <고녀석, 맛나겠다>(후지모리 마사야, 2010) 등을 편성했다. 스페인어로 점과 선을 의미하는 ‘푼토 이 라야 특선’에서는 낯설고 실험적인 영상과 이미지들을 만나게 된다. ‘일본 팝 에너지’에서는 극영화, 뮤직비디오, 실험영상까지 일본 단편애니메이션의 진수를 만나게 된다.

<담장 너머> 공식경쟁 장편, 미국, 패트릭 맥헤일 감독

<담장 너머>는 미국 카툰네크워크 스튜디오의 첫 번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유럽식 잔혹동화의 배경을 미국적 시골의 불길한 숲에다 이식시킨 작품이다. 꼬마 그렉과 그의 형 워트가 ‘언노운’이라 불리는 이상한 숲에서 길을 잃는다. 작품은 어떤 설명도 없이 숲속에서 길을 찾는 이들의 현재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누구이고 어떻게 이 기묘한 숲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과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모호하고 그로테스크한 이 작품은 동시에 낙관적이고 명랑한 돌파와 가슴 찡한 성장도 있다.

<두엔데> 공식경쟁 장편, 스페인, 샘 감독

<두엔데>는 잔혹하고도 앙증맞은 악령퇴치물이다. 퇴마술을 다룬 이 작품은 <인디아나 존스>로 시작해서 <엑소시스트>로 끝난다. 성물을 찾기 위해 기기묘묘한 모험을 하던 신부는 탐욕스러운 주교의 명령을 따르다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자 이를 자책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한편 세계적 플라멩코 댄서인 트리니는 투우사였던 남편의 죽음 이후 상심하여 항우울제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데미안이라는 이름의 그녀의 꼬마 아들에게 악질 마귀가 씌어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두엔데’는 스페인어로 마력을 의미한다. 흑마술, 점성술, 타로점에다 오컬트적 요소들을 곳곳에 뒤섞었으나 클레이 인형 캐릭터들이 선혈 낭자한 잔혹함을 귀여움으로 승화시킨다. 플라멩코와 투우라는 스페인산 정열의 문화도 만날 수 있다.

<그들만의 만찬> 공식경쟁 단편, 그리스•미국, 나소스 바칼리스 감독

<그들만의 만찬>은 그로테스크한 이 시대의 우화다. 정치인, 성직자, 법조인 등 사회지도층들이 식탁에 앉아 게걸스러운 식사를 지속한다. 남은 음식의 찌꺼기는 식탁 밑의 고양이들에게 선심인 양 내팽개쳐진다. 요리사는 저택을 뜯어 요리를 만들지만 지도자들의 탐욕은 끝이 없고 저택은 점점 무너져간다.

<의자 위의 남자>

<의자 위의 남자> 공식경쟁 단편, 한국, 정다희 감독

<의자 위의 남자>는 인간의 본원적 고독과 존재론적 고민을 다룬 작품이지만, 애니메이션의 존재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함께 담고 있다. 지난해 <나무의 시간>으로 2014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었으며,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감독 정다희의 신작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나무, 종이, 물은 정다희 애니메이션 감독의 가장 소박하고 본질적인 오브제이자 주제가 된다. 심오한 철학을 담박하게 풀어내면서 애니메이션의 존재론을 펼치는 작품이다.

<우주 없인 못살아> 공식경쟁 단편, 러시아, 콘스탄틴 브론짓 감독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두 친구는 우주로 나갈 그날을 위해 고된 훈련에도 최선을 다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드디어 최고의 예비조종사가 되고, 그중 한명이 먼저 우주선을 타게 되지만 우주선은 폭발하고 만다. 남겨진 한명은 친구를 잃은 상실감에 우주복 안에서 자폐되어 세상과 자신을 스스로 단절시킨다. 이 작품은 우주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한 낙관적 모험담이 아니다. 열정이 있고 최고의 성취를 이루었으나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공유할 수 없다면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의 친구들에게’라는 헌사가 붙은 이 작품은 대사 없이 진행된다. 애니메이션이 전하는 감성이란 만국공통어임을 실감하게 해준다.

<피핑 라이프-위 아 더 히어로> 초청: 제3의 앵글, 일본, 모리 료이치 감독

일본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유쾌한 패러디물 <피핑 라이프-위 아 더 히어로>는 거대 괴수물이자 영웅물을 표방했으나 작품 전체가 다양한 만담으로 구성된 허무개그에 가깝다. 중간고사를 위해 함께 공부하던 코타와 쇼타는 도시에 괴수가 출현했다는 뉴스를 보고는 곧 히어로들이 와서 지구를 지켜주리라 기대한다. 한편 아톰, 바다의 왕자 트리톤, 야타맨, 신조인간 캐산 등 추억의 히어로들은 괴물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일상을 보낸다. 데즈카 오사무에서 안도 히데아키까지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의 히어로와 인상적 장면들까지 패러디한 <피핑 라이프…>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유쾌하게 만나는 장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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