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울림’, ‘어울림’을 슬로건으로, 반딧불의 고장 무주에서 열리는 ‘무주산골영화제’가 올해로 3회를 맞이한다. 6월4일부터 8일까지 5일간, 23개국 53편의 영화가 소개될 이번 영화제는 ‘영화 소풍길’이라는 영화제 컨셉에 걸맞게 바쁜 일상에서 미처 만나지 못했던 의미 있는 영화들을 자연과 함께, 그리고 아름다운 계절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쉼표 같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무엇보다 개막작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필름 아카이브에 잠들어 있던 영화들(<청춘의 십자로>(1회), <이국정원>(2회))을 깨워내 현대적 사운드와 공연을 결합함으로써 영화 관람의 새로운 의미를 찾고자 했던 무주산골영화제 개막작 ‘전통’에 따라 올해에는 ‘찰리 채플린’이 초대된다. ‘어느 여름밤의 꿈, 찰리 채플린’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될 이번 개막 상영에서는 채플린의 무성영화 <유한계급>(1921)을 중심으로, 스크린과 무대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이제껏 우리가 만나왔던 스크린 속 채플린을 현재의 무대 위, 퍼포먼스로도 만날 수 있다. <조금만 더 가까이>의 김종관 감독이 총연출을, 영화음악감독 겸 뮤지션인 모그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경쟁부문인 ‘창’ 섹션에서는 한국 독립영화 가운데 지난해 가장 주목받은 9편의 영화들이 상영될 예정이다. 얼마 전 2015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이 먼저 눈에 띈다.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 한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그들을 보듬어 안고 싶어 하는 감독의 바람이 독특한 이미지와 사운드에 담겨 있다. 일본 나라국제영화제의 지원으로 제작된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일본 나라현의 소도시인 고조시를 배경으로 헌팅 온 영화감독 태훈의 동선을 따라가는 1부와, 태훈이 고조시의 시청 직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보여주는 2부가 서로 맞물리며 영화와 현실의 경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군대에서 성폭행을 당한 후 에이즈에 걸린 혼혈아 주인공의 분노와 슬픔의 치유 과정을 판타지로 담아낸 노경태 감독의 <블랙 스톤>도 만날 수 있다. 올해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초청, 상영된 바 있다.
‘판’ 섹션에서는 최신 개봉작을 비롯한 영화제 초청작, 그리고 한국 고전영화까지, 다양한 국내외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김수용 감독의 1965년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필름이 유실되었다가 2013년 발견된 이후, 2014년 한국영상자료원의 복원을 거쳐 국내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이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개봉영화들 중 스크린으로 만나보기 힘들었던 작품들도 챙겨보자. <디센던트>의 감독 알렉산더 페인의 <네브래스카>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노쇠한 아버지와 그의 마지막 여행을 함께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로드무비 형식으로 따뜻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FBI의 창설자 J. 에드거 후버의 일대기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배우를 경유해 독특한 시선으로 재구성해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제이. 에드가>와, 시골길에서 중앙선을 그리는 두 남자의 우정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데이비드 고든 그린의 <프린스 아발란체>도 놓치기 아깝다.
‘소풍’이라는 컨셉에 주목한다면 덕유산국립공원 야영장 무대에서 상영될 ‘숲’ 섹션과 영화 상영 후 전문가들과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산골토크’ 프로그램도 즐겨보자. 특히 ‘숲’ 섹션에서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 그리고 <만추>(감독 김태용)와 <파이란>(감독 송해성)까지 총 4편의 영화가 35mm 필름으로 상영될 예정으로, 영화제 특유의 야외상영 정취를 배가시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