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영객잔]
[신 전영객잔] 남는 것은 제스처뿐
2015-06-18
글 : 김영진 (영화평론가)
<무뢰한> 속 ‘억압의 미적 제스처’에 대하여
<무뢰한>

나는 10여년 전 <무뢰한>의 시나리오를 읽었다. 모니터를 부탁한 오승욱 감독에게 뭔가 얘기를 해줬겠지만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살인범을 쫓는 형사 얘기에 최소한의 액션은 필요하다는 따위의 철없는 충고가 기억날 뿐이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했어도 다 괜한 헛소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쓴 시나리오 행간에서 이 영화의 무드와 제스처를 떠올리지 못했다. 핏빛 잔상을 남겼던 <킬리만자로>(2000)와는 반대 방향에서 강박적으로 적요한 분위기에 매달리는 것으로 의심했을 뿐이다.

오승욱이 오랜 기다림 끝에 스크린에 구현한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 그들을 감싼 공간의 분위기는 오승욱이 구상한 스토리가 근사한 맥거핀이었음을 알려준다. 오승욱은 형사 누아르물의 외피를 두른 이 영화에서 ‘억압의 미적 제스처’라고 할 만한 것들을 허다하게 만들어낸다. 그것들이 스토리의 인과를 빼곡 메울 필요는 없다. 그것들은 이미 이 영화의 스토리가 시작되기 전에, 스토리가 끝나고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제스처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혹 알맹이 없는 퇴행의 제스처라고 해도 상관없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에는 우리가 허위로라도 채워넣고 싶은 그런 가치의 알맹이가 없기 때문이다.

결핍과 억압의 담지자

김남길이 연기하는 형사 정재곤이 터덜터덜 살인현장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의 영화 도입부는, 남자의 정체를 이 영화가 묘사하는 방식의 시각적 신호이다. 좀 가냘픈 몸매에 나사가 빠진 듯 발길을 내딛는 순간, 단호해 보이는 그의 걸음걸이는 장차 보게 될 그의 삶의 행보와 유사하다. 그는 자신의 직업적 삶에 이물이 나있으며 그 직업적 삶을 잘 수행해야 하는 의무와 그 직업적 삶에 따르는 윤리의 준수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에 지쳐 있다. 나중에 알게 되는 것이지만, 그는 형사가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나머지 그가 검거해야 하는 범죄자들과 닮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완벽한 전문가주의와 그에 따르는 윤리의 마비 사이에서 그는 답을 찾지 못한 인물이다. 그런 그의 일상적 삶은 당연히 행복하지 않다. 그는 아내와 이혼했으며 가끔 연락을 주고받긴 하지만 전혀 달갑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내가 읽었던 이 영화의 10년 전 초고 시나리오에는 정재곤과 전처와의 관계가 비교적 상세히 묘사돼 있지만 완성된 영화 버전에선 그들의 관계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형사의 직업적 일과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최근까지 그는 꽤 훌륭한 업적을 거뒀을 테이지만 발정제로 용의자의 애인을 고문하는 것과 같은 유형의 비인간적 취조방법 끝에 남은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도입부에 정재곤을 소개했던 화면은 다소 난폭하게 한 여자의 집에 들어온 남자를 소개한다. 그는 살인범 박준길이다. 그는 정재곤이 수사하게 될 살인사건의 가해자다. 그는 자신을 마중하는 한 여자를 품고 섹스하며 그녀를 위해 살인했노라고 고백한다. 풀기 없이 지친 기색으로 살인현장을 살펴보는 형사 남자와 그 현장에서 빠져나와 맹렬하게 짐승처럼 섹스하는 살인범 남자를 교차편집하는 이 도입부의 연결고리는 여자다. 정재곤은 현장의 사체를 보며 죽은 남자의 사나운 애인이 현장 보존을 무시하고 죽은 남자 몸에 강제로 이불을 덮어줬다고 하는 순경의 말을 듣는다. 정재곤은 밖으로 나와 순경이 말한 사나운 여인을 바라본다. 그녀는 사납게도 보이지만 애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오들오들 떨고 있는 가련한 여인이기도 하다. 정재곤이 죽은 남자의 애인과 대화하고 있을 때 살인을 저지른 박준길은 그의 애인과 섹스하고 있다. 박준길의 애인은 (전도연이 연기하는) 김혜경이다. 그녀 역시 겉으로는 사나운 여인이다. 그녀 역시 나중에 정재곤의 앞에서, 애인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가련한 여인이 될 것이다. 이 도입부는 각운을 맞춰 정재곤과 김혜경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이 도입부에서 보게 되는 정재곤은 순전히 외형적인 인상으로만 판단하더라도 결핍과 억압의 담지자다.

전문가로서 완전한 어른이 되고 싶었으나 그럴수록 자신 안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재곤은 퇴행적인 문제적 개인이다. 박준길은 정반대 방향에서 퇴행적인 인물인데, 그는 도박하고 섹스하고 싸움질하는 깡패이며 애인을 등쳐먹고 사는 데 거리낌이 없는 철부지다. 그는 정재곤보다 훨씬 더 어린애 같은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을 묶어주는 공통분모는 그들이 자기존엄의 표식으로 그나마 완강히 행세하려고 하는 육체적 강건함이다. 영화 초•중반, 이들이 형사와 범인으로 인적 없는 아파트 야외 주차장에서 뼈가 으스러져라 싸우는 장면은 몸은 어른이되 마음은 어린애인 이들의 짐승과 견주어도 꿀릴 것 없는 야수성을 드러낸다. 그들의 싸움은 공허하지만 동시에 치열하다. 따지고 보면 정재곤은 굳이 자고 있는 김혜경을 깨우지 않은 채 박준길을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박준길을 밖으로 나가게 한 뒤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허영심이다. 그때까지 지켜본 김혜경을 염두에 둔 질투심도 있었을지 모른다. 또는 애인이 오길 기다리며 음식을 만들었다가 애인이 오지 않자 그걸 남김없이 버리는 김혜경에 대한 연민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선배 형사가 차 안에서 잠복할 때 농담처럼 던진 과거의 에피소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정재곤이 과거에 업적을 올리기 위해 여인들에게 했던 악행에 대한 죄의식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박준길에게 완력으로 지고 난 뒤 유유자적 사라지는 박준길을 보며 정재곤이 느꼈던 감정은 죄의식의 일시적인 해방감이다. 잠시나마 얻어터지고 난 뒤, 여인을 다치게 하지 않은 채, 그 자신만 얻어터지고 끝난 싸움의 결실로 얻는 대속의식 비슷한 것이다.

대속의식은 정재곤의 행동을 관통한다. 영화에서 그가 보이는 모든 행동의 신호들은 다 이에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무의미하고 유치하다. 사춘기 남성들이 멋있다고 여기는 공허한 제스처의 연장선상에 있을 만한 것들이다. 이 공허를 지탱하고 보완하고 조금이라도 유의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전도연이 연기하는) 김혜경의 존재감이다. 그녀는 우리가 숱한 삼류영화나 소설에서 튀어나올 법한 캐릭터의 전형이다. 한때 텐프로 룸살롱의 잘나가는 여급이었으나 이제는 퇴물 새끼마담으로 빚만 잔뜩 안고 사는 여자, 남자에게 이용만 당하고 이미 불행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녀는 앞에서 말했듯이 자기의 연약한 상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겉으로 보기엔 함부로 다가설 수 없을 듯한 암표범 같은 자태이다.

진실/허위 게임의 연속

중뿔나게 잘난 것 없으면서도 대속의식에 가득 차 있는, 육체적으로 강인하지만 속은 빈약한 형사 남자와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지녔으면서도 더이상 다치고 싶지 않아 세게 내지르는 여자와의 만남은 각자 서로 연기하는 행위들로 점철된다. 정재곤이 김혜경이 일하는 단란주점의 영업부장 이영준으로 위장해 취직한 뒤 시작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진짜가 아니라는 걸 의심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주고받는 진실/허위 게임의 연속이다. 김혜경은 정재곤의 정체를 신뢰하지 않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정재곤이 보여주는 진실한 단면의 흔적들에 혼란을 느낀다. 정재곤/이영준의 서툰 연기 덕분에 흔들리는 김혜경의 모습은 관객에게 압도감을 준다. 몸의 잔근육까지 세세하게 느껴지는 김혜경의 자태와 표정은, 영락없이 그녀를 연기하는 전도연의 존재감을 지울 수 없게 하지만, 동시에 전도연의 김혜경은 스크린에 그대로 살아 있다. 정재곤/이영준의 일관되지 않은 연기력을 관찰하듯이 보는 김혜경이 문득 “진짜 같애”라고 중얼거릴 때 정재곤의 가슴에 통증으로 꽂혔을 상대의 진심에 대한 절실함은 관객에게도 이입된다. 김혜경을 가두고 있던 캐릭터의 상투형을 전도연이 당당히 뚫고 나와 속죄의식과 연민과 사랑이 한꺼번에 합쳐지는 맹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정재곤이 시도했던 게임은, 그가 처음부터 예감하고 있었듯이 그 자신을 구원하는 결말로 향하지 않는다. 정재곤은 아주 먼 길을 돌아 자신이 징벌당하는 길을 택한다. 박준길이 검거되는 현장에서 굳이 나서지 않았던 정재곤은, 박준길이 칼부림하며 형사들에게 저항하는 아수라장이 펼쳐지자 어쩔 수 없이 김혜경이 보는 앞에서 그를 사살한다. 취조 심문실에서 김혜경은 망연자실한 채 정재곤에게 묻는다. “당신 이름이 뭐예요?” 정재곤의 거짓 연기에 속지 않은 채 그가 연기의 마디마디 보여줬던 진심을 끝까지 믿고 싶어 했던 그녀는 정재곤에게 강하고 무심한 척 연기하지 않았던 자신을 책망한다. 두 사람은 연기하는 데 실패했고 동시에 파멸했다.

<무뢰한>의 많은 장면들에서 극적으로 사소한 순간들은 기능적인 왜소함의 굴레를 벗어나 그것 자체로 둔중하고 외면할 수 없는 동요를 만들어낸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혜경 앞에 정재곤이 이영준으로 위장하고 처음 나타난 날 해장국집 장면이 나는 가장 좋았다. 해장국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는 김혜경 앞에 정재곤이 나타난다. 그는 대각선 식탁에서 김혜경을 마주 보고 있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김혜경을 등지고 앉는다. 소주를 주문한 김혜경의 요청에 주인이 응답하지 않자 정재곤은 재빠르게 냉장고에 다가가 소주 한병을 꺼내 들고 냉큼 김혜경의 식탁 맞은편에 앉는다. 이 영화에서 드물게 보는 경쾌한 무드 속에 가벼운 선의를 우겨넣은 이 장면은 불투명하지만 농도가 짙은 다른 허다한 장면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정체를 함축한다. 서서히 다가설 수밖에 없는, 그러나 끝내 도달하는 데는 실패하는 관계의 서막으로 이 장면은 산뜻하면서도 조금 슬프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정재곤과 김혜경이 어스름한 새벽 거리를 걸으며 시시한 말들을 주고받을 때 그들의 존재 자체가 자아내는 외로움과 그에 따르는 절박함의 기세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어떤 수다한 말들보다 더 강렬하다. 이 영화 속 대화 장면들은 어느 것도 서투르지 않다. 예를 들어, 영화 중반부에 김혜경이 단란주점의 텅 빈 방에서 얼음을 안주 삼아 양주를 마시는 장면에서 정재곤이 합류하고 그들이 서로 위로할 말을 찾다가 상대의 아픔을 건드리는 말들을 주고받는 장면은 말들의 내용보다 인물들의 반응과 어두운 실내 공간의 가냘픈 빛들이 조응하며 오케스트라의 화음과 같은 시청각적 공명을 자아낸다.

영화의 긴 에필로그에서 정재곤은 기어코 김혜경을 찾아내 뒤늦게 자신의 본명을 밝힌다. 요리하는 평범한 아내로 살고 싶다고 했던 김혜경은 마약중독자를 간병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박복한 운명에 따라 연기를 그만둔 채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 그녀 앞에 정재곤이 실명을 밝히고 그가 박준길을 죽인 것은 그녀에 대한 감정과 무관하게 직업적 선택이었다고 말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영화 중반, 정재곤은 김혜경과 동침하면서 상처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상처 위에 또 상처를 입는 것이 인생이라면서 체념할 줄 알았던 김혜경과 달리 정재곤은 그의 의식 속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를 간직하고 살며 끝내 치명상을 입는 인물이다. 남는 것은 제스처뿐이다. 정재곤은 김혜경이 자기 배에 박아넣은 칼을 그대로 둔 채 걷는다. 피가 밴 배의 상처를 보며 정재곤은 허탈하게 웃는다. 그리고 ‘무뢰한’ 제목 타이틀이 뜬다. 이것 역시 글 서두에 언급한 억압의 미적 제스처로 손색이 없었다.

오승욱은 ‘영화감독’이다. 자명한 이 명제를 증명하는 감독들은 많지 않다. 그가 앞으로 더 자주 영화를 만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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